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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0><colcolor=#fff> 크로아트 제5대 국왕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 Mihajlo Krešimir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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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 (Mihajlo Krešimir II.) |
출생 | 미상 |
사망 | 969년 (향년 불명) |
재위 | 크로아트 왕국의 제5대 국왕 |
949년 ~ 96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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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트 왕국 제5대 국왕.2. 행적
동로마 제국 황제 콘스탄티노스 7세의 <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De administrando imperio)에 따르면, 949년 크레시미르 1세가 사망한 뒤 장남 미로슬라브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미로슬라브의 통치 초기에 크레시미르 1세의 또다른 아들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가 프리브나 반의 지지를 받으며 반란을 일으키면서 크로아티아 전역이 내란에 휘말렸다. 이로 인해 군대는 크게 약해졌고, 해군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변경 지역들은 잇따라 이탈했다. 브라치, 흐바르, 비스 섬은 네레트바 족의 지도하에 독립했고, 달마티아 섬과 해안 도시들은 동로마 제국에 합류했고, 보스니아 동부(현재 사라예보 주변 지역) 및 크로아티아의 일부 공국은 세르비아의 대공이자 동로마 제국의 봉신인 차슬라프에게 넘어갔다고 한다.949년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가 프라브나 반의 지원에 힘입어 미로슬라프를 처단하고 크로아트의 새 국왕에 등극했다. 그 후 그는 크로아티아의 권력을 어느정도 회복했다. 내전 당시 떨어졌던 보스니아 동부 지역인 우스코플라예, 루카, 플레바를 파괴해 보스니아 전역을 복종시켰으며, 969년 이탈리아 몬테 가르가노 반도 인근에서, 크로아티아 해군이 사라센 해적과의 해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한편, 미하일로 크레시미르 2세는 옐레나 슬라브나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일각에서는 자다르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인 마디예바츠 가문 출신이라고 추정하지만 기록이 희박해서 불확실하다. 969년경에 사망했고, 아들 스테판 드르지슬라브가 유년기에 왕위에 올랐고 옐레나가 섭정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