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1 12:56:00

만주 시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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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시조 신화가 적힌 서적의 첫 장.
그림은 백두산을 묘사한 것으로 왼쪽에 만주어-한문-몽골어로 적혀 있다.

1. 개요2. 내용
2.1. 부쿠리용숀의 탄생2.2. 삼성의 난 평정2.3. 몰락과 재건
3. 정리4. 의의5. 기타

1. 개요

만주족의 시조 신화.

청나라의 조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삼천녀 신화로 불린다. '만주 건국 신화'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다.

청나라의 시조, 즉 청시조(淸始祖)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愛新覺羅 布庫哩雍順, 애신각라 포고리옹순)이 어떻게 시조가 되었는지와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만주원류고》의 제1권 부족편에는 《발상세기(發祥世紀)》라는 문헌을 인용해서 만주족이 어떻게 아이신기오로(愛新覺羅)라는 성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력과 첫 국가인 만주(滿洲)를 건국한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고 한다.

2. 내용

2.1. 부쿠리용숀의 탄생

주션 구룬(Jušen Gurun)의 세 성씨[1] 어전(Ejen)의 자리를 놓고 오래도록 다투고 있었다. 이를 본 압카이 한(Abka-i Han)[2]은 신을 보내어 주션 구룬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고 했다. 압카이 한은 주션 구룬으로 갈 신에게 까치[3]로 변신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딸 셋이 부쿠리(Bukūri)[4] 산 기슭의 불후리(Bulhūri)[5] 연못에 목욕을 하러 갈 것이다. 이 붉은 과일을 가지고 가서 막내의 옷 위에 두고 오라."
그리고 어느 날, 백두산 동쪽에 있는 부쿠리 산 기슭의 불후리 연못에 압카이 한의 딸인 선녀 세 명이 와서 목욕을 하였다. 맏이는 엉굴런(Enggulen),[6] 둘째는 전굴런(Jengulen),[7] 막내는 퍼쿨런(Fekulen)[8]이라 하였다.

선녀들이 목욕을 다 마치고 옷을 입으러 가는데, 신령스러운 까치(神鵲)가 퍼쿨런의 옷 위에 붉은 과일을 올려놓았다. 퍼쿨런은 그 색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놓치기 싫어서 입에 넣고 옷을 입다가 그만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이 무거워져서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언니들에게 얘기하자 언니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건 아마도 하늘의 뜻이다. 우리는 묘약을 먹어서 죽지 않으니, 네가 몸이 가벼워지기를 기다려서 하늘에 올라와도 늦지 않을 것이다."
결국 퍼쿨런은 부쿠리산에서 살다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낳자마자 말을 하고 빠르게 자랐다. 퍼쿨런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쿠리용숀(Bukūri Yongšon)[9]이라고 지었다. 선녀와 나무꾼이 생각난다.[10]

2.2. 삼성의 난 평정

어느 날, 장성한 부쿠리용숀을 퍼쿨런이 불러서 말하였다.
"너는 어지러운 주션 구룬을 평정하라는 천명을 받고 태어났다. 너는 이제부터 주션 구룬에서 살아야 한다. 주션 사람들이 너에게 부모와 이름을 물으면 부쿠리 산 기슭의 불후리 연못에서 태어난 부쿠리용숀이며, 성은 아이신기오로(Aisin-Gioro),[11] 아버지는 없지만 어머니는 압카이 한의 세 딸 중의 막내인 퍼쿨런이라 말하고, 나는 하늘의 신이고 내 영혼은 압카이 한께서 붉은 과일로 만들어 까치로 변한 신에게 내려보냈다고 대답하거라."
그리고 퍼쿨런은 작은 통나무배를 주면서 당부하였다.
"이 배를 타고 가거라! 나라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물을 끌어들이는 나루가 있을 것이다. 나루에서 강가로 올라가면 길이 나온다. 그 끝에 너의 나라가 있다."
부쿠리용숀은 통나무배를 타고 강의 끝까지 내려갔다. 아들이 떠나자 퍼쿨런은 하늘로 돌아갔다.

부쿠리용숀은 우거진 숲과 협곡을 지나 장백산 동남쪽의 오모호이(Omohoi)[12] 들판에 있는 오도리(Odoli)[13][14]에 도착했다. 강가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뭍으로 오른 그는 버드나무를 꺾어서 의자를 만들고 그 위를 으로 덮었다. 그때 마침 물을 길러 가던 사람이 그를 보고 기이하다고 생각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가 어전 자리를 놓고 다투던 사람들에게 전했다.
"싸우지 마시오. 우리가 물을 끌어들인 나루에 아름답고 영리한 사내아이가 쑥을 덮은 버드나무 의자에 앉아 있소. 아무래도 주션 구룬의 아이가 아니라 하늘에서 온 것 같소."
사람들이 모두 달려가 보니 과연 아름답고 영리해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물었다.
"누구십니까? 누구의 아들이고, 성은 무엇입니까? 이름은 무엇입니까?"
부쿠리용숀이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대답하자 사람들은 모두 그가 감히 걸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손을 모아 깍지를 껴서 가마를 만들고 그를 태워서 데리고 갔다. 세 성씨의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그를 버일러(Beile)[15]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나트 버리 거거(Nat Beri Gege)[16]라는 여자를 아내로 주었다. 결혼을 하자 사람들은 그를 어전으로 삼았고, 부쿠리용숀은 나라 이름을 만주(Manju)[17]라 하였다.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은 까치를 자신의 조상이라 하여 죽이지 않았다.

2.3. 몰락과 재건

오랜 세월이 지나 부쿠리용숀의 후손들이 주션의 백성을 괴롭히자, 압카이 한은 그들을 책망하였고 백성도 등을 돌렸다. 백성들이 부쿠리용숀의 후손이 살고 있던 성을 포위하자, 압카이 한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도망치게 하였다. 병사들이 추격하자 압카이 한은 전에 보냈던 신을 까치로 변하게 하여 그의 머리 위에 앉게 하였고, 추격하던 병사들은 그것을 보고 철수했다. 도망친 후손의 이름은 판차(Fanca)[18]이다.

그로부터 다시 몇 세대가 지난 뒤에 아이신기오로 먼터무(Dudu Mentemu)[19]라는 덕을 갖춘 인물이 태어나 오모호이 들판의 오도리성에서 서쪽으로 1500리 떨어진 곳[20]에 있는 숙수후(Suksuhu) 강가의 허투아라(Hetuala)[21]라는 곳에서 살았다.

먼터무는 함부로 날뛰는 40여 명을 오모호이 들판의 오도리 성에서 허투아라로 유인하여 절반은 죽이고 절반은 포로로 삼은 다음 그들의 형제와 가족을 잡아갔다. 그는 이후에도 허투아라에서 살았다.[22]

3. 정리

백두산의 동쪽에 부쿠리 산이 있고, 그 산 기슭에 못이 있었는데 부쿠리 호라고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그 못에서 목욕을 하는데 어떤 까치가 막내 선녀의 옷에 주과(붉은 과일)를 물어다 놓았다. 막내 선녀는 그 주과를 입속에 물고 있다가 문득 뱃속으로 들어가 곧 임신을 했다. 뒤이어 사내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태어나자마자 능히 말을 할 줄 알았으며 자태와 용모가 기이했다.

아이가 커가자 선녀는 주과를 삼키게 된 사연을 알려주고, 이내 그에게 아이신기오로라는 성씨를 내려주고, 이름은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이라고 하였으며, 그에게 작은 배를 내어 주고, 다시금 "하늘이 너를 태어나게 한 것은 어지러운 나라를 평정시키기 위한 것이니 어서 가서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라." 는 말을 남기고 선녀는 마침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배를 타고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어느 물가에 이르러 버드나무 가지와 쑥을 꺾어 깔개를 만들고 단정히 앉아서 때를 기다렸다.

그때 장백산(백두산)[23]의 동남쪽 오도리라는 지역에 삼성이라는 곳이 있어 서로 추장이 되겠다고 다투면서 날마다 싸움질을 하고 서로 적이 되어 죽이곤 하였다. 마침 어떤 사람이 물가로 물을 길러 갔다가 돌아와서 뭇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싸우지 마세요. 제가 물가에 물을 길러 갔다가 어떤 사내아이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을 살펴보니 범상한 사람이 아닌 성 싶었습니다. 하늘이 이런 사람을 허투루 태어나게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한테 가서 물으니 "나는 선녀의 소생으로 당신들의 혼란을 평정시키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름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뭇사람들은 "이 사람은 하늘이 낸 성인인데 그냥 걸어가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마침내 서로 손을 잡아 가마를 만들어 집까지 데리고 왔다. 삼성 사람들은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기로 논의하고, 결국 자기 딸을 시집보내어 버일러[24]로 받들었다. 장백산(백두산) 동쪽 오도리성에 살았으며, 나라 이름을 만주(滿洲)라 하였는데 나라의 터전을 맨 처음 열었던 곳이므로 국서를 가지고 이를 고증하고자 한다.

4. 의의

  • 비슷한 이야기가 더 북쪽의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만주족과 청나라 황실에 대한 자료를 대거 모아놓은 타이완 타이베이시의 국립고궁박물원 구만주당[25]에 있는 책에서 발견된 1635년의 기록에 의하면 아무르 강 (만주의 북쪽 경계를 흐르는 강) 위쪽의 후르하(Hūrha) 부족에게서도 똑같은 전승이 있었다.
  • 강희제 대의 지도에는 부쿠리 산과 불후리 연못은 아무르 강 근처에 있는 걸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청 황실이 후르하 부족의 전설을 그들의 시조 신화와 합쳤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5. 기타

  • 이 신화가 동아시아의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난생설화(卵生說話) 중 하나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즉, 만주족의 건국 시조도 하늘에서 내려온 날짐승인 까치나 제비가 물어다준 알(열매)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설화라는 것이다.


[1] 의란기략(依蘭紀略)에 따르면 사이호(嗣以胡), 지여로(只餘盧), 갈(葛)이라고 한다. [2] 직역하면 하늘의 왕. 압카(Abka)는 '하늘', 이(i)는 '~의', 한(Han)은 '왕'이라는 뜻이다. [3] 신작(神鵲) [4] 한문으로는 포고리(布庫哩). [5] 한문으로는 포고리(布庫哩), 포이호리(布爾瑚里), 포륵호리(布勒瑚里). [6] 한문으로는 은고륜(恩庫倫). [7] 한문으로는 정고륜(正庫倫). [8] 한문으로는 불고륜(佛庫倫). [9] 한문으로는 포고리옹순(佛庫里雍順). [10] 선녀와 나무꾼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부랴트 시조신화인 백조처녀이야기가 변형됐다고 보는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11] 한문으로는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Aisin)은 '금(金)', 기오로(Gioro)는 헤이룽장성에 있는 본관 지명이라고 하며, 혹은 부족 또는 족속을 뜻하는 말이라거나 사람을 뜻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하는데,(한국고대인명어연구) 그렇게 되면 아이신기오로는 금족이나 금인 즉 금나라 사람이라는 의미가 된다. [12] 한문으로는 악모휘(鄂謨輝), 아막혜(俄莫惠). 지금의 북한 회령(會寧)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송화강과 모란강의 합류지인 의란(依蘭)이라고도 한다. 만주원류고에는 흥경 동쪽 1500리이자 영고탑 서남 330리라 하여 지금의 중국 돈화(敦化) 부근으로 전하고 있다. [13] 한자로는 알타리(斡朶里), 오도리(吾都里), 악다리(鄂多理), 알타령(斡朶怜). 이후 이들은 지명을 따라 오도리 부족이 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금나라의 후예라는 말도 전하고 있다. [14] 부락이라고도 한다. [15] 한문으로는 패륵(貝勒). 만주와 몽골에서 부족장을 가리키는 말으로, 청 왕조에서는 황자에 해당하는 직위로 쓰였다. 17황자면 17버일러로 쓰는 방식. [16] 거거(Gege)는 여자에 대한 존칭으로, 직역하면 '아가씨' 정도가 된다. [17] 한문으로는 만주(滿洲). [18] 이 판차라는 이름은 후대에도 확인되는데, 아래 주석에 등장하는 누르하치의 6대 선조인 멍거테무르의 이부동모 동생의 이름이 바로 판차이며 이외에도 동명이인이 다수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범찰(凡察), 반차(班車), 옹차(雍車)라고 음차되어 있다. [19] 누르하치의 6대 선조. 몽골식 이름은 몽케테무르. 앞의 두두는 '도독(都督)'을 의미한다고 한다. 먼터무는 1412년에 명나라로부터 동(童)으로 사성받는데, 바로 이 두두를 음차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전부터 이미 동맹가첩목아(童猛哥帖木兒)라고 부르고 있었다. 청실록에는 맹특목(猛特穆)이라 음차되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는 동맹가첩목아 외에도 협온맹가첩목아(夾溫猛哥帖木兒), 동말응거가물(童末應巨加勿)이라 음차되어 있으며, 용비어천가에는 위의 협온맹가첩목아에 갸온멍거터물이라는 음이 달려 있다. 사후 후금의 누르하치에 의해 택왕(澤王)으로 추존되었고, 청나라 순치제에 의해 조조(肇祖) 원황제(原皇帝)로 추존되었다. [20] 만주원류고에도 같은 수치가 전한다. [21] 한문으로는 혁도아랍(赫圖阿剌). 청나라 때는 흥경(興京)이 되었다. 1616년 이곳에서 후금이 건국되어 1622년에 요양으로 천도하였다. 지금의 무순 동쪽 신빈현이다. [22] 이 부분은 조금 애매한데, 먼터무와 그 일족은 오도리부 내에서 축출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몽골 제부족의 잦은 침략을 피해 오도리부를 이끌고 남하하여 조선의 회령 지방에 거주하다가 다시 이주해 갔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화 속에서 오도리성이 장백산 동남쪽에 있다는 표현은 실제 지리와 무관하게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3] 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르는 명칭 [24] 만주와 몽골에서 부족장을 가리키는 말으로, 청 왕조에서는 황자에 해당하는 직위로 쓰였다. 17황자면 17버일러로 쓰는 방식. [25] 만주어로는 퍼 만주 당서(Fe Manju Dang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