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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관계(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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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근대2.2. 현대
3. 관련문서

1. 개요

리비아의 서부 트리폴리타니아, 남서부 페잔과 동부 키레나이카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근대

고대에 이집트 나일 강 서부 일대는 "리비아"라고 불렸으며, 여기에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페잔 지역도 포함되었다. 일부 베르베르인들이 이 지역에 거주했고, 그리스인들과 페니키아인들도 이곳에 여러 식민도시들을 건설했으며, 페니키아인들의 경우 카르타고를 세웠다. 베르베르인들은 주로 페잔에 거주했으며, 가라만테스 왕국이 발흥하자 그 통치를 받으며 지리적 이점으로 인한 중개무역으로 번성했다.

그러다가 제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가 이곳들을 차지했다. 시간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지면서 트리폴리타니아는 서로마, 키레나이카는 동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트리폴리타니아는 잠시 동로마 제국이 되찾기도 했다. 이후 베르베르의 지배를 받다가 정통 칼리파 시대부터 두 지역들은 나중에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파티마 왕조를 거쳐 아랍인에게 점령되어 아랍화되었으며,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이슬람화 역시 진행되었다. 그 당시 리비아 서부인 트리폴리타니아는 지금의 튀니지에 가까웠고 리비아 동부인 키레나이카는 이집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이집트에서 세워진 파티마 왕조의 통치를 받기도 했다. 페잔의 경우 트리폴리타니아와 더불어 리비아 서부이다보니 트리폴리타니아로부터 지금의 튀니지 방면 세력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근세시대에는 오스만 제국, 근대시대에는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던 시기 이탈리아령 트리폴리타니아와 키레나이카 일대들이 합쳐지면서 이탈리아령 리비아가 되었다. 페잔 역시 근세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근대시대에는 이탈리아 왕국에 점령당했으며, 이탈리아-투르크 전쟁이 끝난 후 이탈리아령 리비아의 영역이 되면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2.2.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 이탈리아군의 삽질 덕분에 이탈리아군이 영국군에게 쫒겨나면서 트리폴리타니아 지역과 키레나이카 지역이 군부 통치를 받았고, 페잔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군이 역시 이탈리아의 점령군을 몰아내고 군부통치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점령통치 당시 연합군, 특히 영국의 리비아 전선을 내부에서 지원하던 세르시 교단의 사이드 이드리스가 1949년 스스로를 에미르로 자칭하고 영국의 묵인하에 키레나이카 토후국을 설립했다. 이후 UN의 결의안대로 영국이 여전히 군부통치 중이던 트리폴리타니아 지역과 프랑스가 통치하던 페잔 지역을 키레나이카 토후국에 양도하게 되면서 1951년 리비아 왕국이 수립하였고, 사이드 이드리스는 리비아 왕국의 초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이드리스 1세가 되었다.

이때부터 현재 리비아의 영역이 되었으나, 리비아인의 정체성이 나타난 것은 이 시기가 아니다. 3개 지역을 자치주로 두고 각각 총독을 파견하는 식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드리스 1세는 국민통합 같은데 관심 자체가 없었다. 공식수도가 트리폴리, 벵가지, 베이다 세 곳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왕궁은 트리폴리에 지어졌다.

리비아인의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카다피의 쿠데타로 이드리스가 축출되고, 리비아 아랍 공화국이 성립되면서부터다. 이 쿠데타가 성공한 근본 자체가 이드리스의 패악질 때문이었다. 연합국의 도움 덕분에 어부지리로 왕이 된 이드리스는 그동안 이탈리아에게 억눌려있던 부족들의 반목을 전혀 관리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근거지인 키레나이카 지역을 대놓고 밀어주며 동서갈등을 더 부추겼다. 그러면서 왕궁은 트리폴리타니아 지역의 수도인 트리폴리에다가 지어놨다.

리비아/역사 문서를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이 두 지역은 마그레브 이집트 영향권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수천년의 역사동안 통합되어 있었던 적은 모두 합쳐도 두어세기가 채 안될 정도였는데, 갑자기 나타난 왕이라고 하는 자가 독립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전혀 이질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통치세력이니 중간관리자니 하며 부족들을 누르기 시작하니 사회가 안정될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카다피의 철권통치는 수세기동안 이어진 동서반목 내지 갈등을 찍어눌러서 어느정도 봉합하긴 했다. 각 지역의 자치 따위를 허용할 독재자가 아니니 당연히 각 지역의 특성과 문화보다는 하나의 리비아로써의 정체성을 심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게 올바른 방법은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며 이 동서갈등이 터져나오는 상황이다.

2011년 제1차 리비아 내전 시기, 키레나이카 지역은 봉기 반군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주영역이었으며, 트리폴리타니아와 페잔 일부는 카다피 정부의 세력권이 되면서 나라가 쪼개지고 동서분단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8월,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함락함으로써 리비아는 재통합되었다. 다만 이후에도 지역감정 등의 지역 갈등과 경제적 마찰들이 존재하면서 2012년 3월에는 키레나이카에서 키레나이카 임시 평의회가 나타나 자치와 연방제를 요구하는 일들이 나타났고, 2013년 10월 '바르카'라는 괴뢰정부가 나타나면서 또 다른 내전의 불씨가 되었다.[1] 결국 자치를 얻었으나 2014년 7월 제2차 리비아 내전이 다시 발발하면서 키레나이카에는 동부 리비아 정부(토브룩 정부 또는 국민의회)[2]가, 트리폴리타니아에는 서부 리비아 정부(트리폴리 정부 또는 국민통합정부 GNA)[3]가 들어서면서 또 다시 내전은 동서간의 전쟁이 되었다. 이 두 내전 사이 시기에 페잔에서도 투부족, 베르베르인, 그리고 투아레그인들이 들고 일어나 페잔 남서부 국경일대는 투아레그 분리독립 무장세력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동서갈등이 정말 역사성을 가진 동서갈등인가를 생각해보자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1차 내전때 동쪽은 카다피에 반대하는 반카다피 세력이었다. 그리고 혁명에 성공한 이후 비록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긴 해도 반독재 세력이 서쪽을 차지하고, 이에 반발한 구정권의 유산인 군부 일부와 세속주의자들이 다시 동쪽을 차지하고 앉은 양상이다. 그저 수도가 서쪽이고, 동쪽이 가장 머니까 정치적인 선택에서 동서갈등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진짜 리비아의 동서갈등이 민족성과 역사성의 문제라면 그냥 깔끔하게 갈라서도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대립과 반목이 지속 중인 상태다. 심지어 리비아의 주요 유전은 사이좋게 동서에 나눠서 자리잡고 있으니, 양과 질의 차이가 조금은 있겠지만 적절히 나누면 각자 알맞게 잘 살 수 있다. 결국 소수의 권력욕에 동서의 민족성이 훼손되고 휘둘리는 형태라고 분석되기도 한다.

2015년 12월과 2016년에는 통합 서명을 했음에도 내전이 지속되었으며, 2019년에도 다시 한번 키레나이카-트리폴리타니아 지역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후 2020년 10월에는 다시 영구 휴전에 합의했다.

페잔은 2018년 후기 및 2019년부터 분리독립 세력들의 위세가 축소되었다. 2024년 시점에서 페잔 대부분은 동부 리비아 정부가 통치하고 있으며, 일부는 서부 리비아 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3. 관련문서



[1] 이 괴뢰자치정부의 출현으로 바로 내전이 시작된 건 아니다. 사실 카다피 사후 수많은 군벌들이 이미 내전에 가까운 춘추전국시대가 혁명 이후부터 시작된 상태였고, 괴뢰정부가 기반을 다지는 가운데 하프타르의 쿠데타 실패와 그의 괴뢰정부 합류 사건으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제2차 리비아 내전 항목 참조. [2] 사실상 키레나이카 자치정부와 별개이다. 2014년 6월 실시된 총선을 기존 과도정부가 인정하지 않았고, 이 때 뽑힌 새 의회 당선자들이 대거 동부로 넘어갔다. 그렇기에 국민의회라는 명칭을 쓰게 된 것. [3] 이쪽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식 정권이다. 다만 여기도 문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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