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57:39

로버 시티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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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Rover

1. 개요2. 역사
2.1. 개발 배경2.2. 시티로버 (2003~2005)
3. 여담4. 둘러보기


Rover CityRover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로버에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생산한 소형차로, 타타 인디카 배지 엔지니어링 차량이었다.

2. 역사

2.1. 개발 배경

BMW 로버 그룹에서 손을 뗀 뒤, 로버 그룹의 새 주인이 되고자 했던 알케미 파트너스(Alchemy Partners)와 피닉스 컨소시엄이 로버 그룹을 인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로는 알케미 파트너스의 차기 계획에 대한 로버 그룹의 공장 직원들과 가족들의 반발로 영국 정부가 입장을 바꿔, MG와 로버를 둘 다 살리고 기존 고용을 유지한다는 골자의 회생책을 내밀었던 피닉스 컨소시엄에서 로버 그룹을 가져다가 이를 MG로버 그룹으로 개명 후 운영하기 시작했다.[1]

피닉스에서 MG로버 그룹을 받아왔을 때 판매중이었던 차들은 1999년에 BMW와 로버가 모든 혼신을 다해 만든 로버 75, 1995년에 나온 "포트폴리오 레인지"에 해당되는 45 25, MG F, 그리고 1959년부터 쭉 판매해온 클래식 미니 정도였다. 클래식 미니가 2000년 10월 4일에 단종되자 이미 노후되고 숫자 면에서도 부족했던 라인업에서 주목을 끌 차라고는 그나마 신차였던 로버 75 정도였기 때문에 MG로버에게는 없는 돈으로 라인업을 확장해야 하는 아주 힘든 과제가 하나 주어진 셈이었다. 더군다나 로버 75 투어러같은 기존 모델의 가지치기를 제외하면 로버 R30 프로젝트같이 BMW 산하에서 진행된 신차 프로젝트를 피닉스가 이어받은 것도 아니라서 이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피닉스 컨소시엄의 경영진들은 기존의 로버 승용차 라인업을 바탕으로 한 MG 브랜드의 신차들을 내놓았고, 차기 신차로는 준중형급의 RDX60 프로젝트를 엔지니어링 업체 TWR(Tom Walkinshaw Racing, 톰 워킨쇼 레이싱)과 같이 진행했다. 하지만 이 RDX60 프로젝트는 장기 계획이였고, MG로버에서는 없는 돈으로 라인업을 확충할 방법으로 다른 업체와의 협업을 시도했다. 타계책으로 MG로버 그룹에서는 말레이시아의 프로톤(Proton)이나 중국의 상하이자동차), 프랑스의 르노 마트라, 인도의 타타같은 업체들을 전전한 끝에 인디카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고심하던 타타가 손을 잡았다. 영국의 워윅 매뉴팩처링 그룹(Warwick Manufacturing Group)이 타타 인디카 V2의 개발과정을 맡아 차량의 질을 최대한 항상시키려던 중, 기존 인디카의 파워트레인을 바꾸자는 제안을 통해 MG로버 그룹과 타타 간 커넥션이 생겼다. #

워윅 매뉴팩처링 그룹의 제안으로 타타와의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MG로버 그룹에서는 1997년에 단종된 오스틴 메트로를 대체하는 엔트리카로 타타 인디카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인디카의 외장 부품과 세팅을 손봐 판매하되 인도 마하라슈트라의 푸네 공장에서 생산된 인디카를 들여와 영국에서 외장 부품을 장착하는 마무리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RD110“이라는 프로젝트 이름 하에 인디카를 현지화하면서 유럽의 배기가스 규제와 도로 환경을 감안해 푸조-시트로엥이 설계한 84마력짜리 1,405cc SOHC 엔진[2]을 가져다가 장착했고, 새 엔진과 잘 맞도록 변속기의 최종 기어비를 낮추었으며 휠 크기를 13인치에서 14인치로 키웠다. 또한 앞뒤 서스펜션의 스프링 상수를 높여 지상고를 20mm 낮추었으며, 스티어링의 록투록도 '스포티한' 2.8바퀴로 세팅했다. 외장 디자인은 당시 MG로버 그룹의 수석디자이너였던 피터 스티븐스(Peter Stevens)의 팀이 담당했다.

대당 생산비는 매체들이 900~2000파운드로 예상했으며, 연간 판매대수는 3~4만대를 목표로 잡았다. 모델명으로는 영국에서 생산하던 기존의 로버 25, 45, 75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효과적인 라인업 내 포지셔닝을 위해당시 매체들이 예상했던 명칭인 “로버 15“가 아닌 “시티로버(CityRover)“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런칭 당시 기사)

하지만 RD110 프로젝트는 중요한 프로젝트답잖게 넘어가는 구석이 있었다. 개발팀에서 인디카의 단점으로 불편한 변속감과 질 낮은 인테리어 품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음에도 경영진들이 이를 무시했고, 인도 현지의 푸네 공장에는 개발팀을 무시한 채로 경영진들만 초청되었다. 여기에 MG로버 그룹을 소유한 피닉스 컨소시엄의 경영진 4인조도 타타 모터스의 경영진들 앞에서 다소 거만하게 굴었다는 후문도 있었다.[3] 또한 유럽에서 품질이 검증되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2003년에 딜러들을 모아 두고 차를 소개했을 때 발표했던 4,995파운드의 시작 가격을 출시 몇 주 전에 6,500파운드까지 끌어올리기로 결정, 거의 통상적인 슈퍼미니급 소형차급으로 가격이 책정되었다. 본래는 타타 인디고도 MG로버가 수입해 판매하려고 했으나 딜러들의 반응이 좋지 못했다. 이 링크 본문의 끝부분에 2003년 당시의 사전발표 관련 일화가 있다.

2.2. 시티로버 (2003~2005)

파일:external/www.motorstown.com/rover-city-02.jpg 파일:external/a2goos.com/rover-cityrover-01.jpg
2003년 9월 16일에 데뷔한 시티로버는 출시 초기부터 다방면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사이즈도 크고 브랜드 인지도에서도 유리했던 통상 소형차 수준의 가격표를 달고도 홍보가 매우 부실해 광고도 거의 없었고, 시승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대리점에 차를 제대로 진열하지도 않았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차량 자체에도 문제가 여럿 존재했는데, 가격 대비 편의장비 수준이 빈약한 상태에서 인디카의 기존 단점들인 불편한 변속감과 저렴한 실내 품질 등의 문제점을 별다른 개선 없이 그대로 답습해와 자동차 관련 매체들은 대체로 시티로버에 대해 신통찮은 평을 내렸으며,[4] 영국 탑기어 제임스 메이가 이를 직접 타 보고 혹평하는 내용이 방송을 타자 더 이상 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5][6]

결국 판매량은 매년 수천 대 수준에 불과했고, 판매부진과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자 MG로버에서는 인도의 푸네 공장에 문제 해결팀을 파견하는 한편 시티로버의 가격을 할인해 판매했다. 또한 편의장비를 더 추가하고 조립품질을 개선한 MK2 버전을 2005년 4월에 판매하기로 했으나 MG로버가 그 시기에 파산한 탓에 공식적으로 출시되지는 못했다. 이미 영국으로 수입되었던 1,200대 가량의 MK2 시티로버는 포트베리 항구에 방치되어있다가 청산절차를 밟던 관리 업체였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ricewaterhouseCoopers. 이하 PwC.)"에 의해 전량 매각되었다.

시티로버는 MG로버가 법정관리에 돌입한 2005년 4월에 로버의 타 라인업과 함께 단종되었으며, 약 1만여대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여담

  • 2007년에 개최된 히말라야 챌린지 내구 랠리(Himalayan Challenge Endurance Rally, HCER)에 2005년식 시티로버가 랠리 코스 전체를 완주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시티로버를 고른 이유는 "영국에서 탈 수 있는 가장 싼 신차"라는 이유였으며, "굳이 4륜구동차가 아니라 매우 조그만 앞바퀴굴림 소형차로도 이런 횡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 출시 이후 심각한 품질 문제로 혹평에 시달렸음에도, 차 자체의 평가와는 별개로 로버 브랜드 차종으로서는 영국에서 가장 신뢰성이 높은 차 100위 중 96위를 기록해, 100위 내에 들어간 유일한 차종이기도 하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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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면 알케미 파트너스에서는 로버 브랜드를 폐기하고 MG 브랜드에 집중하는 내용의 비전을 내밀었으며 연 7만대 규모로 스포츠카와 세단형 차량을 판매하기로 약속을 했다. 또한 직원들의 80%를 해고하는 대신에 이들에게 명당 수만 파운드의 보상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납품업체들 및 딜러들과 엮인 로버 그룹의 기존 계약들이 복잡했고 BMW에서도 실직자에 대한 금전적 지원 이상을 바라지 않아 알케미에서는 로버 그룹 인수를 포기했다. [2] 개발 초기에는 로버 K 엔진을 장착하는 기획도 있었으며,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했다. 이 프로토타입을 워윅 매뉴팩처링이 MG로버 그룹에게 제안하면서 시티로버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3] 워윅 매뉴팩처링 소속의 엔지니어 찰스 테넌트(Charles Tennant)는 AROnline의 지면을 통해 라탄 타타 당시 타타 그룹 회장이 존 타워스를 포함한 경영진 4인조에게 별 감흥을 못 받았음에도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회고했다. 그 예로, 인도에서 계약을 맺을 당시 피닉스의 경영진들이 1천 파운드가 넘는 호텔 바 계산서를 넘기고 떠났다(they left Tata with a £1k-plus bar bill at the Blue Diamond hotel)고 밝혔다. [4] 가령 오토카 매거진은 시티로버가 상당한 제약 내에서 만들어짐을 감안하면 힘이 넘치고 실내공간도 넓은 등으로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본분보다 더 높은 상대를 경쟁상대로 두고 있다고 평했다. [5] 로버에서 탑기어 측에 리뷰용 시티로버를 제공해주지 않자, 이후 제임스 메이가 일반 고객으로 위장해 로버 전시장에서 차량을 시승했으며 영상으로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시승 이후 메이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운전해본 차 중에 최악이군요".(That is the worst car I have driven on this programme.) 라는 평가를 내리며 크게 혹평했다. [6] 이후로도 탑기어와 시티로버의 악관계는 계속되어, 새 시즌 개최식에서 시티로버 3대를 몬스터 트럭으로 깔아뭉개는 폐차 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 "최악의 차" 로도 여러 번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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