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31 22:33:09

루이스 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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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감독
파일:루이스 미야.jpg
이름 루이스 미야
Luis Milla
본명 루이스 미야 아스파스
Luis Milla Aspas
출생 1966년 3월 23일 ([age(1966-03-12)]세) /
스페인 아라곤지방 테루엘주 테루엘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신체 173 cm | 체중 69 kg
직업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FC 바르셀로나 C(1984~1990)
FC 바르셀로나 B(1985~1986)
FC 바르셀로나(1984~1990)
레알 마드리드 CF(1990~1997)
발렌시아 CF(1997~2001)
감독 UD 푸솔(2006~2007)
헤타페 CF(2007~2008 / 수석코치)
스페인 U-19/20 대표팀(2008~2010)
스페인 U-23 대표팀(2010~2012)
알 자지라 클럽(2013)
CD 루고(2015~2016)
레알 사라고사(2016)
인도네시아 대표팀(2017~2018)
페르시브 반둥(2022~2023)
가족 아들 루이스 미야 만자라네스
국가대표 3경기 ( 스페인 / 1989~1990)

1. 개요2. 축구인 생활
2.1. 선수2.2. 감독
3. 수상
3.1. 선수
3.1.1. 우승
3.2. 감독
3.2.1. 우승
4. 기타

[clearfix]

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선수 시절엔 FC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1]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파일:루이스 미야 바르샤.jpg

아라곤지방 테루엘 출신으로 1983년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유소년 팀을 단계별로 거쳐 나온 미야는 1984-85 시즌에 바르샤의 1군 선수들이 파업을 하면서 리그 경기에 레알 사라고사를 상대로 유스 팀으로 구성된 라인업을 내보내면서 얼떨결에 라리가 데뷔를 치렀는데 본인이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으면서 4:0으로 충격적인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1990년까지 클럽에서 뛰며 테리 베너블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들 아래에서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고, 이 시기에 국대에 승선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재계약 문제로 감독과 보드진과 다투게 되었다.

파일:루이스 미야 레알.jpg

결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자 미야는 라이벌이였던 레알 마드리드로 자유 이적을 단행했다. 적대 관계인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것은 당시에 큰 논란을 일으켰고[2] 본인도 이적 첫 해에 부상을 당하면서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회복 후 곧바로 반등하여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으면서 리그를 2회,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각각 1회 우승하면서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더 항샹된 폼을 보여주었다. 이는 1994년에 포지션 경쟁자인 페르난도 레돈도가 입단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용되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7년간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후, 발렌시아 CF로 이적했다. 발렌시아에서 4년간 말년을 보낸 후, 2001년 은퇴를 선언했다.

2.2. 감독

그의 첫 프로 팀 지도자 경험은 2007-08 시즌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었고, 당시에는 헤타페 CF의 감독을 맡고 있던 미카엘 라우드럽의 수석코치로 시작했다.

파일:5469276.jpg

2008년부터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가 감독으로 참가한 첫 대회인 2009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선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그 다음해인 2010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선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끌고 개최국인 프랑스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후안 라몬 로페스 카로의 후임으로 U-21/23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힘겹게 본선에 진출 성공했고 본선에선 무패를 기록하며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머쥔다. 총 4승 1무를 기록했으며 실점도 2골밖에 안 내줬다. 또한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와 득점왕을 배출했는데 이들이 각각 후안 마타 아드리안 로페스다.

이렇게 앞선 선전들로 12년 만의 올림픽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정작 올림픽 16개국 본선에선 그 초호화 멤버로 쪽박을 치며 1무 2패 승점 1점, 대회 14등으로 탈락하고 만다. 이로 인해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고 만다. 후임은 훌렌 로페테기.

이후로 처음으로 해외 팀인 알 자지라 클럽 감독을 맏게 되었으나 6경기 만에 경질되고 만다.

2015년 2부 리그인 CD 루고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코치진과 팬들과의 마찰로 인해 사임하였다. 그 다음으로 같은 리그에 있는 레알 사라고사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다.

파일:루이스 미야 인도네시아.jpg

2017년 1월 21일 인도네시아 대표팀에 부임했다. 이번 계약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인도네시아 축구 협회(PSSI)의 플랜으로서, 미야는 성인 팀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본국에서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기 위해 U-23 팀도 함께 맡았다. 실제로 미야가 지도하는 동안의 인니 대표팀의 경기력은 발전했다. 2018 아시안 게임 당시 25강 조별리그에서 1위를 수성했으며, 토너먼트 16강전에서 한 수 윗급인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승부차기까지 갔다가 아쉽게 패배하며 16강 13위를 기록했다.[3] 이러한 선진으로 인도네시아 축구 팬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았으나 2018년 10월 갑작스럽게 경질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나 미야가 인스타그램에서 협회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것으로 보아 협회와의 마찰이 원인인 듯하다. 이러한 경질은 인니 축구 팬들을 분노케 했으며 특히 다음 후임들이 하나같이 부진한 성적을 내자 더욱 심해졌다.

이 때문에 한동안 인니 대표팀 복귀설이 돌기도 했으나 결국 PSSI가 후임으로 신태용을 선임하기로 결정하면서 복귀설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2022년 8월 19일 리가 1의 페르십 반둥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3년 7월 사임했다.

3. 수상

3.1. 선수

3.1.1. 우승

3.2. 감독

3.2.1. 우승

4. 기타

파일:루이스 미야 부자.jpg

동명이인 아들이 한 명 있다. 아들 또한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현재 헤타페 CF에서 뛰고 있다.

[1] 이와 같은 이적을 한 선수로는 루이스 피구, 베른트 슈스터, 미카엘 라우드루프, 하비에르 사비올라 등이 있다. [2] 이 이적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례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축구계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바로 이분. [3] 더욱이 이 아랍에미리트 대표팀이 결국 박항서 베트남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것을 보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