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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0><colcolor=#fff> 크로아트 7대 국왕 스베토슬라브 수로냐 Svetoslav Suron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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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스베토슬라브 수로냐 (Svetoslav Suronja)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재위 | 크로아트 왕국의 국왕 |
996년 또는 997년 ~ 1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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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트 왕국 7대 국왕.2. 행적
크로아트 왕국 6대 국왕 스테판 드르지슬라브의 장남이다. 수로냐(Suronja)는 '어둡고 차갑다'라는 의미인 별명으로, 일부 연대기 작가들은 그를 축출한 크레시미르 3세가 이 별명을 붙였다고 밝혔다. 크닌 인근의 10세기에 건립된 바르톨로메오 성당 제단의 석판에는 아래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CLV DUX HROATOR IN TE PUS D IRZISCLV DUCE MAGNU
드르지슬라브 둑스 마그니스 시대의 크로아티아 둑스 스베토슬라브.
드르지슬라브 둑스 마그니스 시대의 크로아티아 둑스 스베토슬라브.
또한 스테판 드르지슬라브 시대에 세워진 비문에 따르면, 그는 'dux Hroatorum(흐로트족의 지도자)' 칭호를 아버지로부터 받고 공동 통치자로 세워졌다. 여기에 두 형제인 크레시미르 3세와 고이슬라브도 각자 특징 지역의 반(Ban)으로서 통치하기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996년 또는 997년 스테판이 사망한 후, 스베토슬라브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크로아티아 전역에서 통치를 행사했다.
996년, 베네치아 도제 피에트로 2세 오르세올로는 1세기 동안 아드리아해 연안에 대한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기 위해 크로아트 왕국에 납부했던 세금을 더 이상 내지 않기로 했다. 이에 크로아트 왕국은 네레트비아인과 함께 비스에서 바도라이 브라가딘이 이끈 베네치아 함대와 맞붙었으나 참패했고, 비스 섬 섬 주민들의 대부분이 포로로 전락했다. 일부 학자들은 베네치아가 그 해에 이리 나온 건 스테판이 죽었고, 크로아트 왕국이 내전에 휘말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큰형 스베토슬라브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자, 이에 반감을 품은 두 형제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차르 사무일과 동맹을 맺고 그를 축출하기로 했다. 사무일은 자신의 최대 적수인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스베토슬라브를 전복하는 걸 도와주기로 하고, 998년 크로아티아를 침공해 스플리트, 트로기르, 자다르까지 공략한 뒤 보스니아와 라슈카를 거쳐 불가리아로 돌아갔다. 사무일은 자기가 점령한 크로아티아 영역을 두 형제에게 넘겼다.
1000년, 피에트로 2세 오르세올로는 스플리트, 트로기르, 비오그라드 등 해안 도시들과 크르크, 크레스, 라브, 코르출라, 라스토보 섬 주민들의 보호 요청에 따라 그곳을 빠르게 접수했다. 여기에 자다르도 네레트바의 크로아티아인들이 998년 자다르 시민 40명을 생포한 뒤 베네치아의 보호를 받아들였다. 그 후 크레시미르 3세와 고이슬라브 형제에게 축출된 스베토슬라브는 트로기르로 피신해 피에트로 2세 오르세올로와 접견했고, 그곳에서 자기 아들 스테판과 피에트로 2세의 딸 히셀라 오르세올로와 결혼시켰다. 그 후 베네치아로 망명해 그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냈지만, 1024년 플라바니치 가문과 그라데니고 가문이 선동한 반란으로 인해 피에트로 2세의 아들이자 당시 베네치아 도제였던 오토네 오르세올로가 축출되자 헝가리로 피신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