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로구 출신 독립운동가, 박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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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박내원(朴來元) |
출생 | 1902년 3월 5일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 |
사망 | 1982년 2월 17일 |
서울특별시 | |
서훈 |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 |
박내원은 1902년 3월 5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7년 보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종로기독교청년회에서 공부한 뒤 대동 인쇄주식회사 인쇄직공 견습생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나중엔 공산주의에 감화되어 노동단체와 청년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는 인쇄직공 친목단체인 연우사(鉛友社)에 가입했고, 1924년 10월 청년운동단체인 용진당(勇進黨)을 조직했으며, 국내 공산주의 계열의 파벌 중 하나인 화요파의 일원이 되었다.
1925년 1월에 경성인쇄직공조합을 결성하고 상무집행위원이 되었으며, 그해 4월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한편, 그는 천도교청년동맹에도 가입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공산당과 천도교 사이를 오가며 두 세력이 서로 힘을 합쳐 항일운동을 벌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1925년 8월 경 경성노동연맹 상무집행위원 겸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상무집행위원을 맡은 그는 1926년 3월 조선공산당 경성부 제2지구 제5 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다. 그해 4월엔 정우회(正友會)에 가입했고 5월에 불꽃사(火花社) 동인으로 참여했다.
1926년, 공산주의 세력은 메이데이 기념 시위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순종이 붕어하자, 그들은 제2의 3.1 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다. 박내원은 권오설로부터 격문 인쇄 및 지방 조직과의 연락 임무를 부여받고 권동진, 박인호, 이종린, 박내홍(朴來弘) 등 천도교 인사들에게도 자신들의 계획을 알려서 6월 10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합의했다. 또한 그는 격문 인쇄를 위해 손재기(孫在基), 백명천(白明天), 양재식(梁在植) 등 천도교 인사들과 민창식(閔昌植), 이용재(李用宰) 등 인쇄직공조합원들을 동지로 규합했다.
이리하여 <격고문>, <대한독립만세>,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산업은 조선인 본위로>, <대한독립운동자여 단결하라> 등의 격문 인쇄를 마쳤다. 이후 거사일이 임박했는데 자금이 없어 격문 배포가 어려워지자 권동진에게 1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6.10 만세 운동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12월에 만기출옥한 그는 공산주의 활동을 중단하고 천도교 구파청년단 상무위원, 천도교 중앙교회 감사위원 겸 청년동맹대표로 활동했다.
8.15 광복 후, 박내원은 1945년 11월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가평군 대표로 참석했다. 그리고 12월에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대회에 가평군 대표로 참석했으며, 1946년 2월 민주주의 민족전선 결성대회에 경기도 대표로 참석했다. 그러나 당국의 좌익인사 탄압이 극렬해지자 좌익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은거했다가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자 정치 활동을 재개했고, 1961년 2월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해 상임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또다시 좌익 단체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자 정치 활동을 그만두고 조용히 지내다가 1982년 2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내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횡성군 의병장, 박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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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5년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내실리 | |
사망 | 1982년 2월 17일 |
서훈 |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
박내원은 1855년생이며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내실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경 경북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교영(李敎永)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군자금 마련을 위해 그해 8월에 경북 풍기군 소룡산리, 안동군 풍산면 서미곡리, 영주군 등지에서 부호들의 집을 찾아가 군자금을 징수했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10년 1월 7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배형 7년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해 공소했지만 1월 27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내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3. 의병장, 박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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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6년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내실리 | |
사망 | 1908년 6월 6일 |
황해도 송화군 | |
서훈 |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 |
박내원은 1886년생으로 알려졌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그는 1908년경 황해도 송화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그해 6월 6일 송화수비대에게 체포된 직후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내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