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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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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01.24. 정규앨범
1집 Got To Be There
1972.08.04. 정규앨범
2집 Ben
1973.04.15. 정규앨범
3집 Music & Me
1975.01.16. 정규앨범
4집 Forever, Michael
1979.08.10. 정규앨범
5집 Off the Wall
1982.11.30. 정규앨범
6집 Thriller
1987.08.31. 정규앨범
7집 Bad
1991.11.26. 정규앨범
8집 Dangerous
1995.06.20. 정규앨범
9집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
1997.05.20. 리믹스 앨범
Blood on the Dance Floor: HIStory in the Mix
2001.10.30. 정규앨범
10집 Invincible
2003.11.18. 컴필레이션 앨범
Number Ones
2004.11.16. 컴필레이션 앨범
The Ultimate Collection
2008.04.08. 정규앨범 25주년 기념판
6집 Thriller 25
2009.10.26. 컴필레이션 앨범
This Is It
2010.12.10. 사후앨범
11집 MICHAEL
2012.09.18. 정규앨범 25주년 기념판
7집 Bad 25
2014.05.09. 사후앨범
12집 Xscape
2017.09.29. 컴필레이션 앨범
Scream
2022.11.18. 정규앨범 40주년 기념판
6집 Thrill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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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잭슨 파이브 시절
2.1. Destiny World Tour (1979~1980)2.2. Triumph World Tour (1981)2.3. Victory World Tour (1984)
1. 솔로 활동 시절
1.1. 월드 투어
1.1.1. Bad World Tour (1987~1989)1.1.2. Dangerous World Tour (1992~1993)1.1.3. HIStory World Tour (1996~1997)1.1.4. This Is It World Tour (2009~2010) (취소됨)
1.2. 기타 콘서트
1.2.1. Royal Brunei Concert (1996)1.2.2. MJ & Friends (1999)1.2.3. 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2001)1.2.4. United We Stand: What More Can I Give (2001)1.2.5. Michael Jackson: Live at the Apollo (2002)1.2.6. 2014 빌보드 뮤직 어워드

1. 개요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 목록을 서술한 문서.

2. 잭슨 파이브 시절

2.1. Destiny World Tour (1979~1980)

파일:destiny-tour.jpg
Destiny World Tour
투어 기간 1979년 1월 22일 ~ 1980년 1월 13일
투어 횟수 83회
한국 공연 X
수익 $7,500,000
파일:230223-mj-destinytour1.jpg
〈Dancing Machine〉을 부르는 잭슨

Destiny 월드 투어는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마이클 잭슨이 성인 기준 최초로 선보이는 월드 투어로,
잭슨즈로 이름 변경 후, 1978년 발매된 잭슨즈 정규 3집 Destiny를 홍보하기 위해 펼친 콘서트이다. Destiny가 흑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게 된 이후, 콘서트의 셋리스트는 Jackson 5 시절 노래들과 The Jacksons의 수록곡들, 그리고 신보 Destiny의 수록곡들이 셋리스트에 담겨져있다. 그리고 1979년 중반 즈음, 마이클이 정규 5집 Off the Wall의 성공으로, Off The Wall 수록곡들도 포함되었다. [1] 그리고 마이클의 첫번째 투어가 성공적이게 마무리되면서 자신의 엄청난 말이 필요없는 대중음악 그 자체인 정규 6집과 함께 1981년 잭슨즈의 4집 앨범 월드 투어를 준비한다.

여담으로, 이 시기에 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사실 이때 프레디[2]는 잭슨 5 시절 불렀던 I Want You Back을 상당히 좋아했고, 마이클[3]은 퀸의 Bohemian Rhapsody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둘 다 인종, 스타일도 달랐지만 서로 팬이 되었고, 퀸 멤버가 전부 반대한 곡을 마이클이 이 곡을 안내면 정말 미친 짓이야! 라며 신신당부를 하자, 퀸의 최고 히트곡으로 사로잡은게 그 유명한 Another One Bites the Dust다. 그렇게 프레디와 마이클의 우정은 1980년을 기점으로, 1984년까지 만난걸로 알려졌다. 그리고 1984년 프레디의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과 "Victory"[4]라는 잭슨즈 5집 앨범 동명의 수록곡을 같이 작업했다고 하는데, 언젠간 공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투어가 진행된 년도는 1979년에서 1980년으로, 무려 45년 전이기에, 영상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워낙 옛날인지라, 화질도 굉장히 좋지가 않다. 그나마 화질이 깨끗한 라이브 영상은 1979년 런던에서 공연한게 가장 깔끔한데 링크가 있으니 한번 보는걸 추천한다.

1979년 런던 공연

2.2. Triumph World Tour (1981)

파일:static-assets-upload16032009321693717434.webp
Triumph World Tour
투어 기간 1981년 1월 8일 ~ 1981년 9월 26일
투어 횟수 45회
한국 공연 X
수익 $5,500,000
파일:mj-triumph-sept1981.jpg
투어에서 <Rock With You>를 부르는 잭슨

Triumph World Tour는 1981년 잭슨즈의 정규 4집 앨범 Triumph를 홍보하기 위해 개최된 콘서트이자 마이클 잭슨의 두번째 월드 투어이다. 1979년 Destiny World Tour가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1980년 4집을 내면서 마이클과 형제들이 함께 게획한 콘서트이다. 이 투어와 앨범을 전체적으로 보면, Destiny 시절과 Triumph 시절의 잭슨즈의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걸 볼 수 있다. 아무래도 멤버들의 평균 연령대가 26살이기 때문에, 확실히 성숙해졌다는게 보일정도이다. 그리고 셋리스트는 전반적으로 Desitny - Off the Wall - Triumph 순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실 전반적으로 Off the Wall World Tour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이 시기는 마이클이 정규 6집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인데, 이때 만들어진 노래가 The Girl Is Mine, Billie Jean, Beat It, Wanna Be Startin' Somethin' [5] 등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어쨌거나 형들과의 투어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한건 이 투어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1984년 Victory 투어때부터는 아예 형제들과 갈등이 생기고 도중에 탈퇴를 했으니 말이다.
파일:d0586d08-e13e-428d-8b13-b102dc090e0b-2060x1236.jpg
70년대의 거장 프레디와, 80년대의 거장 마이클

위에서 언급했듯이, Destiny World Tour때부터 퀸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우정이 더 돈독해진다. 퀸은 정규 8집 The Game이 크게 흥행하였고, 이것이 마이클의 힘도 있었기에 마침 퀸이 미국으로 투어를 돌고있었기 때문에 퀸과 마이클 잭슨은 이때 더더욱 친해진 계기가 된것이었다. 그리고 프레디는 이 은혜를 알고 정규 6집 Thriller 같이 작업할려했으나, 마이클이 키우는 라마때문에 결국 공동 작업은 무산되었다. (...) 그리고 정규 11집 The Works도 마이클이 도와주려 했으나, 역시 스케줄 문제로 인해 무산되었고, 둘 다 각각 1991년, 2009년에 사망한 나머지 퀸의 멤버들이 프레디와 마이클의 미공개곡을 공개하는데, 그게 바로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이다. 그 후 프레디와 마이클은, 3곡을 같이 작업한다. [6]

이 투어가 진행된 년도는 1981년이고, 역시 영상 자료가 굉장히 없는 투어 중 하나인데, 그나마 가장 화질이 좋은 투어 영상도 중간에 끊기거나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무리 찾아봐도 화질이 좋거나 영상 자료가 없어서, 그나마 81년 미국 U.S.A에서 공연한 영상이 화질이 좋다.

1981년 USA 공연

2.3. Victory World Tour (1984)

파일:빅토리 투어.jpg
Victory World Tour
투어 기간 1984년 7월 6일 ~ 1984년 12월 9일
투어 횟수 55회
한국 공연 X
수익 $75,000,000[7] (한화 약 928억 원)
파일:The Jackson's victory tour.jpg
〈Wanna Be Startin' Somethin'〉을 부르는 잭슨

Victory 월드 투어는 1984년 7월 6일부터 12월 9일까지 미국 캐나다에서 진행된 잭슨 5의 투어이다. 1979년 Destiny 월드 투어와 1981년 Triumph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1983년 11월, 마이클 잭슨은 1984년 투어 계획을 발표했으며 Victory 앨범이 1984년 7월 2일 발매되면서 투어의 시작을 알렸다. 이 투어에는 마이클 잭슨과 그의 형제들이 참여했고, 200만 명의 청중들을 동원하고 55회 공연되었다. 이 투어는 약 7,500만 달러(2020년 달러로 1억 8,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투어는 1984년 7월 1일 미국 버밍햄에서의 최종 리허설을 거쳐 7월 6일, 미국 캔자스 시티에서 투어를 시작하여 동년 12월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투어를 마쳤다. 이 투어는 공연 마다 평균 4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136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등 1984년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로 기록되었다.

Thriller 시기에는 의외로 마이클은 솔로 투어를 하지 못했다. 대신 형제들과 함께 잭슨 5의 새로운 앨범 Victory을 홍보하기 위해서 Victory 투어를 진행했다. 투어 이름은 Victory 투어이지만 정작 Victory 앨범의 노래는 세트 리스트에 없었고, 이전 잭슨 5 히트 노래들과 Off the Wall, Thriller의 노래 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거의 Thriller World Tour로 봐도 무방하다. 마이클은 가족들의 압박으로 투어에 참여한 것이었으며, 중간에 그의 형제들과 다투었기 때문에 투어는 조기 종료되었다. 마이클 잭슨은 투어 이후 본인의 몫을 자선 단체에 전액 기부하였다.

여담으로 1970년대 중반과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콘서트를 제외하고 빅토리 투어는 잭슨 형제 6명 모두가 작업에 참여한 몇 안되는 투어이고 ,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디 밴 헤일런이 스페셜 게스트로 7월 13일 미국 댈러스 리유니온 스타디움에서 Beat It 솔로 연주를 펼쳤다.

투어가 진행된 년도가 1984년이다보니 40년전이기에 마이클 잭슨의 규모있는 투어다 보니 다른 투어들에 비해 영상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캐나다 토론토 공연 영상이나 미국 댈러스 공연 영상도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1984년 토론토 공연

1. 솔로 활동 시절

1.1. 월드 투어

1.1.1. Bad World Tour (1987~1989)

파일:배드 월드 투어.png
Bad World Tour
투어 기간 1987년 9월 12일 ~ 1989년 1월 27일
스폰서 파일:펩시 1973년 로고.png
투어 횟수 123회
한국 공연 X
수익 $125,738,964[8][9] (한화 약 3,240억 원)
파일:배드 투어 TWYMMF.jpg
투어에서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는 잭슨

16개월간 진행된 이 투어는 총 15개국을 돌며 4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123번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는 1980년대 진행된 투어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거두었으며 단독 아티스트로서는 최고기록이었다.

1987년 6월 29일, 잭슨의 매니저 프랭크 디리오가 그의 첫 번째 단독 월드 콘서트 투어를 시작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펩시의 후원하에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600명이 넘는 기자, 카메라맨, 팬들은 잭슨의 일본 도착을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기다렸다. 잭슨의 투어 수행원 132명과 함께 22대의 트럭을 실어 나르는 전세 점보 제트기가 사용되었다. 무대 세트는 700개의 조명, 100개의 스피커, 40개의 레이저, 3개의 거울, 2개의 24x18피트 스크린을 사용했다. 공연자들은 70벌의 의상을 입었는데, 그 중 4벌은 광섬유 조명이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의 첫 14일간의 관객수는 45만 명으로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잭슨은 1988년 5월 23일 플라미니오 경기장에서 유럽 투어를 시작했다. 경찰과 보안 요원들은 35,000명의 군중 속에 깔려 있는 수백 명의 팬들을 구조했다. 경찰은 6월 2일 비엔나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130명의 여성이 실신했다고 보고했다. 6월 17일 잭슨은 코믹 배우 찰리 채플린의 아내 오오나 오닐을 만나기 위해 베베이로 여행을 떠났다. 방문 후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1차 투어 때는 잭슨즈 시절 - Off the wall - Thriller 시기의 곡이 세트 리스트에 주로 들어갔고, 2차 투어때는 Off the wall - Thriller - Bad 시기의 곡의 비중이 높아졌다.[10]
파일:배드 투어 웸블리 관객.jpg
잭슨을 보기 위해 모인 웸블리의 관객들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콘서트 중 하나는 1988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다. 이때 티켓 수요가 150만 회를 넘어섰는데, 이는 72,000명의 만석을 20번 채울 수 있는 규모였다. 결국 7번의 콘서트로 504,000명의 관객을 수용하며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었고, 이후 관계자들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했다.

당시 유럽을 포함한 투어 일정에 포함된 여러 나라의 관객과 팬들은 단지 마이클 잭슨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하였으며 수많은 인파와 기자, 파파라치들로 인해 마이클 잭슨은 정상적인 이동이 불가능했다. 9월 11일 리버풀에서 열린 마지막 유럽 콘서트는 아인트리 레이스 코스에서 열렸다. 약 1,550명의 팬들이 125,000명 이상의 관중들 사이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보도되었다.

1차 투어 영상은 일본 요코하마 공연이 대표적이고, 2차 투어 영상은 1988년 영국 런던 공연이 있다. 특히 영국 웸블리 공연은 DVD로 발매된 상태이지만, 몇 곡을 제외하면 저작권 문제 때문에 유튜브에서 삭제되곤 했었다. 하지만 2019년 3월 5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1988년 7월 16일 열렸던 웸블리 공연의 풀영상이 공개되었다.

1987년 요코하마 공연

1.1.2. Dangerous World Tour (1992~1993)

파일:데인저러스 월드 투어 로고.png
Dangerous World Tour
투어 기간 1992년 6월 27일 ~ 1993년 11월 11일
스폰서 파일:펩시 1973년 로고.png
투어 횟수 69회
한국 공연 진행 예정이었으나 취소됨
수익 전액 기부[11]
파일:데인저러스 투어 잼.jpg
투어 오프닝 무대인 〈Jam〉을 공연하는 잭슨

1989년 1월, 성공적으로 월드 투어를 마친 잭슨은 더이상의 투어를 하지 않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전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데인저러스 앨범 발매 이후, 1992년 2월 3일 뉴욕시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월드 투어 계획을 발표하기 위한 기자 회견이 열렸다. 200명이 참석한 이 행사는 잭슨의 스폰서 펩시가 기획했다. 잭슨은 또 한 번 하는 투어의 유일한 이유는 어린이들과 환경을 돕기 위해 본인의 자산으로 설립한 '힐 더 월드 재단'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1993년 크리스마스까지 1억 달러 모금을 목표로 삼았다.

69번의 콘서트에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으며 (무죄판결이 난) 잭슨의 첫 번째 아동성추행 혐의과 진통제 중독으로 인해 투어를 중단하게 된다. 이번 투어부터 그는 이전에 서구 문화 영향권에 포함되지 않았던 낙후된 국가나 지역들도 투어에 포함시키는데, 앞서 기술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마이클 잭슨은 그들에게 있어 최초의 서방국가 연예인이었다. 그에 따른 충격과 인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파일:마이클 잭슨 윌 유 비 데어.jpg
〈Will You Be There〉 퍼포먼스 중 일부

투어 의상에만 자그마치 200만 달러가 들었으며 투어는 57000명의 평균 관객을 동원하여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12]를 기록했고, 이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최고기록이자 90년대 가장 많은 평균 관객을 동원한 투어이다.

1988년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처럼 199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고화질 DVD로 발매되었고[13], 참고로 이 날 공연이 수 천 명의 사람들을 기절시킨 그 전설의 공연이다. 앞줄에서 기절한 팬들이 응급구조대원들의 들것으로 실려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14]
파일:man in the.jpg
투어 마지막 곡인 〈Man in the Mirror〉를 부르는 잭슨

데인저러스 투어는 그야말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남미의 주요 국가들과 이스라엘, 러시아 루마니아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이 투어에 포함되었다. 1993년 진행된 2차 투어 도중에 거짓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미국 경찰의 미심쩍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탈수증세로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고, 투어 막바지에는 진통제 중독으로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한 채 멕시코에서 투어를 종료했다. 또한 이때부터 미국을 투어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한 번도 공연하지 않았고 《 HIStory》 월드 투어 때, 그마저도 본토가 아닌 하와이에서만 2번 공연을 펼쳤다. 이 투어 때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를 투어에 포함시켰는데 에스타디오 아스테카를 비롯한 거대 구장들 덕에 멕시코(5회)와 아르헨티나(3회)에서는 8일간 80만명이라는 관중 동원을 보여줬다.

여담이지만 Jam을 공연할 때 복장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번 째는 위 사진에 쓰인 복장과 슈퍼볼 공연으로 유명한 검은 색 복장이다 은색 자켓은 1992년 공연에서만 사용되었고 1993년 공연때 잭슨 파이브 메들리에서 입기도 했다. 두 번째 자켓인 블랙 자켓은 1992년 6월 27일 뮌헨 공연과 1992년 12월 일본 도쿄공연에서 사용되었고 1993년 공연에서는 이 자켓만 입는다. 1996년 브루나이 로얄 콘서트에서 이 자켓을 입었다. 그리고 Dangerous 투어부터 동영상의 화질이 확연히 좋아진다.

1992년 리허설
1992년 오슬로 공연
1993년 리허설

1.1.3. HIStory World Tour (1996~1997)

파일:히스토리 월드 투어 로고.png
HIStory World Tour
투어 기간 1996년 9월 7일 ~ 1997년 10월 15일
투어 횟수 83회
한국 공연 1996년 10월 11일, 10월 13일; 총 2회[15]
수익 $165,000,000[16] (한화 약 3,110억 원)
파일:히스토리 투어 TDCAU.jpg
〈They Don't Care About Us〉을 공연하는 잭슨

히스토리 투어는 데인저러스 월드 투어 이후 진행된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투어이다.[17] 전세계 모든 대륙을 돌며 치른 82번의 공연에 총 4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파일:히스토리 투어 얼스 송.jpg
〈Earth Song〉을 부르며 평화 퍼포먼스를 하는 잭슨

투어에서 잭슨은 라이브를 포기하고 퍼포먼스에만 주력했는데, 때문에 립싱크 논란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잭슨의 목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투어를 진행해야 했던 그는 퍼포먼스의 비중을 과감히 늘리고 세트리스트의 거의 모든 곡들을 립싱크 떼우는 모습을 보인다.[18] 아무리 퍼포먼스를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가수인 이상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19]

첫 번째 공연은 프라하의 레트나 파크에서 펼쳤으며, 12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역사상 가장 규모있는 콘서트 중 하나였다. 1996년 10월 7일에는 처음으로 아랍권 국가 튀니지에서 공연을 했으며, 호주 시드니에서 투어를 하는 동안 간호사 데비 로우와 비공개적으로 결혼했다.[20] 1997년 1월 3일부터 4일까지, 잭슨은 하와이 호놀룰루의 알로하 경기장에서 35,000명의 관중을 동원하여 유일한 두 번의 미국 콘서트를 진행하였으며 경기장을 매진시킨 역사상 최초의 예술가가 되었다.
파일:Michael Jackson in Seoul.jpg
국기 퍼포먼스와 함께 〈History〉를 공연하는 잭슨

1996년 10월 11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한국에서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내한 반대 시위를 하기도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공연은 계획대로 이뤄졌다. 잭슨의 내한은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치러졌으며,[21] 해외에서도 크레인에 난입했던 어느 한 팬 덕분에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잭슨의 내한 공연은 녹화되어 유일한 VHS로 남아있는데, 그의 투어 영상 중 최악의 목상태로 공연한 영상으로 남았다.
파일:히스토리 투어 BOTDF.jpg
〈Blood on the Dance Floor〉를 부르는 잭슨

2차 공연은 1997년 5월 31일 독일 브레멘에서 시작되었다. 세트 리스트에는 신곡 〈Blood on the Dance Floor〉가 추가되었고, 이후 《 Off the Wall》 메들리와 〈The Way You Make Me Feel〉이 제외되었으며, 추가됐던 〈Blood on the Dance Floor〉는 1997년 8월 19일 오슬로 콘서트가 끝난 후 제외되었다.

잭슨이 39번째 생일을 맞은 덴마크 코펜하겐 공연에서는 60,000명의 팬들이 함께 했으며, 〈 You Are Not Alone〉 공연 후 크루들이 그를 위해 생일 케이크, 행진 밴드, 불꽃놀이 등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이전 투어들과는 달리 정발된 DVD는 없고, 저화질이지만 서울에서 녹화된 유일한 VHS가 있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투어들과는 달리 꽤 많은 고화질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상태라서 여러 공연들을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하다. 특히 독일 뮌헨 공연이 HD로 촬영되어 풀린 콘서트가 있으나, 잭슨의 컨디션 상태가 최악이라서 별로 추천되지 않는다.[22] 제일 목소리, 컨디션 상태 좋은 콘서트는 1996년 12월 31 브루나이 콘서트이고[23], 꽤 좋은 화질과 음질의 영상들이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잭슨 파이브로서 참가한 빅토리 투어를 제외하고 했던 3번의의 월드 투어 관중 수를 합치면 1,240만 명에 달한하며 여기에다가 빅토리 투어를 합치면 무려 1,440만 명이 된다.

1997년 뮌헨 공연

1.1.4. This Is It World Tour (2009~2010) (취소됨)

파일:마잭디시짓.jpg
This Is It World Tour
투어 기간 (예정) 2009년 7월 ~ 2010년 3월
투어 횟수 (예정) 50회[24]
한국 공연 (예정) ?
수익 (추정) $? (한화 약 ? 원)

This Is It은 마이클 잭슨이 할 예정이었던 투어이다.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이 투어가 마지막 투어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컴백을 선언했다. 이 투어는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릴 계획이었다.[25] 이 투어는 2009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이 투어는 라이브 기업인 AEG live와 계약했으며, 1997년 히스토리 투어로부터 공식적으로 12년 만에 개최하는 투어였다. 75만 장의 티켓이 5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회사 측은 세계의 디자이너들을 뽑아 콘서트 제작에 참여시켰다.

첫 번째 투어 티켓은 전부 매진되었으나, 2009년 6월 25일에 투어를 며칠 앞두고 마이클 잭슨이 갑자기 사망하여 투어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티켓을 산 사람들은 환불하지 않고 유품으로 간직하거나 심지어 경매에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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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oth Criminal〉을 리허설 하는 잭슨[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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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 Song〉을 리허설하는 잭슨[27]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뒤, 그가 한 This Is It 투어의 리허설 영상을 모아서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28]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콘서트 영화가 제작되었고 2009년 10월에 개봉했다.

티켓의 경우 환불하지 않은 사람들은 메모리얼 책자와 함께 티켓이 배송되었다.

1.2. 기타 콘서트

1.2.1. Royal Brunei Concert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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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yal Brunei Concert
콘서트 기간 1996년 7월 8일, 1996년 7월 19일
콘서트 횟수 2회
장소 브루나이 제루동 파크

1996년 7월 16일 History 투어를 실행하기 전,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공연을 개최하여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의상과 세트 리스트는 Dangerous 투어와 거의 동일한데, 끝 부분에 You Are Not Alone Earth Song 당시 최신곡들이 추가되었다. 마이클이 Billie Jean Beat It을 생전 마지막으로 풀 라이브로 부른 공연이다. 특이하게도 Billie Jean을 이전과 달리 빠른 템포가 아닌 원곡과 동일한 템포로 불러서, 마이클이 유일하게 100% 라이브로 부른 원곡 템포의 Billie Jean이다. ##

1.2.2. MJ & Friends (1999)

파일:마이클 잭슨과 친구들.jpg
Michael Jackson and Friends
콘서트 기간 1999 6월 25일 ~ 1999년 6월 27일
콘서트 횟수 2회
장소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서울,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독일|]][[틀:국기|]][[틀:국기|]], 뮌헨,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

1999년 6월 25일 대한민국 서울, 6월 27일 독일 뮌헨에서 마이클과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MJ & Friends 콘서트 2개가 진행되었다. 서울 내한 뮌헨 참고로 뮌헨 공연 때 마이클이 Earth Song를 부르던 중 올라타 있던 플랫폼이 꺼져서 사고를 당했는데, 당시 사고가 영상에 나온다. 근데 마이클은 척추를 부상 당했는데도 끝까지 다음 노래 You Are Not Alone을 불렀다.

1.2.3. 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2001)

파일:마이클 잭슨 30주년 1.jpg
Michael Jackson: 30th Anniversary Celebration
콘서트 기간 2001년 9월 7일 ~ 2001년 9월 10일
콘서트 횟수 2회
장소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
파일:마이클 잭슨 30주년 2.jpg
완전체로 모인 잭슨스( 잭슨 파이브)

2001년 9월 7일과 10일 마이클 잭슨의 솔로 데뷔 30주년[29]을 기념해 열린 헌정 콘서트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 공연은 CBS를 통해 방송되었으며 약 2,900만 명이 시청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콘의 30주년 공연이다보니 두 시간만에 전석 매진되어 뉴욕시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채웠으며, 가장 좋은 좌석은 천만원 상당을 호가했다. 하지만 천만원도 비싼 가격이 아닌게 마이클 잭슨과의 저녁 식사와 친필 서명이 쓰여진 포스터가 옵션이었기에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다.
파일:마이클 잭슨 30주년 3.jpg
〈The Way You Make Me Feel〉을 부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잭슨

참여 인원도 상당히 화려한데, 사회를 사무엘 L. 잭슨이 보았고, 당시 인기를 끌던 어셔 데스티니 차일드, *NSYNC, 브리트니 스피어스 외에도 휘트니 휴스턴, 레이 찰스, 리자 미넬리 등 리빙 레전드들도 헌정 공연을 펼쳤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 맥컬리 컬킨이 자리를 빛내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잭슨스(잭슨 파이브)가 잭슨과 합동 공연을 펼치며 1984년 빅토리 투어 이후 17년만에 완전체인 잭슨 파이브를 볼 수 있었다.

잭슨은 자신을 향한 헌정 무대 하나하나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관람했으며[30], 이후 잭슨스와 6곡 메들리를, 신곡 〈You Rock My World〉를 포함한 솔로곡 5곡을 완벽하게 공연하며 진정 레전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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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Jean〉 무대에서 트레이드 마크 포즈를 짓는 잭슨

특히 두 번째 날 공연에서 선보인 〈 Billie Jean〉 무대[32]는 중년의 나이를 실감할 수 없게 만드는 그야말로 최고의 무대였으며, 많은 팬들은 이 날의 퍼포먼스를 가장 완벽한 빌리 진 무대로 꼽기도 한다.

1.2.4. United We Stand: What More Can I Give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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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We Stand: What More Can I Give
콘서트 기간 2001년 10월 21일
콘서트 횟수 1회
장소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워싱턴 D.C., RFK 스타디움

2001년 9월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가 일어난다. [33]그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10월, 실의에 빠진 국민을 위로하고 자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수많은 아티스트가 자선 콘서트를 진행한다. 맥컬리 컬킨, 머라이어 캐리, 백스트리트 보이즈, 제임스 브라운, 빌리 길먼, 어셔, 핑크 등이 참여했다. 마이클 잭슨이 《 Man in the Mirror》와 《 What More Can I Give》 무대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다만 공식 영상은 《 What More Can I Give》 무대만 남아있다. 이날 콘서트를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열린 마이클 잭슨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에 대해 CBS가 독점 녹화 중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콘서트가 먼저 방송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30주년 콘서트가 방송될 예정이었다. CBS 측은 마이클 잭슨이 출연하는 두 콘서트가 단기간에 연속으로 방송되면 시청률이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고, 이날 공연의 《 Man in the Mirror》 무대 영상은 편집되었다.

1.2.5. Michael Jackson: Live at the Apollo (2002)

파일:190424_MJ_900px.jpg
Live At The Apollo
콘서트 기간 2002년 4월 24일
콘서트 횟수 1회
장소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뉴욕시, 아폴로 극장


마이클의 생전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는 2002년 4월 24일 이였다. 뉴욕시 아폴로 극장에서 진행되었으면서,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이 개최한 모금 행사였다. Dangerous, Black or White, Heal the World 3곡을 불렀다. -- 일부 비디오와 오디오

1.2.6. 2014 빌보드 뮤직 어워드


2014년 5월 20일 열린 2014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마이클 잭슨이 홀로그램으로 부활해서 《 Xscape》에 수록 된 노래인 Slave to the Rhythm을 공연했다. 납작한 한 폭의 그림에서 왕좌에 앉아있는 잭슨이 입체화되어 공연을 하다가 곡의 막바지에 다시 왕좌에 앉으며 그림으로 돌아가는 연출이 인상깊다. 의상은 녹음 시기를 고려했는지 Dangerous 당시 입었던 의상이다.

팬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꽤 갈린다. 홀로그램이라도 그를 볼 수 있어 기쁘다는 팬도 있는 반면 죽어서도 계속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팬도 있다. 어쨌든 공통적인 의견은 ' 마이클 잭슨은 춤을 이렇게 못 추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홀로그램이라도 춤 자체는 댄서가 춘 것일테니. 하필 많고 많은 댄서들 중 마이클 잭슨과 비교당한 모션 캡쳐 댄서에게 묵념.
[1] 예를 들면,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Rock With You가 대표적. [2] 당시 23살(한국나이 24살) [3] 당시 17살(한국나이 18살) [4] 스케줄 문제 때문인지, 제목에만 Victory라고 써져있고, 곡은 수록되있지 않다. [5] 실제로 Off The Wall 수록곡이 될 예정이었다. [6]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State Of Shock, 그리고 Victory이다. [7] 현재 가치로 따지면 $187,000,000. [8] 현재 가치로 따지면 $271,821,176. [9] 1980년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어 2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1위는 핑크 플로이드의 'A Momentary Lapse of Reason Tour'. [10] 1차 투어는 Bad 앨범 발매 직후에 했었어서 당시 최근 앨범이었던 Bad 앨범의 수록곡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호주 공연 이후에 마이클은 투어를 재정비하고 88년 2차 투어부터 Bad 앨범의 수록곡이 세트리스트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Dangerous 투어부터는 앨범 발매후 시간이 조금 지나서 투어를 하기 시작한다. [11] 애당초 투어의 목적이 자선 활동을 위한 기금 마련이었기 때문에 투어로 얻은 수익 전부를 자신이 설립한 '힐 더 월드 재단'을 비롯한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12] 1, 2위는 각각 U2 롤링 스톤스. [13]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연 풀영상이 올라와 있다. [14] 사망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종종 인터넷에 돌아다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루머이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들 중에서 관중이 사망한 공연은 단 한개도 없다. [15]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진행되었으며, 두 번의 공연 모두 전석 매진되었다. [16] 현재 가치로 따지면 $262,789,179. [17] 원래는 2009년 예정되어 있었던 '디스 이즈 잇 투어(This Is It Tour)'가 커리어 마지막 투어가 될 뻔 했지만, 잭슨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히스토리가 공식적인 마지막 투어가 되었다. [18] 잭슨 파이브 메들리와 평생 단 한 번도 립싱크한 적 없는 Wanna Be Startin' Somethin', '히히' 정도의 추임새는 직접 했다. [19] 사실 마이클 잭슨은 굉장히 어린시절부터 계속해서 투어를 진행했고 원래대로면 Bad Tour를 마지막으로 투어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앨범 판매를 위해 억지로 공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 해에는 이 투어와는 별개로 Brunie Royal Concert도 진행했으니 몸이 피로할 수 밖에 없다. [20] 이후 잭슨은 데비 로우와 생활 중 두 명의 자녀를 얻는다. [21] 비싼 티켓값, 미성년자 입장 불가 규정 등으로 인해 전 좌석 매진은 달성하지 못하고 70% 정도의 객석만 채워졌다. [22] 원래 이 콘서트도 DVD로 발매할 겸 HD로 촬영되었지만 잭슨이 자신의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해서 취소되었다는게 정설이다. 그리고 이 날 감기에 걸렸었다는 게 팬들의 추측. 심지어 히스토리 투어 전체에서 유일하게 마이클이 문워크 이후 스핀 안 한 콘서트이다. [23] 다른 콘서트과 달리 마이클이 첫 곡 Scream을 라이브로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 [24] 원래는 10회였지만 회사 측에서 잭슨의 의사와 상관 없이 일방적으로 50회로 늘렸다 [25] '투어'라고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다른 국가나 다른 공연장 얘기는 없었다. O2 아레나에서만 6개월 이상을 공연하는 형식이었기에 위키피디아는 이를 'concert residency'로 분류하고 있다. [26] 그의 생애 마지막 댄스 리허설이다. 50세의 나이를 실감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리허설이자 마치 리허설이 아닌 실제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최고의 리허설이다. [27] 2009년 6월 24일에 한 그의 생애 마지막 리허설이다. 다음 날인 6월 25일에 마이클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28] 넷플릭스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29] 싱글 〈Got to Be There〉 발매일인 1971년 9월 7일 기준. 잭슨 파이브로 데뷔한 날짜는 1968년 1월 31일이다. [30] 무대가 끝날 때마다 가수와 눈을 맞추고 따봉을 날리거나 박수를 쳐주며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31] You Rock My World는 후에 자신의 정규 10집 수록곡이 된다. [32] 첫 날의 공연은 잭슨의 컨디션이 안좋았는지 중간 문워크 부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33] 마이클 잭슨이 30주년 공연을 한 바로 다음날에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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