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1:52:52

박몽득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구미시 CI.svg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활동
독립유공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0,#fff> 성명 운동계열 훈격
<colcolor=#000> 허위 의병 대한민국장
박희광 만주방면 독립장
권쾌복 학생운동 독립장
장진홍 의열투쟁 독립장
김정묵 임시정부 애국장
송병우 의병 애국장
송세호 국내항일 애국장
이원길 국내항일 애국장
허겸 의병 애국장
허형 의병 애국장
허훈 의병 애국장
이내성 국내항일 애국장
권오환 3.1 운동 애족장
김영득 국내항일 애족장
김종철 광복군 애족장
남상순 국내항일 애족장
육홍균 일본방면 애족장
전재덕 광복군 애족장
장재성 문화운동 애족장
최재화 3.1 운동 애족장
황진박 의열투쟁 애족장
박명언 3.1 운동 애족장
박몽득 국내항일 애족장
박봉술 3.1 운동 애족장
방하영 국내항일 애족장
이상백 3.1 운동 애족장
임봉선 3.1 운동 애족장
장용희 국내항일 애족장
김관묵 3.1 운동 애족장
유경흥 국내항일 애족장
장호관 학생운동 애족장
장병묵 국내항일 애족장
이종식 국내항일 애족장
권영해 3.1 운동 애족장
김의경 3.1 운동 건국포장
박희목 3.1 운동 건국포장
이능학 3.1 운동 건국포장
장병옥 국내항일 건국포장
전용신 3.1 운동 건국포장
허필 만주방면 건국포장
김구하 국내항일 건국포장
임장수 국내항일 건국포장
김구하 국내항일 건국포장
노명일 국내항일 대통령표창
권경보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도길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성윤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근술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명출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삼봉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순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서기옥 3.1. 운동 대통령표창
서천수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영래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윤약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동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삼선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준현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점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용섭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주서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영직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상건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종권 일본방면 대통령표창
이소열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범성 3.1. 운동 대통령표창
}}}}}}}}} ||
파일:박몽득.jpg
성명 박몽득(朴夢得)
일본식 성명 기무라 히데마로(木村英鈺)
이명 박영옥(朴英鈺)
본관 밀양 박씨 #
생몰 1915년 1월 31일 ~ 1989년 4월 30일
출생지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금전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금전동)
사망지 경상북도 구미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몽득은 1915년 1월 31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금전동(현 구미시 금전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구부로 이주하여 남산정(현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였다.

1933년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구금되었으나 그해 4월 10일 대구지검에서 기소유예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

한편, 1932년 4월 칠곡군 왜관면에 거주하던 중,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재학할 때 일본인 교사를 상대로 배척운동을 벌이다가 퇴학당한 이두석· 이창기· 정행돈 등과 함께 왜관청년동지회(倭館靑年同志會)를 결성했다. 청년동지회는 야학을 열어 농촌 청소년들에게 글과 산술을 가르치는 한편,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기밀이 누설되면서 1939년 10월 25일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41년 3월 7일 대구지검에서의 예심에서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 1942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참고로, 예심이 종결된 후 1심을 받기까지 6차례나 구류갱신결정을 받았다. 1940.1.20 1940.3.22 1940.5.17 1940.7.17 1940.9.16 1940.11.18

출옥 후 일제 경찰에게 감시받다가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후로는 평범하게 살다가 1989년 4월 3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박몽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