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8:15:57

레오 더반

파일:Leo_Durban.jpg
이름 レオダーバン
Leo Durban
출생 1988년 4월 25일
죽음 불명
성별 수컷
털색 갈색 (鹿毛, 카게)
아비 마루젠스키
어미 시루티쿠(シルティーク)
외조부 댄서즈 이미지(ダンサーズイメージ)
생산자 하야타 목장 니캇푸 지장
마주 타나카 류우
조교사 오쿠히라 신지 (미호)
성적 9전 4승 (4-1-1-3)
총상금 2억 1316만 6200엔
주요
우승
G1 킷카상(1991)
레이팅 프리 핸디 61 (1991)
상세 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 JBIS

1. 개요2. 혈통3. 생애
3.1. 클래식 시즌3.2. 고마 시즌
4. 은퇴 후5. 여담6. 경주 성적

[clearfix]

1. 개요

일본의 경주마.

2. 혈통

1대 2대 3대
<colbgcolor=#fff3e4,#331c00> 마루젠스키
マルゼンスキー
1974
<colbgcolor=#ffffe4,#323300> Nijinsky
1967 파일:캐나다 국기.svg
Northern Dancer
Flaming Page
Shill
1970 파일:미국 국기.svg
Buckpasser
Quill
시루티쿠
シルティーク
1981
Dancer's Image
1965 파일:미국 국기.svg
Native Dancer
Noors Image
야마토 마사루
ヤマトマサル
1965
코다마
コダマ
미스 미하루
ミスミハル
* Native Dancer 5×3 15.625%
* Menow S5×S5 6.25%
부마는 명마 마루젠스키, 모마는 시루티쿠로 말 자신은 그닥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네이티브 댄서의 혈통 중 한마리로 그럭저럭 기대는 받는 편이었다.

3. 생애

어째서인지 출생에 관련한 자료는 찾아봐도 나오질 않는다. 마주가 탈세를 해서 번 돈으로 레오 더반을 구입했다는 루머도 돌아다니는데 이마저도 확인 불가능할 정도다.

3.1. 클래식 시즌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1991년 JRA GI 대회 우승마 {{{#!wiki style="margin:0 -11px -5px; color:#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000; word-break: keep-all"
<tablewidth=100%> 시스터 토쇼 토카이 테이오 메지로 맥퀸 다이이치 루비 이소노 루블 토카이 테이오 메지로 라이언 프레크라스니 레오 더반 린덴 릴리 다이타쿠 헬리오스 골든 페전트 파일:미국 국기.svg 니시노 플라워 미호노 부르봉 다이이치 루비 다이유우사쿠
이 표는 간략화한 버전입니다. 경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3살(현 2살) 시즌의 12월에 데뷔하는데 신마전에선 요코야마 노리히로를 기수로 3마신 차의 쾌승을 거둔다. 4살(현 3살) 시즌의 첫 경기인 500만엔 이하 조건전에선 더트 경기였던 때문인지 4착으로 패배하고 부상이 발생해 3개월을 휴양하게 되며 자동으로 사츠키상은 건너 뛰게 된다. 그리고 당시 오픈 특별경기( 도쿄 우준의 트라이얼)0였던 아오바상에 출전했을 당시, 스타트 미스로 최후미로 쳐졌음에도 4코너를 돌자마자 3펄롱 34초5라는 하이스피드로 돌파하며 죽어라 선두에서 도주하던 트윈 터보를 제치고 우승한다.
1991년 아오바상 영상

이러한 쾌속의 미각으로 인해, 그동안 " 아비를 이어 3관이 확실하다!"라고 평가받던 기대주 토카이 테이오의 라이벌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라면 역시나, 직접 맞붙은 더비에선 너무나도 강력한 토카이 테이오에게 3마신차로 2착 패배를 당하게 된다. 그래도 홀로 악착같이 쫓아가며 2착을 차지하며 토카이 테이오의 라이벌이란 평가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더비 종료 후, 3관 확실이라고 칭해지던 토카이 테이오가 부상으로 연내 복귀가 불투명해 지며 기회가 찾아온다. 그렇게 맞이한 세인트라이트 기념에선 유일하게 단조지정[1]을 받는데, 이 이후로 해당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레오 더반은 JRA 최후의 단조지정마라는 타이틀도 얻게 된다.

하지만 역시나 단조지정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이전에 압승을 해 줬던 스트롱 카이저와 트윈 터보에게 밀려 3착으로 패배하며 킷카상에 대한 불안감을 쌓게 된다. 실제로 킷카상 당시에는 3번 인기(1번은 이부키 마이 카구라(한신 3살 스테이크 우승마), 2번이 나이스 네이처)로 주저앉는데 경기는 대단한 슬로우 페이스로 진행되는 와중에 최후에 선두에 서서 추격해 오는 이부키 마이 카구라를 1마신 반 차이로 제치고 염원하던 GI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하지만 "테이오가 없어서 운 좋게 딴 상"이란 이미지 때문에 빈집털이범 취급을 당하게 되었고,[2] 아리마 기념에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준비에 들어갔으나 굴건염이 발생해서 1년의 장기 휴양에 들어간다.

3.2. 고마 시즌

부상회복 후에는 역시 비슷한 시기에 복귀한 라이벌 토카이 테이오와 아리마 기념에서 직접 대결을 펼치게 되었으나 13착으로 대패, 토카이 테이오 역시 11착이었으나 그보다 못한 성적이었기 때문에 통산성적에선 단 한번도 토카이 테이오에게 앞선 적이 없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아메리카 자키 클럽 컵에 출주했으나 9두 중 8착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게 되고, 굴건염이 재발해서 은퇴하게 된다.

4. 은퇴 후

마루젠스키의 자마로서 해당 혈통을 이을 종마로 기대받았으나 유일한 GI인 킷카상은 빈집털이 소릴 듣고있고 이후 성적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인기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마주는 탈세혐의가 드러나 체포되고, 생산목장은 버블경제 덕분에 여기저기 투자는 많이 했는데 정작 돈을 벌어와 줄 종마 사업에서는 레오 더반은 물론 해당 목장 최고의 아웃풋인 비와 하야히데, 나리타 브라이언 형제가 종마로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기에 수익도 없다보니 결국 도산하는 등 레오 더반을 돌봐 줄 상황이 아니었고, 8대경주 중 하나인 킷카상 우승마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성적이 저조해서인지 공로마 지정도 되지 않아 토요사토 스탤리온에서 제적된 후에는 행방불명 상태가 되어 현재도 그 후에 어떤 마생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3]

5. 여담

  • 킷카상 우승 당시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가 "말의 세계에서도 레오!"라는 멘트를 날리는데, 이는 당해년도 프로야구 일본시리즈 우승팀이 세이부 라이온즈, 즉 레오(사자)였기 때문이라고.
  • 일본 프로장기 기사인 센자키 마나부의 증언에 의하면, 더비에서 그래도 악착같이 토카이 테이오를 쫓아가 2착을 하는 모습에 반한 장기 기사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 일본의 인기 경마 시뮬레이션 게임 위닝포스트 9 2022 에서 1991 시나리오 첫 시작 시 운영할 수 있는 말 중 하나로 등장한다. 레오 더반의 경우, 1991년 킷카상 우승 경력이 있다보니 해당 게임에서도 선택 가능한 6필의 말 중 가장 능력치와 성장치가 좋은 말로 등장하지만 해당 시나리오의 초기마 선택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 경주마 중 레오 더반 보다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다른 이유로 많은 경마팬들에게 인기가 있는 나이스 네이처가 있기 때문에 많은 해당 게이머들이 나이스 네이쳐를 많이 선택해 게임을 스타트하는 편이다. 특히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출시 이후로는 더욱.

6. 경주 성적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68300><rowbgcolor=#268300><tablebgcolor=#fff,#2d2f34><rowcolor=#ffffff><width=3%> 경주일 || 경마장 ||
경기명
||<width=3%> 등급 ||
트랙
||<width=3%> 배당 ||<width=3%> 인기|| 착순 || 기수 || 1착마
(2착마) ||
<rowcolor=#ffffff> 1990년 (3세, 현 2세)
12.2 나카야마 3세 신마 잔디 1600m 4 2 <colbgcolor=gold> 1착 요코야마 노리히로 (마린 제트)
12.22 나카야마 3세 500만 이하 더트 1800m 1.7 <colbgcolor=gold> 1 4착 카시와자키 마사츠구 스태빌라이저
<rowcolor=#ffffff> 1991년 (4세, 현 3세)
3.30 나카야마 야마사쿠라(山桜)상 500만 잔디 1600m 1.8 1 1착 오카베 유키오 (키스 인 더 다크)
4.27 도쿄 아오바상 OP 잔디 2400m 3.6 1 1착 (이부키노 운카이)
5.26 도쿄 도쿄 우준 (일본 더비) GI 잔디 2400m 6.1 2 2착 토카이 테이오
9.22 나카야마 세인트 라이트 기념 GII 잔디 2200m 1.3 1 3착 스트롱 카이저
11.3 교토 킷카상 GI 잔디 3000m 5.6 3 1착 (이부키 마이카구라)
<rowcolor=#ffffff> 1992년 (5세, 현 4세)
12.27 나카야마 아리마 기념 GI 잔디 2500m 35.3 12 13착 요코야마 노리히로 메지로 파머
<rowcolor=#ffffff> 1993년 (6세, 현 5세)
1.24 나카야마 아메리칸 자키 클럽 컵 GII 잔디 2200m 10 3 8착 요코야마 노리히로 화이트 스톤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킷카상|킷카상 {{{#!wiki style="display: inline; display: GI"]]''' {{{#!wiki style="margin:0 -11px -5px; color:#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000; word-break: keep-all"
<tablewidth=100%>
1938
테츠몬
1939
마루타케
1940
테츠자쿠라
1941
세인트 라이트
1942
하야타케
1943
쿠리후지암컷 ~~
1944 · 1945
없음~~
1946
아즈마라이
1947
브라우니암컷
1948
뉴포드
1949
토사 미도리
1950
하이 레코드
1951
트랙 오
1952
세인트 오
1953
하쿠료
1954
다이나나 호슈
1955
메이지 히카리
1956
키타노 오
1957
랩소디
1958
코마 히카리
1959
하쿠 쿠라마
1960
키타노 오자
1961
아즈마 텐란
1962
히로키미
1963
그레이트 요루카
1964
신잔
1965
다이 코터
1966
나스노 코토부키
1967
니트 에이트
1968
아사카 오
1969
아카네 텐류
1970
다테 텐류
1971
니혼 필로 무티에
1972
이시노 히카루
1973
타케 호프
1974
키타노 카치도키
1975
코쿠사이 프린스
1976
그린 그래스
1977
프레스 토코
1978
인터 구시켄
1979
하시 허밋
1980
노스 거스트
1981
미나가와 만나
1982
호리스키
1983
미스터 시비
그레이드제 도입, 중앙 GI 지정 후
1984
심볼리 루돌프
1985
미호 신잔
1986
메지로 듀렌
1987
사쿠라 스타 오
1988
슈퍼 크릭
1989
뱀부 비긴
1990
메지로 맥퀸
1991
레오 더반
1992
라이스 샤워
1993
비와 하야히데
1994
나리타 브라이언
1995
마야노 탑건
1996
댄스 인 더 다크
1997
마치카네 후쿠키타루
1998
세이운 스카이
1999
나리타 탑 로드
2000
에어 샤커
2001
맨해튼 카페
2002
히시 미라클
2003
댓츠 더 플렌티
2004
델타 블루스
2005
딥 임팩트
2006
송 오브 윈드
2007
아사쿠사 킹스
2008
오켄 브루스 리
2009
쓰리 롤스
국제 GI 지정 후
2010
빅 위크
2011
오르페브르
2012
골드 쉽
2013
에피파네이아
2014
토호 자칼
2015
키타산 블랙
2016
사토노 다이아몬드
2017
키세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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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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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콘트레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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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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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두레차
2024
어번 시크
}}}}}}}}}


[1] 다른 말들과 조를 짜지 않고 홀로 번호를 받는 제도로, 쉽게 말하면 팬들에겐 "얘가 제일 쎄니까 얘한테 돈 거세요"라고 알려줌과 동시에 다른 말의 조교사와 기수들에게 "얘가 제일 쎈 애니까 '얘만' 견제하시면 됩니다'''"라고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덕분에 가장 강한 말이라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이 단조지정을 싫어하는 기수나 조교사들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2] 하지만 정작 그 테이오는 1년뒤 천황상 봄에서 레오더반이 우승한 킷카상에서 2착이었던 이부키마이카구라 보다 못한 성적을 기록했다. [3] 레오 더반 또한 비슷한 연유로 행방불명된 다이타쿠 헬리오스의 자마 다이타쿠 야마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치가 곤란해지자 임시수탁을 맡은 사람이 임의 처분해 버렸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