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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공국 5대 공작 გურგენ | 구르겐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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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구르겐 2세 |
조지아어 | გურგენ | |
라틴어 | Gurgen II | |
생몰 년도 | 미상 ~ 941년 | |
재위 기간 | 918년 ~ 94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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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오 공국 5대 공작.2. 생애
타오 공국 2대 공작 아다르나세 3세의 아들로, 형으로 다비트, 누이로 디나르가 있었다. 896년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형 다비트가 타오 공작을 맡아야 했지만 나이가 어려서 삼촌 아쇼트 2세가 타오 공작을 같이 맡으면서 실권을 행사했다. 908년 다비트가 사망한 뒤 아쇼트 2세가 타오를 단독으로 다스렸다. 918년 아쇼트 2세가 사망한 뒤 그가 타오의 새 공작으로 부임했다.그는 지역 수도원 공동체를 후원하고 칸즈테에 새로운 대성당 건설을 감독했다. 그러면서도 조지아를 통합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영토 확장을 꾀했다. 그는 이베리아 국왕 아다르나세와 아르메니아 국왕 아쇼트 2세에 대항하고자 아르메니아 귀족 아바스 바그라투니와 동맹을 맺었다. 922년 아다르나세와의 전쟁에서 패했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국력 증진에 몰두했다. 923년 아다르나세가 사망한 뒤 확장정책을 본격적으로 개시해 타오, 클라제티, 자파케티, 아자라와 니겔리 일대를 자국의 영역으로 삼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그라티온 가문의 일원이며 클라제티 3대 공작 바그라트 1세의 아들인 아쇼트의 딸과 결혼했지만, 923년에서 941년 사이에 장인에게서 클라제티를 빼앗아버리고 그 대가로 자파케티 서부와 안자라를 명목상 영지로 삼게 했다. 또한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삼스빌데도 탈환했다. 이렇듯 영토 확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조지아를 통일할 뻔했기에, 중세 조지아 문헌자료들은 그를 "대공"이라 칭했다.
그러나 941년 사망했을 때 아들은 없었고 오직 아바시아 왕자 바그라트와 결혼한 외동딸만 있었다. 이 때문에 그가 사망한 뒤 그의 국가는 바그라티온 가문의 여러 인사들에게 분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