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00:22:30

샌드라 데이 오코너

미합중국 前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
Sandra Day O'Connor
파일: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jpg
<colbgcolor=#00001b><colcolor=#f2ba37> 출생 1930년 3월 26일
미국 텍사스 엘패소
사망 2023년 12월 1일 (향년 93세)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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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연방대법관
(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임명)
1981년 9월 25일 ~ 2006년 1월 31일
서명
파일:IMG_265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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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2ba37> 부모 아버지 해리 알프레드 데이
어머니 에이다 메이
형제자매 여동생 앤 메이
남동생 앨런 메이
배우자 존 제이 오코너 (1952년 12월 20일 결혼 2009년 11월 11일 사별)
자녀 스콧 오코너 (1958년생)
브라이언 오코너 (1960년생)
제이 오코너 (1962년생)
학력 래드포드 여학교 ( 졸업)
오스틴 고등학교 ( 졸업)
스탠퍼드 대학교 ( 경제학 / B.A.)
스탠퍼드 대학교 법학대학원 ( 법학 / LL.B.[1])
직업 정치인, 판사, 변호사, 전 검사
소속 정당

주상원 선수 3
지역구 애리조나 제8-E선거구→제20선거구→제24선거구
경력 산 마테오 카운티 검사
육군 쿼터마스터 군단 민간 변호사
애리조나 검찰부총장
애리조나 주상원의원
마리코파 카운티 고등법원 제31부 판사
애리조나 항소법원 제1부 판사
연방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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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연방대법관2.2. 연방대법관 퇴임2.3. 퇴임 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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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법조인.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중도보수성향이며 실제 재직 당시에도 중도의 여왕이라 불리며 보수 진보 성향의 연방대법관들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었다.

2. 생애

1950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스탠포드 로스쿨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스탠포드 로스쿨 로 리뷰(Law Review)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같이 활동했던 편집장이 윌리엄 렌퀴스트 제16대 연방대법원장이었다. 로스쿨 졸업 직후 결혼을 하였으며 같은 해 캘리포니아 주 검사보로 법조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로 렌퀴스트와는 대학생 시절 잠깐 연애도 했으며 렌퀴스트가 청혼까지 했는데 오코너가 거절했다고 한다. 이는 2018년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군법무관으로 활동하던 남편이 독일로 발령나면서 몇 해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애리조나 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계기로 1969년 애리조나 주 검찰청 부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잭 리처드 윌리엄스 주지사가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 공석에 임명하였으며, 이후 두 번의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75년 애리조나 항소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2.1. 연방대법관

1981년 8월 19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첫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지명되었고, 9월 21일 상원 인준청문회를 거쳐 상원 표결을 만장일치(99-0)로 통과했다. 오코너의 청문회는 처음으로 생중계된 대법관 인준청문회이기도 했다. 보수 운동가들은 그의 지명을 반대했는데, 오코너가 텍사스에서 태어나 공화당을 기반으로 경력을 쌓아왔음에도, 1970년 애리조나 주 낙태 처벌법의 폐지에 찬성했고 지명과 인준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당대는 낙태를 허용한 연방대법원의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이후 공방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첫 여성 연방대법관 지명이 가져올수밖에 없는 파장이기도 했다.

이후 오코너는 1989년 Webster v. Reproductive Health Services 판결에서 Roe v. Wade 판결을 뒤집지 않았고, 2000년 Bush v. Gore의 사건에서는 추가 재검표를 허용하지 않는 등의 주요 판결을 남겼다.

2.2. 연방대법관 퇴임

2005년 7월 1일, 부시 대통령에게 "후임자가 확인되는 대로 연방대법관 직을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당 내용 이외에는 설명된 부분이 없었지만, 연방대법원 대변인이 오코너의 은퇴는 남편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라고 확인했다.

7월 19일,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 DC 순회법원 판사인 존 로버츠를 오코너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오코너는 휴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식을 듣고 로버츠가 훌륭한 선택이지만,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다고 밝혔다. 로버츠의 지명에 따라 오코너의 퇴임이 10월 3일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9월 3일에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이 사망하게 되어 부시 대통령이 로버츠를 렌퀴스트의 후임 연방대법원장에 임명하였고, 이에 따라 오코너는 다시 후임자가 지명될 때 까지 연방대법관직을 수행하기로 밝혔다.

10월 3일 부시는 백악관 법률고문 해리엇 마이어스를 오코너의 후임으로 지명했으나, 비판이 일자 마이어스가 스스로 지명 철회를 요청했다. 부시는 이를 수용하고 10월 31일, 제3순회 고등법원 판사 새뮤얼 알리토를 지명했다. 알리토가 상원 투표를 58대 42로 통과하여 2006년 1월 31일 연방대법관에 취임함에 따라 오코너는 퇴임하게 되었다.

2.3. 퇴임 후

연방대법관 은퇴 후에도 법관직을 수행했다. 은퇴한 대법관으로서 현직 대법관과 동일한 급여를 받았고, 한 명의 법률 서기와 사무실을 지급받는 예우를 받았다. 그는 2008년까지 제2, 제9, 제9순회 고등법원을 담당하며 파트타임으로 사건을 심리했다.

법관 퇴임 이후에는 지난 2000년의 Bush 대 Gore 사건을 심리한 것을 후회한다고 회상했다. 2006년부터는 록펠러 재단 이사회,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윌리엄 & 메리 대학교 명예총장을 지냈다.[2] 2009년부터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재단(O'Connor Institute)을 설립하여 시민 참여와 교육 촉진에 전념했다.

2013년 이후 잦은 건망증이 발생하였고, 2017년부터는 휠체어를 이용한 거동만 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2018년 10월 알츠하이머형 치매초기를 진단받고 모든 공직에서 은퇴하였다.

2023년 12월 1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3. 기타

  • 남편 존 제이 오코너 판사도 알츠하이머를 앓다 세상을 떠났다. 은퇴 또한 남편의 지병을 곁에서 지켜주기 위함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 입법, 사법, 행정부와 법조삼륜을 모두 거쳤다.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입법), 애리조나주 검찰 부총장(행정, 검사 경력), 항소법원 판사(사법, 판사 경력), 변호사 경력이 있다.


[1] 당시에는 법무박사 학위였으며 1960년대 이후로는 J.D.로 변경되었다. 현재에는 미국에선 쓰이지않는 학위이며 국제적으로 보면 법학학사로 쓰이는 국가들이 존재해서 헷갈릴 수 있다. [2] 명예총장은 저명한 인사가 대개 맡는데 일례로 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맡았으며 2012년부터는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장이 명예총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