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0 19:58:29

말리코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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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테아 왕국 7대 군주
Malīḵū | 말리코스 1세
파일:말리코스 1세.jpg
제호 한국어 말리코스 1세
아람어 Malīḵū
라틴어 Malichus I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30년
재위 기간 기원전 59년 ~ 기원전 30년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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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바테아 왕국 7대 군주.

2. 행적

나바테아 왕국 6대 군주 오보다스 2세의 아들이라는 설과 형제라는 설이 병립하는데, 기록이 부족해서 분명하지 않다. 기원전 59년에 왕위에 오른 그는 4대 군주 아레타스 3세가 기원전 63년 로마의 시리아 총독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의 침공에 굴복하여 공물을 바친 이래 로마의 봉신이 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고, 장차 로마로부터 독립하고자 했다. 기원전 55년, 그는 로마에 더 이상 공물을 바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시리아 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가 침공하여 나바테아군을 격파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로마의 봉신이 되기로 했다.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알렉산드리아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기병대를 지원했다.

기원전 40년 파르티아의 시리아 침공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일부 지역이 파르티아의 수중으로 넘어가자, 그는 파르티아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 시기에 유대의 권력자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헤로데가 나바테아에 망명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헤로데는 아버지가 나바테아인들에게 많은 돈을 빌려줬으니 자신을 보호해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와 나바테아 귀족들은 빚을 갚기를 원하지 않았고, 로마의 앞잡이 노릇하는 그에게 반감을 품기도 했기에 그를 잡아 죽이려 했다. 헤로데는 추격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집트로 피신했다.

기원전 38년,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는 파르티아군을 섬멸하고 동방 속주를 탈환한 뒤, 그가 로마를 배신하고 파르티아인들을 도왔다고 비난하며 배상금을 지불하게 했다. 기원전 34년 아르메니아 왕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나바테아 왕국의 상당 부분을 넘겨줬다. 그는 그 영토를 실제로 다스렸지만, 매년 200달란트를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쳐야 했다. 이 공물은 유대 왕 헤로데가 징수했는데,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안토니우스가 악티움 해전을 치르기 직전에 그가 공물 지불을 중단했다. 안토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헤로데에게 유대군을 이끌고 나바테아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헤로데는 디오스폴리스로 진군하여 나바테아군을 격파했지만, 카나에서 패배했다. 이에 헤로데는 공개 전투를 피하고 여러 지역을 습격한 뒤 적이 오기 전에 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여 그를 괴롭게 했다. 그러던 중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잘 보이기로 마음먹고 수에즈 항구에서 육로로 운송되던 이집트 선박을 불태워 클레오파트라 7세에게 타격을 입혔다.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에 당도했을 때 정식으로 충성을 맹세했다.

기원전 30년, 헤로데 왕은 바빌론에서 유대로 돌아온 요한 히르카노스 2세가 그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히르카노스를 처형했다. 그는 이즈음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들 오보다스 3세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