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맹꽁이 서당/에피소드
맹꽁이 서당 | |
에피소드 | |
조선편 | 1권 · 2권 · 3권 · 4권 · 5권 · 6권 · 7권 · 8권 · 9권 · 10권 |
고려편/기타 | 11권 · 12권 · 13권 · 14권 · 15권 · 기타 |
등장인물 |
1. 탐관사또와 선정비
산적 두목 현상수배지를 보고 잡겠다고 떠들다가, 산적 두목과 부하가 뒤에서 나타나 언제 잡으러 올 거냐고 하자 바로 데꿀멍.하지만 산적 두목이 자기는 의적이라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못 참는다니까, 학동들은 산적 두목에게 글공부하기 싫다며 서당을 박살내달라고 한다.
다행히(?) 산적 두목도 개념이 있었는지, "누가 서당을 박살낸다더냐? 공부를 못하는 너희들을 혼내주겠다!"면서 애들 명단을 몽땅 적은 후[1] 공부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겠다고 했다. 같이 있던 졸개가 "이런 식으로 급제시킨 학동이 수두룩하지. 살고 싶으면 공부 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여러 군데서 노신
2. 최초의 신부 김대건
훈장님이 이태백의 시를 읊는데 학동들이 "그게 누구의 시예요?"라고 어리둥절해한다. 그러자 훈장님은 "글 배우는 녀석들이 이태백도 모르냐"고 호통쳤다.그러자 학동들이 "훈장님이 잘못 알았다"고 웃는데, 이태백이 아니고 주태백이라는 것. 이에 훈장님은 "그건 술을 너무 마셔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혼냈다.
그러면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 가족들 앞에 돌아가지도 못하는 사연을 학동들에게 들려줬는데, 문제는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이태백의 심정을 담은 대목에서 훈장님 본인이 지나치게 감동받아 눈물을 콸콸 쏟으며 우는[2] 바람에 서당 전체가 홍수가 되었다.
기겁한 학동들이 서둘러 물을 빼내는 등 온갖 처절한 노력을 펼치고, 한참 울다가 겨우 진정된 훈장이 눈물을 훔치며 "이제 이태백의 기구한 사연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잘 알겠지?"이라고 얘기하자, 학동들은 전원 "알고도 남으니 제발 다시는 이태백을 거론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당부했다. 얼마나 홍수가 심했는지 옷이 젖은 학동들이 태반.
3. 왕이 된 농사꾼 이원범
하도 학동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훈장님의 말에 붓장수 공서방이 훈장님에게 석두(石頭)였던 윤봉구[3]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사람의 스승이 했던 충격요법[4]에 관한 이야기[5]를 하고 훈장님이 충격요법을 써먹는데 학동들은 당황하기는커녕 공서방이 이야기했던 충격요법을 쓰는 것을 알고 있는 모습에 오히려 훈장님과 공서방이 당황했다.자기들은 만날 그런 것만 연구하는데 모를 리가 있냐고... 이에 훈장님은 똑똑하다고 비꼬면서 때렸다.
4. 파락호 흥선군
훈장님이 잠시 출타하신 동안, 심심하자 한 학동이 지나가던 마당쇠를 붙잡아 통행세를 내거나 옛날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 택일(擇一: 하나를 고르다)하라고 했다.그러자 마당쇠는 옛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무척 재미있어서 학동들이 아예 마당쇠를 결박하고 억지로 1년 치 이야기를 시켜서 무려 180일, 즉 반년 치를 들었다.
이때 마당쇠가 해준 얘기가 전라도 방귀쟁이와 경상도 방귀쟁이의 절구 배틀 이야기와 속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의 유래 이야기다. 181번째로 여우고개 이야기까지 듣던 차에 훈장님께 걸려 혼난 건 당연지사.
마을에서는 아침에 나무하러 나간 마당쇠가 여태까지 돌아오지 않아 범에 물려간 거 아니냐고 난리법석이 났다고. 여기에 학동들이 댄다는 핑계가 훈장님이 옛날 이야기를 잘 안 해줘서 그렇지 우린 잘못 없다고 하자 훈장님은 그렇게 평생 조상 탓만 하고 살라며 혼냈다.
5. 대원군의 집정시대
학동 한 명의 책이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동팔이라는 학동 한 명이 깔고 앉은 거였다. 이걸 알게 된 훈장님은 대노하여 담뱃대를 부러트렸고, 옛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을 깔고 앉았다는 이유로 동팔이를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때렸다. 이때 동팔이가 책을 깔고 앉았다가 들키는 장면은 예전 흑백판 단행본 9권 표지에 있고, 훈장님에게 맞는 장면도 9권 표지와 비슷하다.이때 학동들은 "우린 남 맞는 걸 보면 어찌 이리 기쁠까?"라고 인성을 인증했다. 그 다음 훈장님은 세상에 책만큼 귀한 물건은 또 없다면서 조생이라는 책장수 이야기를 해주며 책의 중요성을 설파했는데 동팔이가 "책을 깔고 앉는 건 안 되지만 낮잠 잘 때 베고 자는 건 괜찮지요?"라는 한심한 질문을 했더니 훈장님은 "새파랗게 젊은놈이 서당에 낮잠자러 오냐"며 코를 비틀어버렸다.
6. 경복궁은 짓고 서원은 철폐
1권에 이은 벌떼 크리로 콩쇠와 떡팔이라는 미련한 학동들이 벌집을 건드렸다. 그것도 살구 서리하다가 들켜서 굵직한 회초리를 만들어오라는 훈장님의 말을 듣고 밖에 나간 후, 벌집을 따겠다고 뻘짓하다가.[6]이후 벌떼를 서당으로 몰고 오는 바람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마당쇠는 단체로 전염병에 걸린 줄 알고 줄행랑쳤다. 그리고 떨어진 벌집은 동네 거지가 잘 주워 먹었다.
7. 왕비가 될 뻔한 김규수
무더운 여름날 학동들이 너무 덥고 졸려서 쉬자고 했는데 마침 훈장님도 졸리던 차라 흔쾌히 허락하고 다들 낮잠을 잤다. 그런데 하필 그때 호랑이가 서당으로 내려와서 이 광경을 보고 제일 큰 놈(훈장님)을 물어갔다.깨어난 학동들은 호랑이 발자국을 보고 훈장님이 물려간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한 학동이 왜 훈장님을 잡아갔을까 하며 다른 학동에게 '네가 제일 살쪘고 고기도 연하니 내가 호랑이라면 제일 먼저 널 잡아먹을 텐데'라고 해서 그 학동에게 '내가 호랑이 밥 되면 춤추면서 좋아할 놈'이라며 처맞았다.
어쨌든 학동들은 각종 연장을 들고 호랑이를 잡으러 갔는데 정작 훈장님이 멀쩡히 내려오자 기겁했다. 어찌 된 건지 아까 맞았던 학동이 추측하길 호랑이가 막상 물고 가보니까 질기고 맛없게 생겨서 버렸다고... 학동들은 뒤집어지고 훈장님은 나는 질기고 너는 연한 고기냐면서 뺨을 잡아당긴다.
그러면서 어떻게 된 건지 말하기를 잠결에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까 호랑이가 자길 물고 가길래, 힘으로 호랑이와 싸워 이겼다고 허세를 부렸다.
그러다가 사냥꾼들이 오면서 진실이 밝혀졌는데 우연히 사냥꾼들이 훈장님이 물려가는 걸 보고 호랑이를 죽여서 구해줬는데, 정작 훈장님은 그때까지도 자고 있다가 호랑이가 죽고 나서야 눈을 떴다고 한다...
학동들은 배꼽 빠지도록 웃어댔고 훈장님은 뚱한 표정으로 '허파에 바람 들었어? 그만 웃어'라고 얘기했다.
그 뒤 훈장님이 선대왕 얘기를 마치면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 얘기를 간단히 언급했는데, 한 학동이 "여자가 나서면 되는 게 없다"고 맞장구치다가 훈장님이 "이놈아 그런 얘기는 니 어미, 할미 앞에서나 해라! 원 참... 어린 놈이 벌써 여자를 업신여기는 몹쓸 버릇을 배웠으니... 쯧쯧."라며 혼냈다.
8. 남연군 묘 도굴 사건
훈장님이 수업 중에 졸자 학동들이 그 틈을 타서 땡땡이를 쳤다. 훈장님은 잠꼬대로 예언을 한 동자승과 그 덕에 급제해 고위직에 오른 어느 선비의 이야기를 하는데 눈을 떠보니 학동들 대신 마당쇠를 비롯한 동네 머슴들이 죄다 몰려와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훈장님은 그놈들 가르칠 맛도 안 나니 오늘은 차라리 너희들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며 선대왕 이야기를 했고, 학동들은 슬슬 용서를 빌고 선대왕 이야기를 들으러 서당으로 갔다가 이미 머슴들이 선수쳤음을 알자 기절하고 말았다.
9. 대원군의 몰락시대
한 학동이 하인과 함께 서당에 갔는데 학동의 낯이 우거지상이었다. 알고 보니 학동의 할아버지인 생원이 자기 집 배를 따서 서당에 보내면서 물푸레나무 가지로 회초리까지 무더기로 만들어서 보낸 것.그 학동은 앞으로 그 회초리로 매맞을 걸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훈장은 학부형의 그 당부[7]를 듣고 염려 말라 하고 배는 학동들 전부와 훈장이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훈장은 배와 관련해서 정호 대감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어떤 학동이 "성질 급한 이웃 중에 한 사람은 봄에 배 나무를 심었더니 여름에 죽었다."고 해서 훈장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10. 왕비와 사약 대결
사람이 타고나는 성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평생 고집불통이던 사람도 있었다고 할 때 학동 한 명이 슬쩍 "훈장님이지."라고 했다가 맞았다.그 뒤 유충걸 이야기를 하면서 불같은 성질이 남들의 잘못은 고쳤지만 자기 자신은 그 탓에 큰 손해를 봤다[8]고 하는데, 학동들이 그러니까 훈장님도 종아리 때리지 말고 살살 가르쳐달라고 하니까 너희들 좋으라고 하는 거라면서 더 때렸다.
[1]
심지어 그 자리에 없던 다른 학동들의 이름도 다 적어갔고 뒤늦게 소식을 들은 그 자리에 없던 학동은 왜 남의 이름을 가르쳐주냐며 펄펄 뛰었다.
[2]
진짜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3]
조선 영조 때의 학자로
권상하의 제자로 한원진, 이간 등과 함께 '강문 팔학사(江門 八學士)'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4]
짐을 싸서 나가는 스승님을 보고 까막눈이던 윤봉구가 충격을 받아 공부벌레가 되었다는 이야기.
[5]
이후 윤봉구는 열심히 노력하나 워낙 아둔한 탓에 외우기를 노력하면 까먹기를 반복해 결국 무너져내리나 선생은 오히려 달래주며 "너무 속상해말거라. 열심히 노력하면 결실은 언젠가 맺히는 법이란다."라고 위로한다."
[6]
두 학동들은 훈장님에게 혼날 때 울면서 개과천선했다고 얘기했다가 나중에는 서로 남의 탓만 했다.
[7]
버릇이 없거나 글공부를 게을리하면 사정없이 때려라.
[8]
인물정보. 여담으로 이야기 속 수원 부사로 나온 이가 그의 조카인
유혁연이였고, 손해를 본 건 그가
인조의 고모부라서 그의 성품을 안 인조가 말년에 정산 현감을 제수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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