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0:25:37

리차드 위트컴

리차드 시버리 위트컴
Richard Seabury Whitcomb
파일:1000126306.jpg
출생 1894년 12월 27일
미국 캔자스주 토피카
사망 1982년 7월 12일 (향년 82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기지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준장
복무 기간 ?~1954
학력 와이오밍 대학교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캔자스주 토피카에서 태어났고 와이오밍 대학교 ROTC 출신으로 육군 소위에 임관해 1차대전에 참가했다. 2차대전 당시 소령으로 아이슬란드에 있다가 영국, 프랑스에서 복무했다. 6.25 전쟁 당시 준장이였으며 제2군수사령관으로 1953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1953년 11월 27일. 부산 중구 영주동 판자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씨였지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됐고 언덕을 내려와 부산역까지 화마가 내려왔다. 일명 부산역전 대화재로 인해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무려 3만여 명의 피란민이 집을 잃었다. 

이때 위트컴이 군법을 어겨가며 텐트와 먹을 것을 나눠준 것은 물론 학교, 병원, 이주주택, 고아원을 지었다. 이에 미국 본토에서 군법을 어긴것에 대해 청문회를 열었고 출석해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라고 말했고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1954년 준장으로 전역했다.

전후 환자가 넘쳐나자 AFAK(미군대한원조) 기금을 지원받아 160병상을 갖춘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준 것이 메리놀병원이다. 건축비가 모자라자 휘하 장병에게 ‘한국사랑기금’이란 이름으로 월급의 1%를 기부하자고 호소했다. 부산의 유엔평화기념관엔 “가장행렬을 해서라도 기금을 모으겠다”며 군복 대신 갓과 도포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메리놀병원뿐만 아니라 성분도병원, 복음병원을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고 부산대학교의 부지를 금정구 장전동으로 정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 후로도 부산에 머물면서 재단을 세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 송환을 위해 노력하고 고아들을 돌보다가 1982년 용산기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죽기전 남긴 유언에 따라 재한유엔공원에 안장되었다.[1] 2022년 11월 8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에 수여되었다.

3. 여담

  • 부인인 한묘숙은 그가 세상을 떠났음에도 재단을 운영했고 2017년 세상을 떠났다.
  • 재한유엔기념공원의 박물관에 그가 찼던 권총집이 전시되어 있다.


[1] 유엔공원에 있는 미군 매장자 32구중 유일한 장성매장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