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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내란 Insurgency in La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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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일부 | |||
날짜 | <colbgcolor=#fff,#191919> 1975년 12월 2일 ~ 2007년 | ||
장소 | 라오스 | ||
원인 | 파테트 라오의 라오스 정권 장악 | ||
영향 | 크메르 루주의 탈공산화 가속화[1] | ||
상황 |
지속적인
반군과의 저강도 충돌 모든 지원국들의 지원 중단 2007년부터 내란 점차 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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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 세력 | |||
[[라오스| ]][[틀:국기| ]][[틀:국기| ]] 라오 인민혁명당[2] 파테트라오[3] |
라오 레지스탕스[4] 라오 민족해방전선[5] 라오 왕실민주정부[6] 라오스 해방통일전선[7] 몽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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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세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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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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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사망 | 10만 명 이상 | ||
난민 | 30만 명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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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
인도차이나 반도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이였던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종전 이후 너무 영향이 컸던 탓인지 이는 라오스 내란으로 이어졌다.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라오스의 정권을 잡은 파테트 라오는 공산 국가인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했고, 라오스 왕국은 멸망당했다. 그러나 쫓겨난 왕당파는 다시 한번 라오스의 정권을 잡기 위해 몽족과 함께 라오스 남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2. 전개
여러 조직으로 구성된 왕당파와 라오스 왕국 망명정부는 파테트 라오군과 베트남군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은 정부군의 고엽제와 화학무기 살포 및 공중폭격과 강경대응으로 받아쳤다. 이후 왕당파는 크메르 루주의 지원을 받기 위해 크메르 루주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붕괴 시도에 협력했고 크메르 루주와 동맹관계를 맺어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있는 공산 국가들을 붕괴시키려고 했다.이 사건으로 크메르 루주는 공산주의 이념을 버리게되었으며 캄보디아 민족주의와 반베트남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베트남에 반감을 품고있던 중국에게도 군사적 도움을 받아 군대를 훈련시킬 수 있었으며, 전투 경험이 많던 크메르 루주군에게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왕당파는 지속적으로 라오스 영토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라오스 정부군에게 진압당했다. 그러나 내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저강도 충돌이 발생하고 있고 왕당파도 계속적으로 상당한 수의 민병대를 모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