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2-09 18:40:22

문화 자본

1. 개요2. 계급적 취향과 문화 자본3. 산업으로서 문화 자본4. 문화 자본과 문화제국주의 논쟁

1. 개요



문화 자본이란 사회적으로 물려받은 계급적 배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속적인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개념화하였다. 문화 자본은 다른 의미로 자본을 문화 산업에 집중한 거대 미디어 기업을 이르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

2. 계급적 취향과 문화 자본

한 공동체의 지배적인 권력관계는 정치적, 경제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의 상징적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통해 정당화되고 재생산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들 상징적 자원의 핵심 부분을 문화 자본이라고 부른다. 즉 인간의 문화적 행위가 한 사회의 위계적 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권력의 기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은 문자 능력, 교육의 접근권, 문화 예술 생산물의 향유 능력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의 기억에 따라 문화 자본이 유지되던 선사시대와는 달리 문자는 문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이때 문자 능력을 습득한 소수의 지배 집단이 문자를 통해 전승되는 유산을 배타적으로 점유함으로써 한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의미와 가치의 생산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게 된다. 서구 중세 사회의 지배 집단이었던 중세 교회가 라틴어로 쓰인 성경의 해석을 독점해 봉건 체제를 지속시킬 수 있었던 것이 한 예다.

부르디외가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문화 자본 개념은 문화와 자본의 일반적인 정의보다 훨씬 폭넓고 심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르디외에게 문화는 정신적인 산물만이 아니라 자본의 형태를 가진다. 이때 자본은 화폐가치뿐 아니라 문화 예술의 취향을 드러내는 심미적 가치와 학력과 혈통에서 축적된 사회적 자산을 포함한다. '문화의 자본'은 화폐경제와는 달리 계량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물질성을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 일체의 상징적, 정신적, 심미적 능력과 그것의 축적 상태로 정의된다.

부르디외는 그의 대표 저작인『구별짓기(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에서 문화 자본과 사회적 계급에 대한 정교하고 실증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문화적 엘리트 집단은 가치 있는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의 구분을 통해 사회적 위계질서를 정당화하고 그것을 공고화한다.

즉, 고급문화는 정교하고, 지적이며,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규정되는 반면, 대중문화는 사소하고, 지적으로 열등하고, 일시적 만족만을 주며, 퇴행적 효과를 가진다고 규정되는데, 이러한 구분은 곧 그것을 주로 향유하는 사회적 집단과 계층의 사회적, 경제적 차이를 인간의 보편적 능력과 지위의 차이로 전이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문화 자본의 개념은 이후 문화연구의 실증적 작업에서 하위문화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저항 관계에 접근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하게 된다.

3. 산업으로서 문화 자본

오늘날 미디어 산업은 점차 몇몇 거대 미디어 기업(media conglomerate)들에 의해 지배되는 초국가적이고 멀티미디어적인 미디어 집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의 글로벌화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 거대화는 전통적인 미디어 대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전 세계적인 거대 미디어 기업이 출현하게 된 배경은 구소련 붕괴 이후 국경 개념이 사실상 사라지고 급속한 경제적 세계화 추세와 디지털 혁명의 여파로 전 지구적인 통신망 구축이 그만큼 용이하고 신속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말 전후 세계적인 증시 호황으로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그만큼 수월해진 것도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거대 미디어 기업의 등장은 매수와 합병(M&A)에 의해 가능했다. 타임워너, 월트 디즈니, 바이어컴, 뉴스 코퍼레이션(뉴스코프)은 모두 인수 또는 대등 합병에 따라 생겨났다. 이 같은 다국적 거대 미디어 기업의 존재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글로벌화 현상에 기인하며 그 추진 동력은 기술과 자본이다. 인터넷의 존재와 거대한 선진 자본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거대 미디어 기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미디어 컨글로머리트(conglomerate, 다각 기업 소유)다. 원래 컨글로머리트는 미국의 복합 기업을 나타내는 용어다. 1950년대 이후 학술적으로 수평적 또는 수직적 기업 통합에 속하지 않은 합병 형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미디어 컨글로머리트를 미디어 재벌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비관련 다각화라는 점에선 한국의 재벌과 비슷한 점이 있으나 뉴스코프를 제외하곤 소유가 한 개인에게 집중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디어 재벌이라는 용어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미디어 컨글로머리트는 미디어 산업 분야에서는 모회사가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 통신사, 여론 조사 기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 네트워크와 레코드 및 테이프를 생산하는 기업 그리고 이러한 레코드와 테이프를 선전, 판매, 보급하는 관련 클럽 등 미디어 관련 기업 다수를 소유하는 형태다. 또한 미디어 컨글로머리트는 전 세계를 상대로 콘텐츠 생산 가공과 유통 활동을 하는 회사다. 세계화, 디지털화로 콘텐츠가 세계화하는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들은 미디어와 정보 기술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촉진시킨다.

모든 문화 자본이 계랑 가능한 화폐자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영화 < 아바타>의 제작비와 극장 매출액은 화폐로 계량 가능하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제작 노하우는 화폐로 환산이 불가능하다. 그 기술 능력과 제작 노하우는 오랫동안 축적된 교육 체계와 문화 해독 능력(cultural literacy), 그리고 할리우드 상업 영화 시장에서 교환되는 비물질적인 사교계의 정보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4. 문화 자본과 문화제국주의 논쟁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존재에 대해서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이른바 ' 문화제국주의' 또는 '미디어제국주의'로 표방되는 비판론이다. 서구 문화의 지속적인 영향력 확대를 설명하고 있는 문화제국주의 이론가들과 서구 문화와 비서구 문화의 혼합 측면을 강조하는 문화혼종주의 지지자들의 대립이 치열하다.

문화제국주의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와 디지털 문화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영향력은 증가하는 추세이며 미국 등은 기존의 문화 상품 수출을 통한 대중문화 시장 지배에서 기술과 자본력을 더해 그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있다고 본다. 반면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한류의 영향력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은 문화제국주의 시대는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서구의 일방적인 지배에서 벗어나 서구의 문화를 한국의 문화와 접목, 발전시켜 나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한다. 이들 학자들은 "대중문화는 처음부터 서구와 비서구 문화 간 혼종이 불가피했으며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이 더욱 확대되고 있어 문화제국주의 이론이 현재의 한국 문화 시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제국주의자들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이 경제성장보다는 종속 관계를 조장하고, 문화적 자율성을 파괴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확산시켜 종국에는 문화적 지배 상태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시청률과 광고 수익에 민감한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큰 수익을 보장할 다수에게만 어필할 상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콘텐츠의 다양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우려를 보인다. 이에 반해 혼종주의자들은 글로벌화에 따른 소유의 집중이 일어나긴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고 히트 상품 위주인 미디어 산업의 특성 때문에 창의성과 다양성이 오히려 증대된다는 게 미디어 경영 분야의 주장이다. 표준화가 용이한 공산품에 비해 문화콘텐츠는 사실 표준화가 쉽지 않으며 국가별, 지역별, 인종별, 종교별 특성에 따른 문화할인율[1]이 강해 일방적 전달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지화(localization)의 필요성 때문에 현지 미디어와 제휴 관계도 활발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글로벌 거대 미디어가 해당 국가의 미디어 기업들을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경영 방식이 모두 상이하며 문화적 종속에 대한 우려는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견해가 글로벌 미디어 자본을 옹호하는 집단의 입장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문화가 일방적으로 글로벌화한 과거와는 달리 점차로 현지 문화와 결합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2]이 진행됨에 따라 문화제국주의 이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줄어드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디지털화로 새로운 플랫폼이 계속 출현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글로벌 거대 미디어가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분명하다. 미디어의 공공성이 파괴되고 미디어를 장악한 세력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는 것은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사례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된 바도 있다. 디지털 시대는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기술로 새로운 미디어 형태가 정립되고 새로운 플랫폼이 탄생하면서 미디어 문화 자본의 존재 양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1] 문화권 간 대중문화의 교류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 문화할인율이 낮다는 것은 한 나라의 문화상품이 다른 나라에 수용되기 쉽다는 의미이다. [2] 세계화를 의미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과 지역화를 의미하는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의 합성어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의 개념은 마케팅 용어에서 기원했는데, 지역적인 것의 세계적 생산과 세계적인 것의 지역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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