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년대의 마르완 왕조
1. 개요
중세 쿠르드인의 첫 번째 독립국가990년~1085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 북부(자지라)와 아르메니아 서남부, 쿠르디스탄 북부(디야르바크르, 반 호수 일대)를 다스린 아랍/ 쿠르드계 왕조.
쿠르드인이 지도층 위주이긴 했으나 중세 쿠르드인의 첫 번째 독립국가로 여겨진다. 신기하게도 왕국의 동남부 경계가 오늘날의 터키 - 시리아/이라크/이란 국경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토도 현 터키 동남부 그 자체이다. 10세기 말부터 힘이 약해진 쉬아파 부와이 왕조로부터 독립했으나, 수니파 셀주크 제국에게 복속되었다가 결국 합병당하여 멸망했다. 살라딘(살리흐 앗 딘)의 아이유브 왕조 가문이 이 왕조 출신이라고 전해진다.[1]
2. 건국
창건자인 아부 슈자 바드 이븐 두스타크는 목동 집안 출신의 토호였다. 그는 바르다스 스클리로스의 반란에 호응하여 거병한 후, 타론을 습격하고 무쉬를 약탈했다. 979년 말라즈기르트와 아흘라트를 장악한 바드는 10세기 중반에 메소포타미아와 이란 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던 이라크 부와이 왕조의 통치자 아브드 앗 다울라의 죽음(983) 이후 왕조가 쇠퇴하자 독립을 선포했다.지역 강대국이었던 함단 왕조마저 동로마 제국의 공세에 쇠퇴하자, 바드는 세력의 공백을 틈타 디야르바크르에서 반 호 북안에 이르는 영토를 확보했고, 종종 동로마 제국령 아르메니아[2]도 공격했다. 그 결과 984년 마야파리킨(마이페르카트 / 실반)을 포함한 디야르바크르 분지 전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991년 바드는 함단 왕조와 싸우다 전사했고, 조카인 아부 알리 하산 이븐 마르완이 계승했다.
3. 전성기
하산케이프(헤스케프 / 히신카이파)에서 바드의 과부와 재혼한 하산 이븐 마르완은 숙부의 전쟁을 계속하여 쇠락한 함단 왕조로부터 실지를 회복햤으나 997년 아미드(현 디야르바크르)에서의 반란 당시 군중에게 피살되었다. 하산을 계승한 동생 아부 만수르 사이드는 라카브로 무마히드 앗 다울라를 칭했고, 동로마 황제 바실리오스 2세와 휴전을 맺어 평화를 구가했다. 1000년에 타오 공국의 다비트 3세가 공국을 동로마 제국에 넘긴다는 유언을 했고, 이에 따라 바실리오스 2세가 그 일대를 접수하러 오자 무마히드 앗 다울라는 그를 알현하고, 복종을 서약하여 '오리엔트의 둑스' 칭호를 하사받았다. 이어진 평화 기간동안 마야파리킨에 성벽을 두른 무마히드 앗 다울라는 1010년, 자신의 굴람(노예 병사)이었던 샤르윈 이븐 무함마드에게 암살당했고, 샤르원은 그대로 정권을 장악했으나 곧 반발에 직면했다. 그 결과 1111년 무마히드 앗 다울라의 동생 나스르 앗 다울라 아흐마드가 샤르윈을 축출하고, 마르완 왕가의 지배를 회복했다.
나스르 앗 다울라 아흐마드는 뛰어난 감각으로 파티마 왕조, 부와이 왕조, 동로마 제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바실리오스 2세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1026년 알-루하( 샨르우르파)의 주민들이 아랍 지배자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을 요청하자 나스르 앗 다울라는 그 일대를 병합했고, 자지라 지역의 대부분을 점유하게 되었다. 다만 루하는 1031년, 기존에 도시를 지배하던 아랍 부족과 동맹한 동로마군 장수 게오르기오스 마니아케스에게 점령되었다. 이듬해(1032) 나스르 앗 다울라는 쿠르드인 장군 발 휘하 5,000명의 기병을 파병했다. 발은 친로마파 아랍 부족장을 죽이고, 도시를 장악한 후 주군에게 '케르타스탄( 쿠르디스탄)의 패권을 지키고 싶다면'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르완 왕조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동로마 제국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고, 결국 1033년 동로마군에게 재차 루하를 상실하고 말았다. 다만 이후로는 한동안 평화가 이어졌다.
4. 멸망
1061년 나스르 앗 다울라의 승하와 함께 마르완 왕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부왕을 계승한 차남 니잠 앗 다울라 나스르는 1079년까지 조용히 셀주크 제국의 번왕으로 머물렀고, 사후 나시르 앗 다울라 만수르가 계승했다. 1083년 마르완 왕조를 포함한 여러 왕조들에서 재상을 역임한바 있었던 파크르 앗 다울라 이븐 자히르가 바그다드로 향하여 셀주크 술탄 말리크샤와 와지르 니잠 알 물크에게 자신이 내통할테니 마야파리킨을 공격하라고 제안했다. 이후 도시가 손쉽게 점령되자 이븐 자히르는 마르완 왕가의 보물을 착복했다.(1085) 이로써 마르완 왕조는 다소 허망하게 붕괴되었고, 디야르바크르 분지는 셀주크 제국의 직할령이 되었다. 비록 마지막 아미르 나시르 앗 다울라는 기존 영토의 동남쪽 귀퉁이인 자지라트 이븐 우마르( 지즈레)의 영주로 남았으나, 그마저도 1096년 1월 나시르 앗 다울라가 사망하자 휘하의 맘루크인 지키르미쉬가 찬탈하면서 마르완 왕조는 완전히 소멸되었다.[3]5. 역대 군주
1. 아부 슈자 바드 이븐 두스타크(Abu Shujā' Badh ibn Dustak) (983/990~991)2. 알 하산 이븐 마르완(Al-Hasan ibn Marwān) (991~997)
3. 무마히드 알 다울라 사이드(Mumahhid al-Dawla Sa’īd) (997~1010)
4. 샤르윈 이븐 무함마드(Sharwin ibn Muhammad) (1010), 찬탈자.
5. 나스르 알 다울라 아흐마드 이븐 마르완(Nasr al-Dawla Ahmad ibn Marwān) (1011~1061)
6. 니잠 알 다울라 나스르(Nizām al-Dawla Nasr) (1061~1079)
7. 나시르 알 다울라 만수르(Nasir al-Dawla Mansur) (1079~1085)
6. 여담
우마이야 왕조 중후반부를 마르완 왕조라 부르기도 한다. 마르완 1세의 촌수가 왕조의 개창자인 무아위야 1세 및 그 손자이자 직전 칼리파 무아위야 2세와 각각 부계 6촌(형제), 8촌(할아버지뻘-손자뻘)으로 상당히 멀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계승이 아닌 사실상의 새 왕조로서 구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완 1세는오히려 우마이야 왕조 이전 정통 칼리파 시대의 우스만 이븐 아판 칼리파와 촌수가 4촌(형제)으로 왕조 창립자인 무아위야 1세와의 6촌보다 더 가까웠다.(...)7. 지도
함단 왕조의 속국 시절의 마르완 왕조
바르다스 스클리로스의 반란 후 확장된 마르완 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