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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제티 공국 제2대 공작 დავით | 다비트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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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다비트 1세 |
조지아어 | დავით | |
라틴어 | David I | |
출생 | 미상 | |
사망 | 954년 (향년 불명) | |
재위 기간 | 889년 ~ 94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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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라제티 공국 제2대 공작.2. 생애
클라제티 공국 초대 공작 숨바트 1세의 아들로, 88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동생 바그라트 1세와 함께 클라제티를 분할했다. 그는 아자라와 니갈리를 맡았고, 클라제티 본토는 바그라트 1세가 맡았다.900년 바그라트 1세가 사망했다. 당시 바그라트 1세에겐 3명의 아들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있었다. 콘스탄티노스 7세의 < 제국의 통치에 관하여>에 따르면 900년 바그라트 1세가 사망했을 때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아버지의 영지를 3개로 나눠가졌다. 그러다 구르겐이 곧 죽자, 아쇼트는 구르겐이 가지고 있던 클라제티의 무역도시 아르타누지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쇼트의 딸과 결혼했던 타오 공작 구르겐 2세가 아르타누지에 눈독을 들이자, 아쇼트는 동로마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도시를 제국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로마노스 1세 황제는 콘스탄스에게 칼디아 군대를 맡겨 아르타누지를 점거하게 했다.
졸지에 도시를 잃게 된 것에 분노한 다른 조지아 왕자들이 당장 아르타누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아랍인들과 손을 잡겠다고 위협했고, 로마노스 1세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조지아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계획을 취소했다. 그 후 구르겐 2세는 아르타누지를 점령하고 장인에게 자파케티 서부와 안자라를 명목상 영지로 삼게 했다. 그 후 아쇼트는 구르겐 2세의 궁정에서 조용히 지내다 사망했다. 한편 바그라트 1세의 장남 아다르나세 역시 구르겐 2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삼촌 다비트 1세에게 영지를 내준 뒤 수도자로 살았다.
이리하여 클라제티 전역을 단독 통치하던 그는 943년 아들 숨바트 2세에게 양위한 뒤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그 해에 사망히였다.
그에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이 있었는데, 제8대 타오 공작 아다르나세 4세와 결혼하여 바그라트 2세와 다비트 3세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