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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 75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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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 P4 시리즈 라인업
75 시리즈 80 시리즈
100 시리즈
파일:1949-59 로버 로고.png
파일:로버 75 P4.jpg
75 (P4)

1. 개요2. 상세
2.1. 1세대(1949~1959)
3. 둘러보기

Rover 75(P4)

1. 개요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였던 로버에서 생산했던 중형급 P4 시리즈의 라인업 중 하나였다.

2. 상세

2.1. 1세대(1949~1959)

파일:로버베이커와 스튜드베이커.png
프로토타입 차량 '로버베이커'와 스튜드베이커의 차량

1949년 9월 23일에 상무이사였던 스펜서 윌크스에 의해 최초로 발표되었으며, 5일 후인 얼스 코트 모터쇼 때 최초로 공개되었다. 로버 P4 시리즈의 첫 라인업이자, 당시 유일한 로버의 생산차량이었다. 구형 P3 기반의 75를 대체한 차량이며,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특이하면서 당시에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변경되면서 전통적인 라디에이터, 별도의 헤드램프, 외부 러닝보드 등은 사라진 대신 크롬 그릴, 움푹 들어간 헤드램프, 유선형에 가까워진 차체 등이 이를 대체하였다. 당시에 논란이 많았던 1947년 스튜드베이커 라인업들에서 파생되었으며, 해당 차량 2대를 구매해 1대는 P4의 프로토타입의 차체를 위한 테스트 뮬로 활용한 바 있었다. 해당 차량은 '로버베이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1]

자동차 관련 서적을 펴낸 작가인 말콤 보비트는 해당 차량을 미래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봉인을 했으며, 출시 이후에는 P4의 새로운 디자인으로 비평가들을 물리쳤고, 해당 차량의 용기 있는 디자인에 놀란 일부 경쟁사들을 고려해 볼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로버 P3는 트렁크 공간이 거의 없었으며 충분하지 않았다 평가받았으나 뒷부분까지 보닛처럼 연장된 모습을 가진 P4는 나름 조롱을 받기도 했다. 운전자는 앞쪽으로 잘 앉은 상태에서 비교적 짧은 보닛을 내다볼 수 있었고 뒷바퀴는 뒷좌석 쪽에 잘 배치된 상태였다. 그로 인해 당시 나오던 신차들과 다른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파일:1949 로버 75.png
초기형 차량

또한, 그릴 중앙에 램프가 적용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고품질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범퍼 뒤에 별도로 장착된 한 쌍의 램프[2]를 제공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램프 구조는 '사이클롭스 아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지 못했고 이후 1952년 10월에 이루어진 변경 때 삭제되었다.

출시 초기 4년 동안 단일 모델만을 고수해 오다가 1953년 9월에 2.1L 엔진을 탑재한 로버 60 및 2.6L 엔진을 추가한 로버 90이 추가되었다. 이 라인업들이 추가된 의도는 다양한 수준의 경제적인 주행 비용과 성능을 갖춘 고품질의 자동차를 필요로 하는 더 넓은 고객층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세 차량에는 곡선 형태의 중앙 기어 변속 레버가 적용되었으며, 당시 스티어링 칼럼 기어 변속의 복잡한 연결 기능으로 불편해 하던 소비자들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는 조치였다. 전면부에 벤치 시트가 계속 적용되었으며 주차등은 전면 머드가드 쪽으로 이동했고, 사용되지 않던 개구부 자리에는 반사경 및 표시등이 적용되었다. 또한 당시 내수 및 수출 시장에서 부진을 느낀 로버 측에서 랜드로버를 포함한 전 라인업의 가격을 낮추면서 가격이 약간 저렴해졌다.
파일:1954 로버 75.jpg
1954년형 차량

이후 1954년 10월 7일의 데이비드 바흐가 설계를 주도한 페이스리프트 사양이 출시되었으며, 자동차의 뒷부분을 들어올리면서 트렁크 공간이 많아졌고, 쓰리 피스 랩 형태로 구성된 후면 유리창과 반사경이 있던 전면부에 호박색 방향지시등과 재설계된 후면 조명 클러스터가 도어 필러에 설치된 교통 신호 장치를 대체하였다. 여기에 랜드로버 생산을 늘리기 위해 공장을 증설한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파일:1958 로버 75 후면부.png
최후기형 차량 후면부

실내에는 1955년 9월에, 두 개의 개별 좌석 형태로 구성되어 개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다른 디자인의 앞좌석 시트를 추가 비용 옵션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이전에는 차량에 다소 둔탁한 느낌을 준 전면부 머드가드의 디자인을 1956년 9월에 수정하였고, 같은 변경 때 다른 위치에 있는 측면 램프 및 깜빡이와 함께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헤드램프 림의 작은 크롬 반사경은 운전자가 사이드 라이트가 작동하는 것을 식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해당 연식에는 오버드라이브가 옵션으로 적용되었다.

해당 차량을 테스트해 본 모터 매거진은 1949년에 시승해 본 후 작성한 기사에서 차량의 평균 최고 속도는 약 134.4km/h, 제로백은 약 21.6초, 차량의 연비는 영국 기준 27.8mpg[3]였으며, 회전 반경은 11m, 차량의 가격은 1,106파운드[4]였다. 로드 앤 트랙 지의 밥 디어본 기자는 1952년 8월에 도로주행시험번호 F-4-52으로 알려진 차량을 타본 후 소감으로 롤스로이스를 제외한 이보다 더 좋은 차는 없을 거라고 언급한 바 있었다. 후륜구동 차량으로 전장은 4,350mm, 휠베이스는 2,794mm였다.

파워트레인의 경우, 초기에는 2.1L IOE I6 엔진이 탑재되다가 1954년 10월부터 2.2L IOE I6 엔진 라인업이 추가되었다. 여기에 1953년 9월부터 스티어링 칼럼이 적용된 4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2.1L 엔진에는 크롬 도금이 이루어진 실린더 보어, 빌트 인 인덕션 매니폴드가 내장된 알루미늄 실린더 해드, 하강 기류 대신 수평형 한 쌍으로 이루어진 카뷰레터가 적용되었다.

1959년형을 끝으로 단종되었으며 1954년형까지 생산된 초기형은 33,267대, 단종 전까지 생산된 후기형은 9,974대가 제조되었다. 이후 75라는 이름은 1999년에 제조된 승용차의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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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는 제임스 테일러의 로버 P4 - The Complete Story에 언급되어 있었다. [2] 안개등 및 주행등 [3] km/L 변환 시, 약 9.8km/L [4] 원화가치 약 178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