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7:22

삼천포(응답하라 1994)



[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ffffff><bgcolor=#056719><color=#3D954F><-5> ||
파일:성나정 캐릭터 포스터.png 파일:응답하라 1994 성동일 프로필.jpg 파일:응답하라 1994 이일화 프로필.jpg 파일:응답하라 1994 쑥쑥이 프로필.jpg 파일:쓰레기 캐릭터 포스터.png
파일:칠봉이 캐릭터 포스터.png 파일:삼천포 캐릭터 포스터.png 파일:해태 캐릭터 포스터.png 파일:external/pds.joins.com/201311101315011110_1.jpg 파일:빙그레 캐릭터 포스터.pn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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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 역대 서브 남주인공
파일:응답하라 1997 로고 화이트.svg 파일:응답하라 1994 로고 화이트.svg 파일:응답하라 1988 로고 화이트.svg
도학찬 삼천포 성선우

응답하라 시리즈 역대 김성균
파일:응답하라 1994 로고 화이트.svg 파일:응답하라 1988 로고 화이트.svg
1994년 버전 1988년 버전
삼천포
파일:삼천포 캐릭터 포스터.png
배우: 김성균
이름 김성균 (Kim Sung-kyun)
출생 1975년 2월 25일[1] 그래서 윤진이에게 맨날 나이로 까인다.]
(1994년 기준 20세, 2013년 기준 39세)
경상남도 삼천포시 동금동
(現 경상남도 사천시[2] 동금동)
거주지 경상남도 삼천포시 동금동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3]
서울특별시[4]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김홍철, 어머니
배우자 조윤진
자녀 4명
학력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컴퓨터공학 / 학사)
별명 장국영, 영계 남편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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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말 노이소~ 지 스므살입니더!"

액면가는 서른 네 살의 최강 노안
그러나 외모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섬세한 완벽주의자.
서울에 오니 주변에선 노안이라고 놀라지만 집안에선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운 부잣집 귀한 아들.
삼천포에선 나름 '장국영'으로 불리는 알아주는 수재였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의견도 뚜렷한 성격으로
몰라도 절대 모르는 척 하지 않고, 아는 것은 반드시 아는 척 한다.
상황과 장소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바른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선배, 어른 상관없이 직언하는 스타일.

언제나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고 옷도 칼같이 다려서 입을 정도로 예민하고 깔끔한 성격의 '삼천포'.
그런 '삼천포'에게 '해태'와 한 방을 쓰는 건 인생 최대의 고역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에 취향에 지역까지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다.
그래도 매일 같이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가 와주는 '해태'가 가끔은 고맙기도 하다.


1. 개요2. 작중 행적3. 2013년 현재4. 명대사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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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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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등장인물
남편 후보 ENTRY No. 2[5]

2.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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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인물 중에서는 3번째로 서울 상경및 신촌 하숙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그 자체가 엄청난 고난인데, 전화로 주인 어머니가 오는 길을 알려줬는데, 본인은 잘 올 수 있다고 해놓고는 길을 까먹어버린다. 심지어 지하철 체계를 몰라 서울역에서 신촌역 가겠다고 신촌역행을 기다리다[6] 2시간을 날려먹고, 어떻게 갈아타는지 몰라 시청역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도 엄청나게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거기에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전단지[7]를 뭣 모르고 받았는데, 이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또한 택시기사에게 낚여 서울을 한바퀴 돌아[8] 제대로 바가지를 당하고,[9] 나중에 집에 공중전화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하다가 불심검문 중인 경찰에 의해 이 포스터가 발각되면서...그 바람에 경찰서 정모까지 겪게 된다.

이후 성동일의 도움으로 겨우 경찰서에서 빠져나오고 신촌하숙에 도착하게 되는데, 배정된 방은 해태와 같은 방... 그야말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한 방에서 룸메이트 동거를 하게 되는 순간이었는데, 서로 처음보는 전라도 사람이 어색하고 불편했고, 급기야 밤에 한메타자 베네치아를 하는 것에 빡쳐서 전기를 내리는 바람에 그 건으로 크게 싸우게 된다.

나영석 pd가 2023년 11월에 채널 십오야 프로그램 나영석의 와글와글에서 밝히길, 삼천포의 첫 등장씬은 본인의 실제 에피소드를 이우정 작가가 각색한 것이라고 한다. 나pd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상경했을 때, 처음 지하철을 타서 환승을 하는데 당연히 새 표를 사야하는 줄 알고 역사에서 나가고 다시 들어와서 표를 사서 신촌에 갔다고 한다. 또, 본인은 심각한 길치여서 연세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다가 하숙집을 옮겼는데 오전에 이사를 하고 하교한 이후 다시 가려는데 못찾아서 대통령들이 살던 연희동 동네에 들어갔다가 경찰에게 잡혔었다고 한다.

2회에서 어쩌다가 무역과 여대생들과 미팅을 하게 되는데, 노안 소리를 듣는 데다가[10] 둘이 서로 여자에게 잘 보이겠다고 KFC에서 비스켓을 40개나 지르는 무리수를 저질렀고,[11] 그 결과... 망했다[12].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해태와 삼천포는 서로 만담베프가 되었다.

4회에서는 사이좋게 고고장에 가는데, 물갈이 차원 때문에 지하로 가는 것도 모자라[13] 매번 차인다. 나중에 해태의 절친인 김기태 덕분에 무사히 들어가는 데 성공하는데, 해태가 자기가 알고 보니 물 안 좋은 지하로 간 것에 열받아서 주인장에게 멱살 잡는 동안, 본인은 기태와 기태 여친과 함께 유유히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윤진과의 관계는 좀 안 좋았다. 당시 신촌 하숙은 설사 현상으로 대 참사를 겪었다. 원인은 아침밥에 하숙생들의 부모들이 보낸 먹거리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올라왔는데, 그 중에 상한 것이 섞여 있었던 것. 저녁에 원인을 살펴본 결과 윤진의 집에서 보낸 간장게장이 최종 용의선상에 올랐고, '혹시 게장때문에 설사 나온거 아냐?'라고 무심코 말한 삼천포의 말에 윤진이 상처받아 울면서 가버렸다. 그리고 그 직후 쓰레기에 의해 게장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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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기분 전환을 위해 서태지에게 받은 꼬깔콘을 상자에 포장하는 윤진의 방에 들어갔고, 사과를 하면서 사이가 완화되나..했더니만 설상가상으로 윤진이 아끼는 꼬깔콘을 무심코 먹어버리고, 그 바람에 멱살잡히고 초상 치를 뻔 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가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윤진의 어머니에 대한 사건이었는데, 여름방학 당시 자전거 전국여행을 떠나려고 하자 지갑을 두고가서[15], 삐삐를 두고가서 늦어졌다가 어떤 전화를 받게 되었고, 윤진이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김밥도 사 주고, 여행하면서 마시려던 커피[16][17]도 주고, 자기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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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에 따르면, 이때 전화를 받고 터미널로 향했던 선택이 지금을 만들었다고 한다.[18] 하지만 이후로도 윤진에게 얻어맞으며 산다. 그런데 이건 애초부터 자업자득...[19]

10회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하필이면 삼천포와 사천의 통합 문제[20]에 말려들게 되고, 본인들도 참가하게 된다. 이 때 통합시 명칭 문제를 놓고 양측에서 갈등하고 있는 와중에 본인도 참가하는데, 연대 출신이라서 명쾌한 대답을 삼천포+사천(3+4) 해서 칠천포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드립을 쳤다가 아버지에게마저 욕만 먹었다....[21][22]

그리고 1995년 새해 첫날 삼천포 자신의 집 앞바다서 해돋이를 같이 보러 나온 조윤진과 키스를 한다[23] 11화부터는 대놓고 윤진이와 사귄다고 하숙집 가족에게 말한다. 하지만 하숙집 가족들이 안 믿는다, 특히 쓰레기는 돈 빌렸냐고까지 한다.

1994년 연말에는 삼천포 내려가면서 F 맞은 걸 집에 알리면 안 된다고 하더니, 1995년에는 공부 열심히 했는지 13회에서는 장학금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24] 이 때 조교의 반응은 "생긴 건 공부 못하게 생겼는데.."라는 것이고 마침 들어온 교수는 윤진이 삼천포의 여자친구라는 걸 알고는 대놓고 말은 안 했으나 뉘앙스 상으로는 "생긴 건 그런데 이런 여자친구도 있고..."라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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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에서는 삼풍 백화점에 간 나정과 칠봉이를 걱정하며 전화를 하였으며 둘을 걱정하며 울먹이는 윤진을 말없이 안아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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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에서 융통성 없던 성격이 2013년 현재 어느 정도 바뀐 것을 알 수 있다.[25] 책을 한 권 냈다고 하는데 수익은 1억이고 빚은 3억.. 또한 서태지 은퇴로 침울한 윤진을 위해 서태지 집에서 변기를 떼오며 윤진을 이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만만한건 팬들이 다 떼어가서 그것밖에 안남았다고....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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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부터 윤진이에게 해태의 면회를 빙자하여 정동진으로 가자는 되지도 않는 꼼수를 부리며 쓰레기가 부산으로 이사를 갈 때 이삿짐도 겨우 옮기는 행태를 보였다. 17회에서 윤진이의 부끄러움 때문에 떳떳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연인관계에 대한 자괴감으로 슬픔에 잠겼다. 이후 방위가 영장을 늦게 전달하는 바람에 익월 5일에 입대하게 되자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후 윤진이가 큰맘먹고 정동진 여행을 제시하자 기분이 풀리는 것을 넘어 잠옷 바람에 가방을 메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국가유공자집안 출신이라 6개월짜리 공익근무로 군복무를 끝냈다 한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원 준비를 한다고 엠씨 스퀘어까지 쓰면서 공부했으나 집중력 향상 기능보다는 숙면 기능을 더 잘 이용했고 이 때가 외환위기로 인한 취업난으로 경쟁률도 높아질 때라 대학원 진학은 실패하고, 취업 재수 끝에 대기업[28]에 입사한다. 하지만 현실은 신입 사원이 그러하듯 복사와 커피 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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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에서 윤진이와 결혼 안 하냐는 얘기가 나올 때 너무 대놓고 아직 생각없다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해태와 다른 과 동기들이 직접적으로 바보라고 디스했다. 하지만 실은 통장을 여러 개 들어놓고, 그 중 결혼자금용 통장이 아직 돈이 모이지 않았고, 그게 다 차면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이라고 밝히면서 잘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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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에서는 드디어 윤진이와 결혼해 신촌하숙에서 나왔다[29] 또한 신촌하숙에서 해태가 마지막으로 나올 때 삼천포가 "니끼 내끼고 내끼 니끼고 (중략) 고마 그 이불 너 해라" 라고 자기 이불을 주는 씬에서 응사 시리즈 최고 순간시청률 14.9%를 기록했다. 1회에서 까탈스럽게 자기 물건 챙기던 삼천포의 캐릭터변화를 생각하면 가슴 뭉클한 장면.

3. 2013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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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는 만년과장...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나오는 현대 파트에서 친구들에게 "회사 안 잘리고 다닐 노력이나 하셔..."라고 듣는다. 또한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과 윤진 부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동시에 접한 부부가 되었으며, 첫 화에서 엄청 헤맨 것과 다르게 택시기사에게 막히는 길목을 피해서 가자고 할 정도로 서울 지리에 통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아내 윤진과는 만난지 거의 20년이 되었지만 애처가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전보다 더 달달한 커플이 되었다.[30] 고자킥을 몇 번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는 4명이나 두고 있다.

4. 명대사

서울의 첫 번째 밤.
그 포근하면서도 서걱거리던 이불의 감촉과 뜨거우면서 서늘했던 그 밤의 공기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1994년의 서울이란 내게 딱 그랬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치열하지만 고단하며, 뜨겁지만 차가운 도시.
그리하여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도시.
우린 당당히 서울 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서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가끔, 상상을 한다.
만약 이날 그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터미널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선택이다.
설령 그것이 외나무다리라 해도 선택해야만 한다.
전진할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아님 멈춰설 것인가.
결국,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점은, 과거 그 무수한 선택들의 결과인 셈이다.
난 그날의 전화를 받았고, 터미널로 향했으며,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린 지금의 현재를 맞았다.
그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후회 없는 선택이란 없는 법이고 그래서 삶의 정답이란 없는 법이다.
그저 선택한 길을 정답이라 믿고 정답으로 만들어가면 그만이다.
내 지난 선택들을 후회없이 믿고 사랑하는 것, 그게 삶의 정답이다.
늘 조용히 말 수 없던 그 여수 여인, 그녀가 취하면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억수로 좋아하는 거 아나?
나도 창규 선배처럼 멋지게 프러포즈하고 싶은데 나는 계획이 필요하다.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뭐 우짜겠노,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니가 이해 좀 해도.
니가 이해 안해주면 누가 이해해주겠노.
하나는 주택청약 통장, 하나는 적금통장, 나머지 하나는 결혼식 통장이다.
아직까지 이 통장 만기가 안 됐다.
이 통장 만기 다 되면 그때 니한테 프러포즈 할게.
그때까지 좀 참아도. 알겠제?
2002년 6월 19일, 신촌하숙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우린 신촌하숙의 처음이자 마지막 하숙생이 되었다.
특별한 것도 없던 내 스무살에 천만이 넘는 서울특별시에서 기적같이 만난 특별한 인연들.
촌놈들의 청춘은 북적대고 시끄럽게 그리하여 기어코 특별하게 만들어준 그 곳...
우린 신촌하숙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을 함께 했다.
울고, 웃고, 만나고, 헤어지고, 가슴 아프고.
저마다 조금씩 다른 추억과 다른 만남과 다른 사랑을 했지만,
우린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기적처럼 함께 했다.
지금은 비록 세상의 눈치를 보는 가련한 월급쟁이지만 이래봬도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신인류 X세대였고,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한땐 오빠들에게 목숨을 걸었던 피끓는 청춘이었으며,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모두를 경험한 축복받는 세대였다.
70년대 음악에, 80년대 영화에 촌스럽다던 비웃음을 던졌던 나를 반성한다.
그 음악들이, 영화들이 그저 음악과 영화가 아닌 당신들의 청춘이었고, 시절이었음을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는다.
2013년 12월 28일, 이제 나흘 뒤 우린 마흔이 된다.
대한민국 모든 마흔 살 청춘들에게,
그리고 90년대를 지나 쉽지 않은 시절을 버텨 오늘까지 잘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우리 참 멋진 시절을 살아냈음을, 빛나는 청춘에 반짝였음을,
미련한 사랑에 뜨거웠음을 기억하느냐고.
그렇게 우리 왕년에 잘 나갔었노라고.
그러니 어쩜 힘겨울지도 모를 또 다른 시절을 촌스럽도록 뜨겁게 사랑해보자고 말이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90년대여.

5. 여담

  • 호적상 1977년생[31]. 이름처럼 경상남도 삼천포시 출신이라 이 별명이 붙혀졌다. 77년생이라 하기에는 극강의 노안으로[32] 나정이네 식구들과의 첫 대면에서 나정이네 식구들을 본능적으로 존댓말이 나오게 해버렸다. 처음 나간 미팅에서 상대[33] 여대생들이 선생님 혹은 복학생으로 착각하고, 해태를 면회갔을 때는 해태의 선임들이 은사님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 또한 페이스가 악당스러워서 쓰레기에게는 허구한날 살인범 같이 생긴 새끼라고 구박받는다.[34] 20화에선 토크쇼에 나간 칠봉이가 신촌 하숙 친구들의 이름을 다 불러서 자랑하려고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뉴스에 나온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등 자기 어머니한테도 살인범같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다.
  • 성격은 순하고 착하며, 훗날 여친이자 아내가 되는 조윤진도 나름 잘 챙겨주는 편이다. 또한 집안은 한 번 출항 나가면 기름값만 1,500만 원이 든다는 대형 안강망 어선을 세 척이나 갖고 있는 부자다.
  • 좋아하는 우유는 초코-바나나-딸기 순이다.[35] 생긴 것과 다르게 매우 깔끔한 성격이라 나정이가 고구마 위에 손으로 김치를 찢어올려주자 질색했다. 다만 조윤진이 올려주니 그 때는 맛있게 먹었다.[36]
  • 나이와 다르고 생긴 것과는 비슷하게 포크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37] 하지만 취직 이후에는 핑클을 좋아한다.
  • 여담이지만, 고향에서는 삼천포 장국영이란 별칭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삼천포의 엄마가 장국영을 닮았다고 해서라고 한다. 글쎄..
  • 드라마 내에서 멘트를 제일 많이 하는 캐릭터이며,[38] 더불어서 가장 '성장'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나정의 남편 순위서 일찌감치 떨어진 것과, 결혼식 때 사회를 본 것을 감안하면 등장인물간의 매개체적 역할 및 작품의 또 다른 주제인 청춘의 성장을 반영하는 캐릭터인 듯.
  • 배우 본인의 출생지가 경상남도가 아닌 대구광역시라서 경남 사투리가 아닌 대경쪽 사투리가 살짝 들리는 것도 있다. 물론 타 지역 시청자들은 모르지만, 경상도권 시청자들만 캐치해 낸 차이점.


  • 제3화에서 015B의 노래 신인류의 사랑 도입부분 멜로디에 맞춰 추임새를 놓다가 나정과 쓰레기에게 무언의 핀잔을 받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 때의 추임새가 귀여운 나머지, 의외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한동안 포털 검색어로 "우~~대형잡채... 가 검색될 정도..
  • 배우 김성균은 조윤진 역의 도희와 키스신을 촬영할 당시 신원호 PD로부터 "혀쓰면 죽는다"라는 엄포를 들었다. 심지어 본인의 아내도 도희를 불쌍하게 여긴 모양인지 "저 어린 것이..." 라고 한탄했다고.
  • 1화에서 서울 시내를 헤매고 헤매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하숙집에 도착한 일은 나영석PD가 처음 서울로 상경했을때의 일화들을 재구성해 나온 스토리라고 한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qkh9f3BBYDM&t=49s]|실제 탄생년도는 1975년이지만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호적상으론 1977년생이다.] [2] 1995년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합쳐저서 사천시가 됐는데 극중에도 두 도시의 통합 과정이 언급됐다. [3]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서울로 상경했다. [4] 윤진이와 결혼하면서 신촌하숙집을 나왔다. [5] 8화 기점으로 탈락 [6] 당연히 그당시는 청량리행, 의정부행, 의정부북부행 밖에 없었다. [7] 학생운동이 활발한 시절임을 알아두자 [8] 택시를 타고 숭례문, 한남대교, 63빌딩, 서울역을 보게 된다. 애초에 신촌 하숙을 가기 위해 삼천포가 택시를 잡은 곳은 신촌역이였다. [9] 이후 고속버스에서 사기 시계판매에 낚이는 것을 보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일지도. [10] 사실, 1990년대 당시에는 2020년대인 현재보다 얼굴이 노안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훨씬 많긴 했으니 삼천포같은 노안인 사람들이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고증에 맞는 것이긴 하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20대 후반~30대 중반만 되어도 결혼해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키우는 경우도 많았던데다 그 나이대가 되면 어디가서도 충분히 '아저씨', '아줌마' 소리를 들었던 시대였으니... [11] 이 비스킷은 미국식으로, 영국의 '스콘'과 동일하다! [12] 지금은 KFC가 순천에는 들어와 있지만, 이 때는 없었다. 그리고 삼천포는 예나 지금이나 KFC가 없다. [13] 당시의 고고장은 층별로 퀄리티가 결정되는데, 지하가 가장 물이 최악이었고, 최상층은 물이 엄청 좋았다. 즉 얼굴 하나 때문에 물 안 좋은 지하로 배정된 것.. [14] 성동일이 게장을 먹지 않았는데도 설사를 했기 때문이고, 진짜 원인은 보리차였다. 냉장고에 안 넣고 하룻밤 보냈더니 상해버렸다. [15] 이때 나이가 밝혀졌다. [16] 아침에 칠봉이가 한입만 마시자 했을땐 단호하게 거절했다. [17] 그리고 나중에 윤진이가 삼천포에 갔을때 윤진이는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삼천포의 어머니가 주신 커피를 마싯다며 원샷했다. [18] 정확히 설명하자면 이 사건은 윤진이 성균에게 호감을 가지게되는 계기가 되고, 이후 하숙 친구들끼리 삼천포에 갔을 때 성균이 윤진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사건이 나온다. [19] 특히 서태지 문제가 가장 큰 원인... 특히 피가 모자라 사건 당시에는 이걸 겁도 없이 윤진의 앞에서 떠들다가 목에 자국이 생길 정도로 조르기를 당했다. [20] 이 시기기로 삼천포와 사천이 갈등하던 시기가 1994년이다. 삼천포는 비교적 해수욕장 때문에 관광지로 유명하지만[40], 사천에 공항이 있다는 점+철도교통의 물류중심지라는 점 때문에 사천으로 합의했다고. 거기다가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담 때문에 삼천포라는 지명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몫 했고 [21] 그런데 삼천포의 '삼'은 숫자 3(三)이 맞지만, 사천의 '사'는 숫자 4(四)가 아니라 지명용 한자로 쓰이는 泗자이다. 즉 어떻게 보면 개드립. 그리고 이 드립은 실제로 있었던 드립인데 한참 삼천포, 사천 이름 가지고 싸울 때 이 둘을 더해서 칠천포로 하는게 어떻냐고 제안했지만 근처 거제시칠천도라는 섬이 있어 무산되었다. 여담으로 삼천포시와 사천군의 통합 지명은 결국 사천시로 결정났다. [22] 비슷하게, 상표명이 7004인 사천 다래와인이 있다. 삼천포+사천이 유래라고 직접 명시하진 않지만 아무리 봐도... [23] 아버지가 마실 커피를 코코아로 바꿔치기한 걸 보면 사실상 노리고 있었던 게 확실. [24] 전장일 가능성도 있다. 가계 곤란 장학금일 수가 없는 게, 극중 초반 설정대로라면 삼천포에서 상당히 큰 어선을 소유하고 있는걸 보니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인강망 어선 한 대만 있어도 ㅎㄷㄷ한데, 세 척이나 있는 선주가 그럴 리가.. 참고로 시기가 달라 비교할 순 없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청년일 시기에 목포에서 배 한 척으로 해운회사를 경영했다. [25] 김지윤의 달콤한 19(2화)에서 유부남들의 배려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배어든다고 하는 멘트가 있었는데 그러한 특징이 그대로 반영이 된 듯 하다. [26] 이후 서태지는 변기통을 돌려줄 것을 호소하였다. 관련기사 [27] 참고로 변기에다가 나무를 심었는데 이때나무에 똥독오르는거 아니냐는성동일의 대사가 압권 [28] 이 때 대기업은 삼성물산인듯 하다. 20회에서 칠봉이에게 회사 봄 신상품이라며 보여준 점퍼의 로고는 라피또. 이 는 삼성물산의 스포츠 의류 브랜드 라피도로 보인다. [29]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마누라가 서태지 컴백 기념으로 엘범을 100개 사들이고 그걸 돌려댄 것 땜에 부부싸움까지 갔다고 한다. [30] 해태가 아직도 그렇게 좋냐 묻자 이렇게 오랜시간 함께해도 또 새로운 매력이 보인다고 답한다. [31] 호적상으로 77년 2월생이며, 만 5세에 조기입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인 말로는 출생신고가 2년 늦었다고 한다. [32] 극중과 현재는 19년 차이가 나지만 배우가 1980년생으로 3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33] 저 시기에는 무역과였다가 현재는 국제통상학부로 바뀌었다. [34] 이 배우드립은 후에 정우가 토크쇼에서 영화 이웃사람을 인상깊게 본 영향으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꺼낸 애드립이라고 밝혔다. [35] 9화에서 나정이네 냉장고를 뒤지면서 나왔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애교를 선사했는데 칠봉이가 맥주 깡통으로 삼천포를 정확히 명중시켰다. [36] 보기와는 다르게 깔끔한 성격이라 타인이 씻지도 않은 맨 손으로 김치를 찢어주는 걸 거북해한 것이다. 윤진이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이 올려준 것이라 받아먹은 듯하다. 때마침 깔리는 내레이션은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37]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김광석 KMTV 주최 공연에서 처음에 한 멘트가 나왔다. [38] 이를 증명하듯 다른 시리즈들에선 주인공들인 윤윤제, 성덕선이 맡았던 마지막 '응답하라' 나레이션도 삼천포가 맡았다. [39] 성동일과 동갑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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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삼천포역이 있었을 당시에는 휴가철에 삼천포역까지 운행하는 특급열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