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2-16 14:28:01

동유럽-만주 관계

이 문서는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한국-위구르 관계와 중국-위구르 관계와 대만-위구르 관계와 카자흐스탄-위구르 관계와 러시아-위구르 관계의 내용은 위구르 문서로 통합하고 위구르 문서 내 문단 항목으로 리다이렉트 처리한다.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아래 토론들로 합의된 편집방침이 적용됩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 내용 펼치기 · 접기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ffffff,#1f2023><bgcolor=#ffffff,#1f2023><(> 토론 - 한국-위구르 관계와 중국-위구르 관계와 대만-위구르 관계와 카자흐스탄-위구르 관계와 러시아-위구르 관계의 내용은 위구르 문서로 통합하고 위구르 문서 내 문단 항목으로 리다이렉트 처리한다.
토론 - 한국-만주 관계와 북한-만주 관계와 몽골-만주 관계와 일본-만주 관계와 중화권-러시아-만주 관계에서 만주의 국기 및 상징을 제외한다.
토론 - 미국-티베트 관계 문서를 미국-티베트 망명정부 관계 문서로 인도-티베트 관계 문서를 인도-티베트 망명정부 관계 문서로 몽골-티베트 관계 문서를 몽골-티베트 망명정부 관계 문서로 부탄-티베트 관계 문서를 부탄-티베트 망명정부 관계 문서로 한국-티베트 관계 문서를 한국-티베트 망명정부 관계 문서로 각각 변경하고 중국-티베트 관계 문서 중 티베트 망명정부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 시짱 자치구와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은 티베트 문서로 편입한 뒤 삭제한다. 해당 문서들에 티베트 망명정부를 대표하는 국기로 설산사자기를 유지한다.
토론 - 합의사항4
토론 - 합의사항5
토론 - 합의사항6
토론 - 합의사항7
토론 - 합의사항8
토론 - 합의사항9
토론 - 합의사항10
토론 - 합의사항11
토론 - 합의사항12
토론 - 합의사항13
토론 - 합의사항14
토론 - 합의사항15
토론 - 합의사항16
토론 - 합의사항17
토론 - 합의사항18
토론 - 합의사항19
토론 - 합의사항20
토론 - 합의사항21
토론 - 합의사항22
토론 - 합의사항23
토론 - 합의사항24
토론 - 합의사항25
토론 - 합의사항26
토론 - 합의사항27
토론 - 합의사항28
토론 - 합의사항29
토론 - 합의사항30
토론 - 합의사항31
토론 - 합의사항32
토론 - 합의사항33
토론 - 합의사항34
토론 - 합의사항35
토론 - 합의사항36
토론 - 합의사항37
토론 - 합의사항38
토론 - 합의사항39
토론 - 합의사항40
토론 - 합의사항41
토론 - 합의사항42
토론 - 합의사항43
토론 - 합의사항44
토론 - 합의사항45
토론 - 합의사항46
토론 - 합의사항47
토론 - 합의사항48
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아시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파일:몽골 국기.svg
몽골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다자관계
파일:중국 대만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중화권·러시아·만주
과거의 대외관계
중앙아시아
청나라 치하 티베트
청나라 치하 몽골
}}}}}}}}} ||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근대, 현대 전기2.2. 2차 세계대전 이후
3. 관련 문서

1. 개요

동유럽 만주의 관계에 대해 다루는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근대, 현대 전기

루스 차르국이 시베리아를 개척하고 청나라 국경을 탐사할 당시 탐사대의 주력은 카자크였다. 카자크 외에도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를 건너 외만주도 개척할 무렵,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을 하다가 정치적 이유로 유배, 정치적 수용소 등으로 강제이주되거나 경제적 이유로 땅을 개척하러 온 우크라이나인들도 적지는 않았다. 훗날 외만주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젤레나 우크라이나를 세워 러시아 내전 때 러시아 및 소련에 저항한 적도 있었지만 언급했듯이 적군에 패배하여 훗날 소련령 만주 또는 러시아 만주가 되었다. 우크라이나인만큼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벨라루스인들도 이주했으며, 러시아 혁명 및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로 온 벨라루스인들도 있었다. 1926년 아무르 강 유역 일대와 연해주, 하바로프스크에도 소수의 벨라루스인들이 있었으며, 몇몇은 훗날 이 지역들에서 활동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관련 단체들에 들어온 벨라루스인들도 있었다.

한 편 중국 만주에도 러시아인과 함께 동구권 이주민들이 간혹 넘어오기도 했었는데, 러시아 프리모리예에서 건너왔고 주로 러시아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중국에서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었다. 벨라루스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 내전 시기, 러시아 적군에 패배하여 만주 및 연해주, 하바로프스크까지 도망치거나 중화민국에 의해 백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어 중화민국에 살거나 만주를 더 넘어서 오세아니아, 캐나다 미주까지 도망치기도 했었다. 일본이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웠을 때에도 이들은 러시아인들과 같이 백계 러시아인으로 분류되었다. 1931년 하얼빈에서는 약 2만명에서 3만명 정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했었고 공동단체들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벨라루스인들도 포함되었다. 만주에 있었던 반공 성향의 일부 우크라이나 독립 집단들은 백계 러시아인들처럼 일본과 동맹을 맺으려 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일본이 패배했던 데다가,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이미 일본은 백계 러시아인들을 생체실험 대상자로 여기기도 했던만큼 백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 독립세력, 벨라루스 독립세력 등도 이용만 하려했고 차별을 가했다.

2.2. 2차 세계대전 이후

만주, 외만주에 남은 벨라루스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만주의 원주민들과 접하면서 혼혈이 되었고, 문화적으로 일부는 소수민족에 동화된 부분도 있다. 참고로 소련 시기의 영향으로 러시아( 유럽 러시아 지역 포함)와 우크라이나까지 소수로 온 퉁구스계 이주민들도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퉁구스계 이주민들은 극소수이다보니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퉁구스족들은 이미 대부분 사회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동화되었거나 혼혈이 되었다.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가 벌어지자 2020년 벨라루스 시위에도 영향을 주었고, 하바로프스크의 러시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은 벨라루스 반정부 시위자들을 지지하고 있다 #.

3. 관련 문서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01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01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