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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올랑드 | 에마뉘엘 마크롱 |
<colbgcolor=#ffffff><colcolor=#23235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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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6년 2월 2일 | ||
독일국 라인란트팔츠 주 코블렌츠 | |||
사망 | 2020년 12월 2일 (향년 94세) | ||
프랑스 오통 | |||
재임기간 | 제20대 대통령[1] | ||
1974년 5월 27일 ~ 1981년 5월 21일 | |||
서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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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colcolor=#fff> 신체 | 189cm | |
학력 |
장송드사이 고등학교 루이르그랑 고등학교 ( 졸업) (-1942년) 리세 루이르그랑 프레파 과정 ( 학사) 에콜 폴리테크니크 ( 공학 / M.A.) (-1946년) 국립행정학교 ( 졸업) (-1951년) |
||
직업 | 정치인, 공무원 | ||
가족 | 父: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 | ||
母: 마르테 지스카르데스탱 | |||
弟: 올리비에 지스카르데스탱(기업인)[2] | |||
배우자: 안에몬 지스카르데스탱 (1952년 결혼) 슬하 2남 2녀(발레리안, 앙리, 루이, 자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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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가톨릭 (세례명:발레리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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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대통령. 20대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다.성이 길어서 한국에서는 "데스탱"이라고 종종 칭해지며, 프랑스 현지에는 지스카르(Giscard)나 "VGE"라고 줄여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2. 일생
2.1. 유년기
프랑스 산업가 집안의 아들로, 경제학자 아버지 에드몽 지스카르데스탱이 루르 점령 때 임지로 가 있던 독일 코블렌츠에서 태어났다.[3] 루이 르 그랑 명문 고등학교 재학 당시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저항군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6년에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6위로 졸업하고 1948년에는 국립행정학교에 입학한다. 그 전에 캐나다 퀘벡 주의 몬트리올에서 대학강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후 프랑스 학술원의 연구원으로 있었다.2.2. 정계 입문
1956년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2년에는 샤를 드골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으나 1966년 재정수지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입품에 과다한 관세를 부과한 것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노동자의 파업을 유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질되었다.이후 드골 대통령과 결별하여 독립공화당을 창당했고, 1969년 조르주 퐁피두 내각에서 재무장관으로 다시 임명되었다.
2.3. 대통령으로서
지스카르데스탱의 당선을 알리는 1974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개표방송 |
지스카르데스탱은 68혁명의 의제였던 사회 자유화와 평등을 정책에 반영하여 선거 연령을 21세에서 18세로 낮추고, 이혼법을 개정하고, 최저임금과 노령 수당을 확대하는 등 여러 진보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또 피에르 메스메르 총리가 추진한 원전 사업을 확대해, 프랑스가 원전 최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TGV 사업도 야심차게 추진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은 파리 지하철을 이용하고, 청소부를 엘리제궁에 불러 같이 아침식사를 하는 등 서민들에게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우파 성향 지도자였으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선을 긋는 등 중도우파 지도자로서 외교적으로도 두각을 드러낸다. 그 외에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강화하여 뒤에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게 하는 초석을 닦았으며, 서방 7개국 정상회담(G7) 창설에서도 주도적 구실을 맡았다.
그러나 1973년 욤키푸르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인 사정이 호전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은 데스탱의 지지율을 크게 깎아먹는다. 또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는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지스카르데스탱의 개혁 정책을 못마땅해 대통령과 자주 충돌했다. 지스카르데스탱은 시라크에게 압박을 넣어 1976년 그가 자진하여 총리에서 사임하게 한 후, 자신의 측근이었던 레몽 바르를 총리 자리에 앉혀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바르 총리는 "바르 플랜"을 실시, 석유 수입을 줄이고 물가를 인위 조정하며 소득세 인상, 부가가치세 인하와 같은 여러가지 정책을 추진한다. 하지만 임금 억제 정책은 국민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경제 개혁안도 성공하지 못해 실업자 수가 100만명을 늘리는 등 경제 사정은 나날이 악화되었다. 결국 데스탱 대통령은 1977년 지방선거에서 우파의 대참패[4]라는 참담한 결과를 얻게 된다.
좌파가 압승할 것이라고 예상된 197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예상과 달리, 대중이 사회당과 손을 잡고 있던 공산당의 집권을 두려워하여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우파 연합이 좌파 연합을 승리로 신승을 거둔다. 득표율 차는 50.5% 대 49.5%로 초접전이었지만 의석수에서는 제법 차이가 났다. 지스카르데스탱은 예상 외의 신승에 자신감을 얻고 레몽 바르 총리를 유임시키며 1981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린다.
그런데 1979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독재자 장 베델 보카사가 자신을 축출시킨 쿠데타를 지원한 프랑스 정부에 앙심을 품고 자신이 알고 있던 프랑스 고위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자서전으로 폭로하며 상황이 반전된다. 지스카르데스탱과 그의 측근들이 최소 세 차례 이상 보카사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거기다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귀족이라는 출신 성분까지 부각되며 지스카르데스탱은 무능하고 오만한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경제적으로도 폴 볼커 연준 의장에 의한 달러 고 금리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며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
2.4. 재선 도전과 실패, 이후의 정치인생
그러나 이후 지방선거에서 계속해서 패배하는 악재도 있었다. 그럼에도 미테랑에게 여론조사상으로 상당히 앞서 있었기에 1980년까지만 해도 재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경기침체가 계속된데다가 2차 선거를 앞두고 토론회에서 미테랑에게 밀리는 바람에 발목을 잡혀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서 결국 재선에 실패한다.1984년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으로써는 처음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이력도 있다.
2.5. 사망
퇴임 39년만인 2020년 9월 폐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12월 2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데스탱의 나이가 94세의 고령이고 폐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주요 사인은 아니다.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국가의 종, 진보와 자유의 정치가"라는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스 전직 대통령들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도 추모글을 올리거나 성명을 냈다.
5일. 장례식은 생전에 살던 중부 루아르주 오숑 지역에서 조용히 열렸다. # 가족 및 지인 약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EU)기로 둘러싸인 관을 운구했다.
3. 평가
재선에 실패해 단임 대통령으로 끝났고 재임 중 오일쇼크로 고통받았다. 그의 임기에 프랑스의 영광의 30년이 끝나고 경제는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물론 이때는 오일쇼크로 인해 전 세계가 불황이었으니 데스탱의 탓이라고만 할순 없겠지만. 그러나 절친한 서독 총리 헬무트 슈미트와 함께 유럽연합 확장과 유럽 통합에 기여했으며 TGV 개발[5]과 전화 네트워크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앞장섰다.보수 대통령이지만 사회 분야에서는 여러 진보적인 정책을 펼쳤다. 오랫동안 사회적 논쟁거리인 낙태 비범죄화도 그의 임기에 이루어졌다.
대통령 재임 중은 물론이고 퇴임 후에도 유럽연합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활동했다. 그와는 상반되게 국내적으로는 이민을 축소하는 정책을 펼쳤다.
전반적으로 라이벌인 미테랑이나 시라크보다 존재감이 밀리지만 201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64%가 그가 좋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4. 성추행 논란
2020년 5월, 독일 여기자가 2018년 12월 당시 지스카르데스텡이 인터뷰 중 허리를 팔로 감싸고 엉덩이를 만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성추행 했다고 폭로하며 프랑스 검찰에 지스카르데스탱을 고소했다. # #2021년 10월에는 헬레 토르닝슈미트 전 덴마크 총리가 회고록에서 "2002년 혹은 2003년 코펜하겐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서 있었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지스카르데스탱이 자신의 옆에 앉아 테이블 아래로 자신의 허벅지를 움켜잡았다"고 폭로하였다. # #
이미 대통령 시절부터 엘리제궁이 아닌 자신의 저택에서 거주하며 은밀한 사생활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며 논란이 있었고 드골과 로베스피에르를 제외한 역대 모든 프랑스 대통령들이 그러했듯이 재임 도중 섹스 스캔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5. 여담
ENA, EP, EN 세 학교의 졸업장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189cm의 장신으로 프랑스 대통령 중 샤를 드골 다음으로 자크 시라크와 함께 2위에 올라있다.
자기 자신이 귀족 가문 출신[6]임에도 프랑스는 공화국이란 이유로 귀족 가문 출신의 명사들에게 작위를 붙여서 공식 호칭을 해주는 관례를 폐지한 바가 있다. 프랑스는 1870년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2제국이 무너지고 제3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식적인 귀족 제도를 폐지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귀족 칭호를 붙여주는 정도의 관례는 여전히 존재했는데 이를 폐지한 것이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가장 장수했다. 데스탱은 엘리자베스 2세( 1926년 출생.) 영국 국왕과 동갑이기도 하였다. 데스탱 재임기간 중에 총리를 역임하고 차차기 후임 대통령을 역임한 자크 시라크( 1932년 출생)가 먼저 사망하였다.
1977년에 엘리자베스 2세, 지미 카터와 함께.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이고, 지미 카터는 미국 역대 최장수 대통령이다.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또한 가장 장수한 프랑스 대통령이지만 이 셋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도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지미 카터만 생존하고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유일한 생존자인 지미 카터가 이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은 데다 호스피스 치료도 중단했다.[7]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태어난 사람이 후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본 인물이다. 본인도 장수한 데다가, 마크롱이 워낙 젊은 나이에 집권했기 때문. 참고로 같은 시기에 집권한 지미 카터도 아직 자기 임기 중에 태어난 후대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8] 참고로 98세에 사망한 벤세슬라우 브라스 전 브라질 대통령은 자기 임기 중에 태어난 두 명의 후대 대통령을 살아서 보았다.
6.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1956 - 1962 | - | |
1966 - 1977 | - | |
1977 - 1995 | - | |
1978 - 2002 | - | |
2002 - 2004 | - |
[1]
안도라 공동 영주 겸임.
[2]
WFC 의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3]
다만 코블렌츠는 단지 태어난 곳이고 진짜 고향은 現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에 위치한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이라는 도시이다.
[4]
주요 도시 221곳 중 무려 155곳에서 좌파가 승리를 거둔 반면 우파 진영은 50곳도 이기지 못하였다.
[5]
TGV 계획을 승인한것은 퐁피두고 완성된 것은 미테랑 임기였지만 대다수의 개발은 데스탱의 임기 중에 이루어졌다. 참고로 데스탱은 초기에는 TGV 건설에 반대했는데, 철도 건설에 반대한 건 아니고 TGV 대신
아에로트랭이라는 공기부양열차(!)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었다. 1974년에!
[6]
원래 프랑스에선
샤를 드골처럼 귀족가문의 출신이면 성 앞에 전치사인 de(의 출신)를 붙였었다. 그래서 본래 지스카르데스탱의 데스탱도 에스탱(Estaing)이라 불러야 하나 귀족가문이었으므로 de가 붙어
모음 충돌로 데스탱(d'Estaing)이 된 것이다.
[7]
여담으로 1977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제임스 캘러헌 총리도 역대 영국 총리 중 가장 장수한 총리였다.
[8]
만약 지미 카터가 100세 이상으로 장수하고 공화당에서 매섭게 2024년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론 디샌티스가 당선이 된다면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