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사람이 죽고 나서야 관련 문제점을 해결하려 나선다는 것을 지적한 문구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비슷한 맥락이다.2. 상세
평소에는 어떠한 문제점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나 사고가 터져서야 뒤늦게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한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1]특히 사람의 사망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야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쏟아지는 것도 이러한 문구에 부합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고 볼 여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대한민국 노사계에 큰 경종을 울려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노동운동과 처우개선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든 것, 윤창호의 죽음으로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이 만들어진 것, 구하라 사망 사건으로 자식을 버리고 떠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구하라법 제정 여론이 강해진 것,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 학대와 부실한 입양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듯이 이들의 죽음은 끝내 세상을 크게 바꾸었고, 그렇게 세상을 바꾼 이들이 고인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넘기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오히려 사람이 죽었음에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바뀌기라도 하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이다.
[1]
'모든 항공 안전규정은 피로 쓰였다.'라는 말과는 다른 의미이다. 해당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