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00:25

새디어스 스티븐스

미합중국 하원 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
Thaddeus Stevens
파일:Stevens_thadee.jpg
출생 1792년 4월 4일
미국 버몬트 주 댄빌
사망 1868년 8월 11일 (향년 76세)
미국 워싱턴 D.C.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직업 정치인, 변호사, 교육자
재임기간 펜실베이니아 주 하원 의원
1833년 9월 ~ 1868년 8월 11일
서명 파일:새디어스 스티븐스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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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colbgcolor=#fff,#191919>아버지 조슈아 스티븐스
어머니 사라 스티븐스
가정부 리디아 해밀턴 스미스[1]
종교 개신교 ( 침례회)
학력 버몬트 대학교 ( 정학)
다트머스 대학교 ( 졸업)
신체 182.88cm[2]
소속 정당 [[공화당(미국)|
공화당
]]
주요 경력 버몬트 칼레도니아 중등학교 교사
펜실베이니아 요크 대학 교수
게티즈버그 변호사
게티즈버그 지역구 의장
반메이슨당 하원 의원
휘그당 하원 의원
노우 나씽 하원 의원
공화당 하원 의원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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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addeus Stevens Portrait image.jpg
정치인 시절 초상화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교육자 시절2.3. 변호사 시절2.4. 정치인 시절2.5.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시절
2.5.1. 남북전쟁2.5.2. 재건 시대
3. 평가4. 여담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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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bolition—Yes! abolish everything on the face of the earth but this Union; free every slave—slay every traitor—burn every rebel mansion, if these things are necessary to preserve this temple of freedom to the world and to our posterity.
폐지- 그렇습니다! 이 연방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것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노예를 해방하세요- 모든 반역자를 죽이세요- 모든 반란군의 저택을 태우세요, 우리의 세상과 자손에게 이 자유의 신전을 전하는데 필요하면요.
1862년 9월 1일, 하원 의원 시절 연설 中

미국 변호사, 교육자이자 하원 의원. 남북 전쟁과 재건 시대 사이에서 공화당 급진파의 지도자 중 한명이었으며,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2. 생애

2.1. 유년기

파일:오스위고의 전투 이미지.jpg
미영전쟁 당시 "오스위고 요새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
새디어스의 아버지가 참전하다 전사했다.

버몬트에서 침례회 신자 부모의 4명의 자식들 중 둘째이며, 가난한 농부이자 구두 수선공 조슈아 스티븐스와 주부 세라 스티븐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인 내반족에 걸렸는데[3] 당시 미국 내에서 내반족은 "신이 간통죄를 범한 부모에게 내린 천벌"이란 통념이 있어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스티븐스 일가의 첫째인 큰형도 선천적인 내반족에 걸렸다. 나머지 셋째 아들과 넷째 아들은 선천적인 내반족이 없었다.

아버지 조슈아는 아내 세라와 자식들을 버리고 1812년 미영전쟁 당시 "오스위고 요새의 전투"에 참전하다 사망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4] 세라 스티븐스는 농장 관리를 하면서 스티븐스 4형제를 양육했다. 새디어스는 버몬트 주의 칼레도니아 중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버몬트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2학년에 정학하고 다트머스 대학교에 입학해서 법학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1814년 수석 졸업 당시 졸업식 연사로서 졸업식 연설을 했다.

2.2. 교육자 시절

버몬트 칼레도니아 중등학교에서 1814년에서 1815년까지 교사 일을 했으며, 1815년부터 1816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요크 대학교의 교수 일을 했다.

2.3. 변호사 시절

펜실베이니아의 게티즈버그에서 1817년부터 1822년까지 인권 변호사로서 흑인 노예를 대변하려 노력했으나, Butler v. Delaplaine이란 소송에서 흑인 노예를 변호하는데 실패해서 흑인 노예가 백인 노예 주인에게 되돌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2.4. 정치인 시절

펜실베이니아 주의 게티즈버그 지역구 의장으로 1822년부터 1831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 주를 대표하는 하원 의원으로 선출되어서 1828년부터 1838년까지 프리메이슨 비밀 결사 반대당(Anti-Masonic) 소속 하원 의원으로 재임, 휘그당(Whig) 소속 하원 의원으로서 1838년에서 1853년까지 재임, 노우 나씽(Know Nothing) 소속 하원 의원으로서 1853년부터 1855년까지 재임하다, 당시 반 노예를 앞세우던 공화당 소속 하원 의원으로서 정착하며 본인의 정치 커리어 절정기라 할 수 있는 1855년부터 1868년까지 재임했다.

2.5. 공화당 급진파 지도자 시절

2.5.1. 남북전쟁

파일:의사 새디어스 스티븐스 풍자 만화.jpg
수정 헌법으로 미국 남부를 수술하는 새디어스 스티븐스 하원 의원

1861년 4월 남북 전쟁이 터지자 남부연맹 반역 세력으로 간주, 강경 처벌을 주문했다. 1854년 당시 창당된 공화당 내에서 노예제를 반대하는 급진파 세력을 규합해서 존 C. 프리몬트, 찰스 섬너 등과 함께 공화당 급진파 세력을 결성했으며, 공화당 내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행정부와 기타 보수적인 정치 세력과 대립했다.

1861년 7월, 남부 반역 세력 인물의 (흑인 노예를 포함한) 재산을 몰수하는 몰수법(The Confiscation Act of 1861)을 통과하는 것을 주도했으며, 모든 노예를 해방하는 결의안을 준비했으나, 링컨 대통령이 시기상조라고 거부하면서 둘 다 통과되지 못했다. 단, 워싱턴 D.C.와 준주들에 몰수법과 노예 해방 결의안을 적용했다.

1862년 9월, 링컨 대통령의 주도로 노예 해방 선언이 발표될 때 새디어스는 링컨의 노예 해방을 지지하나 링컨이 자유를 얻은 흑인 해방 노예들을 일아바슈섬 등의 식민지에 살게 하는 "식민지 이주 정책"을 하려 한다고 보았다.

1864년과 1865년 사이 링컨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서 노예제를 영구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되도록 주도했으며[5], 1864년 4월 8일 상원에서 제13조가 통과되고 1865년 1월 31일 하원에서 제13조가 통과되었다. 제13조가 통과되는 과정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2012년 영화 링컨 참조.

1865년에는 링컨 대통령과 함께 '난민, 해방노예, 유휴지 담당국(Bureau of Refugees, Freedmen, and Abandoned Lands)' 혹은 줄여서 '해방노예국(Freedmen's Bureau)'이라는 흑인 지원 기관을 설립하는 것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해방 노예를 포함한 소외 계층에게 공교육이나 생계 문제 등을 지원했다.

링컨 대통령에게 남부연맹의 인물들은 미국 연방에 충성 맹세를 해야 미국에서 정치를 할 수 있는 법안 "Wade–Davis Bill"의 서명을 요구하나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링컨 대통령의 임기 동안 남북 전쟁에 재원을 대는 법인 Legal Tender Act of 1862과 National Banking Act 등을 추진했다.

2.5.2. 재건 시대

파일:국회에 들어가는 스티븐스.jpg
미국 의회에 들어가는 말년의 새디어스 스티븐스 하원 의원.[6]
I never thought of it that way, but it does relieve God Almighty of a heavy responsibility!
난 그럴거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만들어졌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막중한 책임을 덜어주겠는데!
1860년대 중반 친구가 앤드루 존슨이 자수성가한(self-made) 인물이라고 칭찬하자 새디어스 스티븐스가 비웃으면서 한 말. #[7]

남북 전쟁이 종전된 1865년 이후 새디어스는 남부연맹의 주들을 미국 헌법의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 점령지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암살된 이후, 다음 대통령으로 취임한 앤드루 존슨 남부연맹의 정치인들이 다시 남부 주 정부를 이끌게 하는 법안을 준비하자 다른 공화당 급진파와 함께 반발했다. 존슨은 링컨 재임 당시 설립된 해방노예국의 기간 연장을 개별 주 권리 침해, 지나친 지원 반대 등의 이유로 거부하고, 새디어스가 추진한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미국 헌법 수정 헌법 제14조와 흑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법도 거부했다.

해방 노예들이 남부에서 투표하고 정치하는 것을 불법화하고 남부연맹 출신 백인들이 남부에서 정치하는 것을 합법화한 Black Codes 법안을 존슨 행정부가 추진했지만 새디어스 등 공화당 급진파가 주도하는 하원에서 거부했다.

1866년 4월 당시 새디어스는 흑인들에게 시민권과 평등권을 주는 시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66)을 발의했으며, 존슨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하원에서 무효화하고 시민권법을 통과시켰다.

1867년 3월, 새디어스는 남부연맹에 소속되었던 남부 주들을 5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서 연방군의 장군이 구역을 이끄는 군정을 설치하는 재건법(Reconstruction Acts)을 발의했으며, 수정헌법 제14조가 남부 주들에서 적용되도록 했다.

이후 새디어스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정부 각료를 해임 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인 Tenure of Office Act를 국회에서 통과하게 했으며, 이에 대한 반발로 존슨이 전쟁장관 에드윈 스탠턴을 해임하려 하자 다른 공화당 급진파와 함께 대통령 탄핵안을 주도했다. 흑인들이 워싱턴 D.C. 하원 의원이 되는 것을 허가하는 법을 발의했으며, 존슨이 거부권을 행하여도 마찬가지로 무효화하고 통과시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권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토착민들을 인디언 보호구역에 이주하게 하는 법을 무효화했다.

태평양을 잇는 철도 건설을 지지했으며, 팽창주의자이기도 했다.

1868년 5월 미국 상원에서 열린 탄핵 재판 이후, 워싱턴 D.C.에 있는 집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다 위장병으로 통증을 느끼고 흑인 전도사들과 흑인 가정부 리디아, 조카 새디어스, 친구들 앞에서 1868년 8월 사망했다.

3. 평가

새디어스 사후 북부에선 그를 애도했지만, 남부 신문에선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

스티븐스는 남북전쟁 당시 하원에서 가장 지배적인 인물이었으며, 강력한 방법 및 수단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이시기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다.

4. 여담

새디어스의 이름을 딴 학교가 미국에 많이 있는데, 워싱턴 D.C.의 새디어스 스티븐스 스쿨의 경우, 1868년 자유를 얻은 미국 흑인 노예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워싱턴 D.C.의 역사적 명소로 유명하다. 그 외의 같은 이름의 스티븐스 스쿨이 스티븐스의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랭캐스터와 필라델피아, 그리고 피츠버그에 있다.

5. 매체에서

파일:external/flickminute.com/Lincoln_-Thaddeus-Stevens-by-Tommy-Lee-Jones.jpg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2012년 영화 링컨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토미 리 존스가 맡았다. 여담으로 여기서 스티븐스의 흑인 가정부가 사실은 그의 아내였던 것으로 묘사되는데, 역사적으로 스티븐스는 독신이라고 대외적으론 알려졌지만 20년간 함께 산 흑인 가정부 리디아 스미스와 사실혼 관계였다는 설도 있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사실로 묘사한 것.


[1] 새디어스의 흑인 가정부이며 20년간 새디어스의 집에서 일했다. 새디어스가 대외적으로는 독신이지만 가정부와 연애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2] 링크 참조. # [3] 그 외 질병으로 머리카락을 다 잃어 가발을 쓰고 다녔다는거 보면 하여튼 몸이 좋진 않았던 모양. [4] Trefousse, Hans (1997). Thaddeus Stevens: Nineteenth-Century Egalitarian 1쪽에서 2쪽 참조. [5] 다만 이때 링컨이 남부연맹의 지도자들과 1865년 1월 평화 회담을 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미국 선거인단이 재선 선거에서 다시 투표를 할 수 있었다면 링컨 대신 벤자민 프랭클린 버틀러[8]를 지지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6] 말년의 스티븐스는 내반족 때문에 다리가 아파서 국회에 들어가려면 다른 의회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자세히 보면 스티븐스가 도와준 이름 불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이 미국 의회 하원 중앙홀에 있다. [7] "self-made"는 자수성가한이란 뜻이 있지만 직역하면 스스로 만들어진, 스스로 창조된이란 의미가 있다. 앤드루 존슨이 공화당 급진파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