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judicial activism
1. 개요
사법부에서 법해석과 판결에 대해 성문화 된 법 문구에만 그치치 않고 정치적 목표나 사회정의 실현 등을 염두에 둔 적극적 법형성 내지 법창조를 강조하는 태도를 말한다.
2. 옹호
항상 사법적극주의가 틀린 것은 아니다. 법의 허점을 악용하거나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법적극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또는 그 법 자체가 악법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사법살인과 같은 일에 대해서, 법 자체는 악법이지만 법원은 이 악법 그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사법적극주의가 적용되면 이 법을 자의적으로 한정하여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 또한, 뇌물을 받아놓고는 터무니 없는 상품 거래로 위장하는 경우처럼 법 자체가 허점이 있는 경우에도 유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따라서, 사법적극주의는 판사가 이러한 자의적 판단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법적극주의를 적용한 판사에게 그만한 정당성이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에 완전히 어긋난 판결을 내리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법을 잘 해석하면 그것은 정당한 사법적극주의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법관의 적극적인 법해석·법형평이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법적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정재오 판사는 '법관의 법형성과 법선언'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답했다. #
"법률문언(법조문)은 주변영역으로 갈수록 그 외연이 더 불명확하고 특정한 사안이 여기에 포섭되는지가 더 모호하다. 그런 외연마저 사회의식이 변화하고 국민의 법감정과 정의감이 변화함에 따라 요동하면서 더욱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된다. 새로운 법적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고, 법원이 무엇이 법인지를 판단해주기를 모두가 기다린다. 이런 법적 분쟁은 사실상 사법권이 아니면, 다른 국가권력은 사실상 해결하지 못한다. 이에 법관은 법률문언 범위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인하여 더 명확히 설정하고 때로는 그 경계선을 새로 그어야 한다."
정재오 고법판사, '법관의 법형성과 법선언', 2018 법관연수 연구논문
정재오 고법판사, '법관의 법형성과 법선언', 2018 법관연수 연구논문
3. 비판
사법부가 사실상의 입법권을 행사하여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엄연히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재량적으로 확대해석, 확대적용(혹은 축소적용)하여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정당한 권력을 침해한다.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사법부가 사법을 넘어서 사실상의 입법행위를 행사하는 월권을 인정하는 것은 삼권분립, 민주주의, 국민주권, 법치주의의 원리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며 이는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일 뿐이다.
말은 거창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상 판사가 사법의 본래 취지인 법률에 의거한 심리를 하는 역할을 넘어서 일반적인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만약에 정말로 판사들이 일반인들보다 더욱 우월하다고 가정을 해보자. 판사들이 국민들보다 우월하니 일반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가 만든 법률을 판사들이 확대 또는 축소 적용해서 뒤집을수 있게 해줘야 한다면 동일한 논리로 우매한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 통치하는 민주주의보다 현명한 독재자가 통치하는 독재정권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도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현대적인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논리가 아닌 전근대적인 왕당파의 논리일 뿐이다. 게다가 현실은 대한민국 법원 문서의 비판 문단만 봐도 알수 있듯이 법관과 판사들이 일반 국민들보다 도덕적, 정치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볼만한 어떠한 근거조차도 없다.
사법살인이 일어나는 독재국가들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으며 사법부가 독재정권의 영향력과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독재국가들에서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있게 판결하는 양심있는 판사들은 정권에 찍혀서 좌천되거나 숙청될 뿐이며 독재정권은 자신들에게 충성하고 협조하는 판사들로 사법부를 채워넣는다. 이러한 독재국가의 사법부가 사법적극주의를 한다면 사법적극주의를 이용해 사법살인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사법살인을 저지르는데 사법적극주의를 이용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사법적극주의가 더욱 명분이 없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설명한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악법이 있으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사법적극주의를 이용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그 악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면 된다. 법의 개정과 폐지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법률 제개정 절차의 과정과 제도를 개선하고 보완하면 되는 것이고 국회에 문제가 있으면 국회를 개혁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악법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판사 몇몇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에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모여 토의를 통해 판단해야 한다. 국회는 그걸 하라고 있는 집단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악법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주관적인 개념이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100% 만족시키는 법률은 없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악법인 법이 또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법이 될수도 있다. 그리고 법에 문제가 있으면 사실상 법률을 맘대로 뜯어고칠 권한을 사법부에게 부여해줘야 한다는 사법적극주의의 주장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국회의 판단보다 더 우월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물론 위에서 설명했듯이 사법부 판사들이 국회의 국회의원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옹호 문단에서 나온 사법적극주의를 이용해 "법 자체가 허점이 있는 경우에도 유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라는 주장은 현대 법체계상에서 인권 보호에 필수적인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겠다는 말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사법부는 '법률 자체'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으며 이는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