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朴淵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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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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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5년 12월 27일 |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엄광리[1] | |
사망 | 2020년 1월 31일 (향년 74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 |
학력 |
밀양 산외국민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학사) |
직업 | 태광실업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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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남 밀양 출생으로, 태광실업[2]의 회장. 강금원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원한 몇 안 되는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순수하게 노무현만을 후원한 강금원과 다르게 박연차는 여야를 망라해 뇌물을 뿌리고 다녔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아호는 정산(正山).2020년 1월 31일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 #2
2. 논란
2.1. 마약 투약 및 난교 사건
1990년 히로뽕 및 난교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기사기사에서 언급된 인물은 12명으로 박연차를 포함한 기업 대표 3명과 여배우, 모델, 미스코리아 등 9명의 여성들인데 이들은 유흥업계 '마담'을 통해 만나 호텔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집단 성관계를 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2.2. 박연차 게이트
2000년대 일어난 박연차 게이트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으며 그가 여야를 망라하고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터진 이 사건에 노건평이 연루되어 동생인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검찰에 출두하게 되었고 결국 노무현의 수사 중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유례 없는 상황을 만들게 한 장본인인 셈이다.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사람들은 박연차의 뇌물을 받지 않았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을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박연차는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협의를 마치고 500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지만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강하게 부정하며 사실이 아닌 것을 이야기 하고있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수사가 종료되었기 때문에 진실은 미궁 속에 남게 되었다.
2011년 탈세 및 뇌물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 및 약 290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9. 16. 선고 2008고합1383,1438(병합),1440(병합),1445(병합),1447(병합),2009고합455(병합),689(병합)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0. 1. 8. 선고 2009노2487 판결, 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도1191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6. 24. 선고 2011노338 판결,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도847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12. 22. 선고 2011노2920 판결
2.3. 반기문 뇌물공여 의혹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7년에 반기문의 뇌물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박연차가 반기문에게 돈을 줬다는 얘기가 돌면서 화제가 되었다.3. 사업 관련
3.1. 베트남 사업 진출
1994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신발공장 건립으로 베트남에 진출하였으며 2009년 2공장(베트남 목바이)을 건립해 현재 하루 16만켤레의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이후 계속해서 투자를 늘려간 박 회장은 대규모로 투자한 공을 인정받아 베트남 친선훈장(2003년)과 베트남 노동훈장(2014년)을 받기도 했다.이후 발전사업으로 뛰어들어 2017년 태광실업그룹이 베트남에서 남딘 화력발전소 최종 허가서를 받았다. 첫 사업권을 확보한 2009년 이후 8년 만에 이뤄내었으며 베트남 1위 물류기업 제마뎁 인수를 추진하여 운송사업 진출을 꾀했다.
4. 경력
-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 한국신발산업협회 회장
5. 여담
휠라코리아 회장 윤윤수와의 일화가 있다. 윤윤수의 자서전에 의하면 막 신발 분야에 진입한 태광실업의 박연차가 자신과 만남을 제의했다고 한다. 윤윤수가 사업에 도움이 될까 하여 부산 서면의 한 일식점에서 만났는데 박연차가 이야기 중 뜬금없이 현금 봉투를 들이내맨 것. 윤윤수는 당시 화승을 퇴직한 후 작은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박연차와 아무런 이익관계가 없었으므로 박연차가 왜 돈을 내미는지 황당해했으며 액수가 5천만원으로, 2022년 기준으로 15억에 가까운 거금이라 윤윤수는 이사람이 정신이 돌았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의아해하였으나 윤윤수는 당시 거금을 빚지며 직원들 월급도 못 주던 형편이라 그 돈을 받아들여 그 거금을 써서 개인 회사를 회생시켰으며 박연차를 인생의 은인으로 여기며 이후 휠라코리아가 만들어졌을 때 휠라 운동화 제조를 태광실업에게 맡기면서 보은했다고 말한다.훗날 윤윤수가 왜 자신에게 돈을 선뜻 주었냐고 박연차에게 물어보았는데 박연차 왈, 태광실업 전무인 윤윤수의 후배가 "윤윤수가 신발 분야에서 일을 많이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니 눈여겨보면 태광의 신발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훗날 박연차 게이트에서 박연차가 선의로 돈을 뿌렸다고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했으며 윤윤수는 2020년 박연차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