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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명 |
엘리너 로잘린 카터[1] Eleanor Rosalynn Carter |
출생 | 1927년 8월 18일 |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즈 | |
사망 | 2023년 11월 19일 (향년 96세) |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즈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종교 | 침례회 |
최종 당적 |
|
재임 | 제39대 대통령 배우자 |
1977년 1월 20일 ~ 1981년 1월 20일 | |
가족 |
배우자
지미 카터 (
1946년 결혼) 1924년 10월 1일 ~ ([age(1924-10-01)]세) 장남 잭 카터 1947년 7월 3일 ~ ([age(1947-07-03)]세) 차남 칩 카터 1950년 ~ ([age(1950-01-01)]세) 삼남 도넬 카터 1952년 ~ ([age(1952-01-01)]세) 장녀 에이미 카터 1967년 10월 19일 ~ ([age(1967-10-19)]세) |
서명 |
|
백악관 공식 초상화 |
[clearfix]
1. 개요
지미 카터의 아내로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배우자.카터와 무려 77년 동안 반려자로 함께했다.
2. 생애
2.1. 초기
조지아주의 플레인스에서 기계공이자 농부인 윌버 에드거 스미스와 앨리 머리 스미스의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다. 훗날 로잘린의 배우자가 되는 지미 카터의 어머니가 앨리의 출산을 도왔는데 3살이던 지미도 갓 태어난 로잘린을 알게 된다. 1940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잘린은 헤어드레서가 되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돕게 된다. 어머니는 로잘린을 비롯한 자식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였다.플레인스의 고등학교에 다니던 로잘린은 절친의 오빠이자 해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지미와 교제를 시작하고 1945년 12월에 지미는 로잘린에게 청혼한다. 하지만 지미의 청혼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생각한 로잘린은 지미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미는 2달 후에 다시 로잘린에게 청혼하고 지미의 진정성을 받아들인 로잘린은 청혼을 승낙한다. 1946년 7월 7일에 지미와 로잘린은 플레인스의 감리교회에서 결혼한다.
이후 버지니아로 이주한 부부는 3남 1녀를 얻는다. 로잘린은 아이들을 여러 활동에 참여하게 하여 문학과 예술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쏟았다. 1953년에 시아버지가 사망하자 지미와 로잘린은 플레인스로 돌아오고 지미는 가족들이 운영하던 땅콩농장을 이어받아 경영하기 시작한다. 로잘린도 농장이 효율적으로 경영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하였다.
2.2. 조지아주의 영부인
1961년 지미 카터는 조지아주의 상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자신이 멀리 합법적 회의들에 참석하는 동안 비지니스를 로절린에게 맡겼다. 그녀는 또한 지미의 이어서 2개의 임기 기간 동안 그의 정치적 일치를 다루기도 하였다.부부의 일하는 협력은 지미가 1970년 조지아 주지사를 위하여 나갈 때 더욱 굳혀지고 로잘린은 남편을 위하여 캠페인을 벌였다. 그 일은 그의 선거권들과 함께 그녀의 자주적 대화들의 결과로서 로절린이 깊게 정신 건강 논점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 캠페인 흔적에 있었다.
지미가 최후적으로 주지사에 선출될 때 로잘린은 손님 접대 같은 영부인의 전통적 책임들의 전부를 준비하였으나 그녀는 또한 더욱 나가서 도시 계획 사업은 물론 주지사의 대저택의 재정적 계산을 차지하고 대저택에 관한 책을 저서하기도 하였다. 더욱 중요하게 그녀는 자신의 새로 발견된 흥미를 따르고 조지아주의 정신 건강 시스템을 철처히 조사하는 데 일하였다. 그녀는 주지사의 정신적과 감각적 신체 장애인들에게 향상 서비스 위임회의 회원, 조지아주 특별 올림픽의 명예 의장과 애틀랜타 병원의 임의 행위자였으며 이 모두 정신 건강 분야에서 그녀를 감동적인 프로적 재점유와 놓았다.
2.3. 미국의 영부인
지미 카터가 대통령을 위하여 자신의 후보직을 공고할 때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리기 가까이 2년전 로절린은 즉시 자신의 자신의 남편을 위하여 선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여 자동차와 항공기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결국적으로 총 42개의 주에서 선거 운동을 벌였다. 1977년 로잘린이 자신의 옆에 있으면서 지미 카터는 미국의 39대 대통령으로 선서하였다.2.4. 정치화된 여성
영부인으로서 그녀는 이전의 영부인들에 비해 파격적인 수준에서 남편의 정치적 업무에 참가하여 국내와 외교 정세 둘다에 그에게 상담을 주고, 연설들에 그를 조언하고, 그의 임명들을 정리하며 그의 내각 회의들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1977년 6월 로잘린 여사는 실재적인 정치적 회의들을 위한 대통령의 개인적 대표로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로 순방을 떠났다. 자신의 귀국에 그녀는 업무를 위하여 부족한 적격으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어서 훗날에 비슷한 순방을 인도주의의 파견으로 제한시켰다.2.5. 정신적 보건과 노인을 위한 옹호
1977년 로잘린 여사는 정신적 보건 활동 명예 의장 대통령 위임회에 명예 의장으로 지냈다. 이 위원회와 그녀의 일은 1979년 5월 미국 의회로 제출한 정신 보건 시스템 법안에서 결과를 가져왔다. 법안은 만성적으로 정신적 병을 위하여 국가적과 연방적 양쪽의 후원을 절처히 검사하고 차별로부터 정신적 병을 보호하는 권리들의 법안을 창조하는 데 의도되었다. 5월 15일 로잘린 여사는 의회가 열리기 전에 법안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법안은 1980년 9월 통과되었다.그녀의 영부인 시절 동안 로잘린 여사의 주요 원인들 중의 또다른 것은 노령자의 보장이었다. 그 말기로 그녀는 노인을 위한 연방적 프로그램들을 시찰하는 데 특별 조사단을 창조하고 노동력 안에서 퇴직 연령에 제한을 들어올린 연령 차별 법령의 통과를 위한 운동을 벌였다. 로절린 여사는 또한 노화에 관한 백악관 회담을 사회보았다.
영부인으로서 그녀의 더욱 전통적 의무들에서 로잘린 여사는 다시 두드러져 이 재능에서 자신이 백악관을 운영한 검소한 매너를 통하여 만찬에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메뉴를 시중들고, 독한 술을 시중드는 것을 거부하며 단순하고 화려하지 않은 옷을 입는 데 선택하였다. 백악관 우선들의 또다른 단짝에서 로잘린 여사는 시와 재즈 양축제를 성원하였다.
2.6. 백악관 생활 이후
1980년 지미 카터가 재선을 위하여 나갈 것이었으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과 다루는 동안 대부분 백악관으로 제한되어 로잘린 여사는 다시 선거 운동을 치고 주요 시즌을 통하여 그의 대표로서 연설을 하였다. 하지만 카터는 최후적으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 의하여 꺾이고 말았다.백악관을 떠난 이래 로잘린 카터의 인생은 아무것으로 지내왔으나 조용하였다. 그녀는 1984년 저서 《플레인스에서 온 영부인》을 포함한 다수의 책들을 저서하여 카터 행정부로 들어간 그 통찰력으로 칭송을 얻었다. 그녀는 또한 지속적으로 정신적 건강 논점들은 물론 초기 유년 면역법, 인간의 권리들과 투쟁 해결을 위하여 주창하였다. 항상 소홀의 옹호자인 그녀는 또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미군들의 만나지 않은 필요함들을 연설하는 데 일하기도 하였다.
카터 부부는 또한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노력들로 인하여 로잘린 여사는 다양한 정신적 건강 상들과 대통령 자유 훈장을 포함한 셀수 없는 명예들을 받았다. 2001년 국립 여성 명예의 전당으로 헌액되었다.
2.7. 사망
2023년 11월 19일, 조지아주 플레인즈에서 향년 96세로 사망했다. 자신보다 3살 연상인 남편 지미 카터가 연초부터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조용히 임종을 준비한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끝내 남편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장례식은 11월 28일에 조지아주 애틀랜타 에모리대 내 교회에서 엄수됐다. #
3. 기타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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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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