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22 17:53:18

메헤르다테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5D3462 0%, #611594 20%, #611594 80%, #5D3462); color: #BDB76B"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초대 제2대 제3대
아르사케스 1세 아르사케스 2세 프리아파티오스
제4대 제5대 제6대
프라아테스 1세 미트리다테스 1세 프라아테스 2세
제7대 제8대 제9대
아르타바노스 1세 미트리다테스 2세 고타르제스 1세
제10대 제11대 제12대
미트리다테스 3세 오로데스 1세 시나트로케스 1세
제13대 제14대 제15대
프라아테스 3세 미트리다테스 4세 오로데스 2세
제16대 제17대 제18대
파코로스 1세 프라아테스 4세 티리다테스 1세
제19대 제20대 제21대
프라아테스 5세 무사 오로데스 3세
제22대 제23대 제24대
보노네스 1세 아르타바노스 2세 티리다테스 2세
제25대 제26대 제27대
바르다네스 1세 고타르제스 2세 메헤르다테스
제28대 제29대 제30대
보노네스 2세 볼로가세스 1세 바르다네스 2세
제31대 제32대 제33대
파코로스 2세 볼로가세스 2세 아르타바노스 3세
제34대 제35대 제36대
볼로가세스 3세 오스로에스 1세 파르타마스파테스
제37대 제38대 제39대
미트리다테스 5세 볼로가세스 4세 오스로에스 2세
제40대 제41대 제42대
볼로가세스 5세 볼로가세스 6세 아르타바노스 4세
아케메네스 · 셀레우코스 · 사산 }}}}}}}}}}}}

파르티아 제국 27대 샤한샤
𐭌𐭄𐭓𐭃𐭕 | 메헤르다테스
파일:메헤르다테스.jpg
제호 한국어 메헤르다테스
파르티아어 𐭌𐭄𐭓𐭃𐭕
영어 Meherdates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 ?
재위 기간 49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파르티아의 제27대 샤한샤.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아 샤한샤를 자칭했으나, 고타르제스 2세에게 패배하여 폐위되었다.

2. 생애

프라아테스 4세의 손자로, 아버지는 로마 제국에 인질로 간 네 명의 왕자( 보노네스 1세, 로다스페스, 프라아테스, 세라스판데스) 중 한 사람이었다. 서기 46년, 바르다네스 1세가 사냥 도중 귀족들에게 살해되었다. 이후 바르다네스 1세와 오랜 세월 왕위 투쟁을 벌였던 고타르제스 2세가 샤한샤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귀족들에게 잔혹하게 굴어 인망을 잃었다. 타키투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바르다네스의 살해로 파르티아의 정세는 혼란에 빠졌고, 그의 후계자에 대한 모두의 합의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고타르제스에게 기울었고, 일부는 로마군에 인질로 잡혀 있던 프라아테스의 후손 메헤르다테스에게 기울었다. 고타르제스는 궁전의 주인이 된 뒤 잔혹함과 방탕함을 자행했고, 파르티아인들은 메헤르다테스가 왕좌에 오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비밀 탄원서를 로마 황제에게 보냈다.

클라우디우스 1세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리아 총독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에게 메헤르다테스를 파르티아의 샤한샤로 옹립하라고 명령했다. 이리하여 로마군의 지원을 받게 된 메헤르다테스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오솔레네의 아브르가르 5세를 만나 에데사로 진군한 뒤, 다시 티그리스 강을 건너 니네베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고타르제스 2세의 군대와 교전하여 패배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고타르제스 2세는 사로잡힌 메헤르다테스를
"친족도, 아르사케스 가문의 일원도 아닌 외부인이자 로마인"
이라고 꾸짖으며, 그의 귀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고타르제스 2세는 승리를 기념하여 베히스탄의 바위에 큰 부조를 세웠다. 그는 창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이 왕의 머리에 화환을 씌우고 그의 머리 위로 맴도는 모습을 담았다. 동봉된 비문에는
ΓΩΤΑΡΣΗΣ ΓΕΟΠΟΘΡΟΣ
(게브의 아들 고타르제스)
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고타르제스 2세는 메헤르다테스를 죽이지는 않았는데, 이는 왕위를 위협한 경쟁자를 살려둠으로써 자신이 자비로운 통치자임을 과시하는 한편, 로마 황제에게 굴욕을 주려는 심산이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