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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냐 비디치/클럽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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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냐 비디치
2006-2014
파일:GettyImages_565440621640079356016_large.jpg
▲ 2006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5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211경기
15득점 3도움
52경기
3득점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18경기
1도움
파일:capital.png
11경기
1득점
파일:crR1Bvv.png
5경기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1경기
1득점
2경기
1득점
합산 성적
300경기
21득점 4도움

[clearfix]

1. 개요

네마냐 비디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력을 다룬 문서.

2. 이적

파일:FB_IMG_1578574232910.jpg
2006년 1월 5일, 겨울 이적시장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7백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내고, 비디치를 모스크바에서 데려왔다. 이 당시에는 파트리스 에브라 역시 모나코에서 맨유에 합류했다. 이때 둘의 이적료를 합쳐봤자 1250만 파운드였다. 2015년 맨유가 다르미안 한명을 영입했을 당시의 이적료이다. 비록 10년 전이기 하지만 이때도 이적료가 아주 적었던 시기는 아니었다. 첼시에서 마이클 에시엔이 2500만 파운드에 영입하면서 거품이란 소리를 들었던게 바로 6개월 전이긴했으나 에시엔의 잠재된 포텐셜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었고 나중에 슈퍼스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해줬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비디치 에브라는 데려오면서 즉전감이나 포텐셜을 크게 기대하고 데려온 것은 아니었다. 미카엘 실베스트르의 부진, 웨스 브라운 가브리엘 에인세의 부상으로 긴급 수혈하는 차원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5-06 시즌 이적시장은 맨유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영입을 했던 시기가 되었다. [1]

3. 2005-06 시즌

처음 맨유에서 뛰었던 05/06 시즌 후반기에는 적응기 문제인지 2개월의 공백 때문인지 그닥 인상적이지 못했다.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못하고 어리버리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리오 퍼디난드가 비디치 이적 초창기에는 두 배로 고생해야만 했다. 거기에 러시아 리그는 이미 끝난 후였기에 비디치는 체력적으로 준비가 안된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06년도에는 최악의 영입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는 굴욕을 맛봤다.[2]

2005-06 시즌: 15경기(선발 11경기)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1 9 2 0 0
FA컵 2 2 0 0 1
칼링컵 2 0 2 0 0
합계 15 11 4 0 1

4. 2006-07 시즌

비디치는 2006-07 시즌부터 적응을 마치고 실베스트르를 밀어내 주전 중앙 수비수 자리를 꿰어찬다. 리오 퍼디난드와 함께 중앙 수비진을 이루며, 퍼디난드 외에는 불안불안했던 맨유의 중앙 수비진을 안정화시켰다.[3] 10월 14일 위건 전에서는 맨유 소속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챔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역전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렇게 06/07시즌에 완벽하게 리그 적응을 마치면서 맨유 수비진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센터백으로 불리게 되었고, 06-07 시즌 당시 퍼디난드와 같이 리그 최정상 중앙수비 듀오로 꼽혔다. 그러나 3월 31일 리그 블랙번 전에서 부상을 입으면서 이로 인해 1달 간 나오지 못하다가 약 1달 뒤인 챔스 4강 2차전 AC 밀란 원정에 복귀했으나, 떨어진 경기 감각 때문에 히카르두 카카에게 상당히 고전하며 패배 당한 흑역사가 있다.[4]

그래도 좋은 수비력 및 세트피스에서의 존재감 등 상당한 활약상을 바탕으로 맨유의 주전이 되었고, 좋은 활약을 펼친 덕에 맨유는 02-03시즌 후 간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비디치는 커리어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PFA 올해의 팀과 ESM 올해의 팀에 선정됐다.

2006-07 시즌: 38경기(선발 38경기) 4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5 25 0 3 0
챔피언스 리그 8 8 0 1 0
FA컵 5 5 0 0 0
합계 38 38 0 4 0

5. 2007-08 시즌

파일:Vidic_0708.jpg

지난 2006-07 시즌에 실베스트르를 밀어내고 주전이 되었는데 2007-08 시즌에도 굳건히 주전 자리를 지켰다. 퍼디난드와 함께 주전 센터백 듀오를 결성했으며, 파트리스 에브라 또한 월드클래스 풀백으로 성장했다. 거기다 웨스 브라운 게리 네빌의 빈자리를 잘 메꿔주면서 주전 포백을 구성했다. 비디치는 퍼디난드와 함께 서로를 뒷받침해주면서 팀 실점을 최소화시키고 있으며 가끔 실버스트르가 나올 때에는 뭐같은 수비로 답답한 플레이를 보여 비디치와 퍼디난드의 존재감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 그의 진가는 드러났다.

시즌 후반기가 지나면서도 체력적인 문제 없이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공중 장악권은 그야말로 공포 그자체 였다. 챔스에서는 결승에 진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위건과의 최종전까지 가는 끝에 우승팀이 결정되었는데, 맨유가 이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하면서 첼시를 밀어내고 또 우승했다. 2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우승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펼쳐진 200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와 프랭크 램파드에 한 골을 내주었지만 짠물 수비를 펼치며 추가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1:1의 스코어가 유지되어 연장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연장 후반에 디디에 드록바의 퇴장을 이끌어냈고, 이것이 맨유에게 큰 이득이 되었다.[5][6] 결국 승부차기까지 진행되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실축으로 인해 패배 위기를 맞았으나, 존 테리의 실축과 에드빈 반 데 사르의 맹활약으로 승부차기에서 극적으로 6:5로 승리하며 개인 커리어 첫 챔스 우승을 이뤄냈다. 그렇게 비디치와 맨유는 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더블을 거두었다.

이 시즌 비디치와 퍼디난드의 두 센터백 콤비는 팀워크 면에서나 수비 조직력에서나 극강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초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좋지 않은 행보로 리그를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다시 선두권으로 올라선 이유가 바로 수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리그 2연패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수비 조직력에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도 2007-08 시즌 모든 경기에서 2실점을 초과한 실점을 내 준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다. 또한 비디치는 PFA 올해의 팀에도 선정되었다.

2007-08 시즌: 45경기(선발 45경기) 1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2 0 1 1
챔피언스 리그 9 9 0 0 0
FA컵 3 3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5 45 0 1 1

6. 2008-09 시즌

파일:Vidic-v-Sunderland-2008.jpg

시즌 개막 전에 펼쳐진 2008 UEFA 슈퍼컵에서 제니트를 상대로 선발로 나와 만회골을 넣었으나 아쉽게도 2대1로 패한다. 하지만 직전 시즌에 리그, 챔스 우승을 경험한 비디치와 맨유였기 때문에 08-09 시즌 전망은 밝았다.

그리고 맨유의 2008-09 시즌 전반기 행보는 좋지 못했다. 개막전부터 무승부를 기록하더니 전반기 리버풀 전과 아스날 전에서 모두 패배를 거둔 것. 이러다보니 전반기에 리그 선두는커녕 3위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나마 맨유가 꾸역꾸역 선두권을 유지한 것도 수비진의 굳건한 활약상 덕에 가능했다. 예를 들면 11월 1일 헐시티 전에서 비디치가 이 시즌 리그 첫 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하며 승리했으며, 12월 6일 선덜랜드 전에서는 후반전 추가시간에 비디치의 극적인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듯 맨유의 전반기 공격이 다소 기복이 있던 상황에서 비디치의 득점은 맨유에 직접적으로 승점 6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12월 말에는 일본에서 펼쳐진 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준결승 감바 오사카 전에서는 선제골을 넣으며 5-3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전에는 비디치가 후반전 4분이라는 이른 시간에 퇴장을 당하면서 팀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1-0 승리를 따내면서, 다행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후 1월 11일에 펼쳐진 첼시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는 전반전 막바지에 얻은 코너킥 찬스에서 선제 헤더 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끌고 왔으며, 짠물 수비로 상대 공격진을 빈틈없이 잘 막아내면서 3대0 완벽한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다음 경기 위건 전과 볼튼 전에서 1-0 승리를 따내면서 이 시즌 처음으로 리그 선두 자리를 탈환했고, 곧바로 1월 26일에 펼쳐진 웨스트브롬위치 전에서는 팀의 3번째 골을 넣으며 5-0 승리에 기여했다. 또한 리그 14경기, 1,311분 무실점이라는 최장시간 무실점 기록도 세웠다. 무려 12R 스토크 시티 전부터 25R 풀럼 전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간 것이다. 이렇게 맨유가 14경기 연속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달성할 때 그 중앙에 있던 건 비디치였다. 퍼디난드가 부상으로 출장이 들쭉날쭉할 때, 웨스 브라운이나 조니 에반스 등의 수비수들을 이끌며 에브라, 반데사르와 함께 굳건한 수비력을 과시했다.

또한 2월말에 펼쳐진 토트넘 핫스퍼와의 리그컵 결승에서는 교체 명단에서 출발해 존 오셰이와 76분에 투입되어 오른쪽 풀백에서 뛰었고, 연장전까지 0-0 스코어가 유지되면서 승부차기까지 진행되었다. 승부차기에서 팀이 4-1로 승리하면서, 비디치는 본인 커리어에 메달을 하나 더 추가했다. 여기에 3월 11일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인터밀란 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2-0 승리와 8강 진출을 이끌었다.

다만, 3일 뒤 28R 리버풀 FC 전에서 거하게 말아먹으면서 리버풀에 약하다는 평을 받고 만다. 06/07시즌, 07/08시즌에는 리버풀 상대로도 잘했던 비디치였으나, 리그 선두 경쟁이 한창이던 후반기 중순에 2위로 맨유를 추격하는 리버풀과의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결전에서 패배의 원흉이 된 것이다. 박지성이 파울로 얻은 PK를 호날두가 성공시켜 1-0으로 앞서가던 상황에서 간단한 롱패스를 잘못 판단하여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동점골을 어이없게 허용했고, 이후 스코어가 밀리는 상황에서 후반 막바지에 스티븐 제라드의 영 좋지 않은 부위를 잡으며 퇴장까지 당하게 된다. 여기에 이 파울로 얻은 프리킥을 파비우 아우렐리우가 골로 연결시켰다. 사실상 비디치의 실수로 2골을 내주며 맨유도 4-1로 패배. 결국 평점 1점을 받는 등 혹평을 받고 만다.

FA컵 준결승 에버튼전, 승부차기 3번 키커로 나서 성공시켰지만 그 전 1,2번 키커인 베르바토프 퍼디난드의 실축으로 인해 탈락했다.

이후 경기에서는 파트너인 퍼디난드와 함께 안정적인 수비를 펼쳐 맨유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시즌 막판 팀의 주전의 페이스 하락으로 기복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FC 포르투 상대로 합산점수 3-2로 꺾었으며, 준결승에서는 아스날을 상대로 홈과 원정에서 모두 승리를 따내 합산점수 4-1로 꺾으면서 전년도에 이어 2시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여기에 리그에서도 승리를 꼬박꼬박 챙기면서 3시즌 연속으로 리그를 제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2008-09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FC 바르셀로나 전에서도 선발출전했으나, 전반 초반에 사무엘 에투의 선제골을 막아내지 못했고, 후반 70분에 리오넬 메시의 헤더 골까지 나오면서 승부의 향방이 사실상 결정나고 말았다. 그렇게 맨유는 2-0 패배를 거두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했다.

그래도 비디치는 시즌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PFA 올해의 팀, ESM 올해의 팀, 맷 버스비 올해의 선수,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으며,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8-09 시즌에는 세트피스 상황,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 골을 많이 기록하였다. 심지어 박지성보다 이 시즌에 리그 득점이 많았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골 넣는 수비수. 총 7골을 기록하였다!

2008-09 시즌: 55경기(선발 52경기) 7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3 1 4 1
챔피언스 리그 9 9 0 1 0
FA컵 4 4 0 0 0
칼링컵 4 2 2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2 0 1 0
슈퍼컵 1 1 0 1 0
합계 55 52 3 7 1

7. 2009-10 시즌

파일:Vidic_0910.jpg

2009-10시즌 초반 부상으로 나오지 못했으나 3라운드 위건전에서 복귀하여 안정적인 수비력을 과시하였다. 11라운드 리버풀과의 안필드 원정 경기에서도 지난 시즌에 이어 또 퇴장당하며, BBC의 축구 전문가 앨런 핸슨에게 "토레스를 겁내는 거 아니냐"라는 평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다시 클래스를 입증하며 퍼디난드가 잔부상으로 빠져도 홀로 제 몫을 하고 있다. 본인도 잔부상이 있긴 했지만 그리 심하진 않았고 팀 내 센터백 자원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2009-10시즌 후반기, 올드 트래포드에서의 리버풀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는[7] 굳건한 수비를 보이며 선전하여 팀의 값진 승리에 한 몫했다.

그러나 이 시즌 첼시의 어마어마한 페이스로 리그 우승이 힘들어지고 있다. 승점차는 얼마 나지 않으나 첼시가 미끌어지면 맨유도 같이 미끌어지는 양상이 지속되면서 따라잡지 못 하고 있다. 설상가상 득실점차가 첼시가 월등히 높으므로 무조건 승점이 더 높아야 한다. 첼시가 리그 35라운드 경기에서 패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결정은 리그 최종전이었던 스토크 시티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동시간에 펼쳐진 경기에서 첼시가 8:0으로 승리하며 일찌감치 좌절되었다. 하지만 박지성의 골을 포함해 4:0으로 승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2009-10 시즌: 33경기(선발 33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24 0 1 0
챔피언스 리그 7 7 0 0 0
칼링컵 2 2 0 0 0
합계 33 33 0 1 0

8. 2010-11 시즌

파일:VIDICSSS.jpg

10-11 시즌부터,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출전이 거의 없어지다시피한 게리 네빌을 이어 맨유의 주장이 되었다. 이 때, 비디치의 주장 임명에 노장들에게 주장을 왜 안 주냐는 소리가 나오긴 했다. 폴 스콜스는 본인 스스로 주장 자리는 싫다고 밝힌 바가 있고, 라이언 긱스는 나이 때문에 매 경기 출장이 불가능하다.[8] 리오 퍼디난드도 잔부상 때문에 비디치만큼 나오기가 힘들다. 웨인 루니의 경우 맨유에서 적지 않은 기간 활약했지만[9] 워낙 어린 나이부터 뛰어왔다 보니 이 당시에도 나이가 만 25세로, 주장직을 맡기에는 다소 어린 편이었다.[10] 에드윈 반 데 사르는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할 정도로 이미 상당한 노장이었고, 퍼거슨이 골키퍼는 포지션의 위치상 자신의 목소리를 구장 전체에 퍼뜨리기 어렵기 때문에 골키퍼를 주장으로 놓는 것을 꺼려서 주장 후보에도 없다시피 했다.

2010-11시즌 초반에는 유독 위급할 때 헤더 골을 넣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건 08-09 시즌 초반에도 마찬가지였다) 에버튼 FC전, 토트넘 핫스퍼전 (선취골), 아스톤 빌라전 (동점골) 등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서 더욱 자신감이 더해진 것 같다. 더군다나 시즌 초 경기력이 안 좋을 때 많이 넣어 더욱 영양가 높다.

또한 퍼디난드가 무릎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려먹을 때 주전 수비진이 붕괴되어도 에브라와 함께 멱살캐리를 하며 더욱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이번 시즌 맨유는 리그에서 홈에서 극강인데 비해 원정에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 패는 별로 없지만 무승부가 너무 많다. 특히 시즌 초반에 리그 13경기에서 6승 7무를 기록하였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수비수를 꼽으라고 하면 절대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수비수.

퍼디난드가 돌아오고 나서는 부담이 줄어든 모습이며 시즌 후반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리그 판도가 맨유쪽으로 넘어오고 있다. 챔스에서도 8강전에서 첼시 상대로 합산점수 3대1로 첼시를 꺾어 4강에 진출한다.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는 샬케 04를 상대로 1차전 2대0, 2차전 4대1로 그야말로 멀리 관광보내며 2년만에 다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상대는 2년전 상대였던 펩 과르디올라 바르셀로나이다.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첼시와의 사실상 우승팀 결정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라이언 긱스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 골을 성공시켜 팀의 두번째 득점을 올렸다. 2대1 승리에 한 몫하였다. 이로써 확실히 우승이 다가왔고 결국 우승을 거두었다. 본인 커리어 4번째 리그 우승.

웸블리에서 펼쳐진 201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선발로 나와 전반전에서 페드로에게 1골을 허용하고 웨인 루니의 동점골로 전반전을 마쳐 기대를 모았으나, 후반전에는 완전히 바르샤가 경기를 장악하여 리오넬 메시 다비드 비야에게 추가골을 헌납하며 3대1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래도 이 시즌의 활약으로 본인 커리어 두 번째로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선수 FIFA FIFPro 월드 XI에 선정되었다.

2010-11 시즌: 47경기(선발 47경기) 5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35 0 5 1
챔피언스 리그 9 9 0 0 0
FA컵 2 2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7 47 0 5 1

9. 2011-12 시즌

11-12 시즌에서는 프리미어리그 1라운드 개막전이었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전에서 부상을 끊으면서 당분간 쉬게 되었다. 그동안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홈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에게 6-1 굴욕의 대패를 당하는 등 비디치의 부재를 실감했다.

복귀한 뒤에 서서히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며 6-1대패 이후의 맨유 수비진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으나, 2011년 12월 8일에 펼쳐진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FC 바젤 원정에서 전, 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엄청난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 그러지 않아도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맨유는 결국 바젤전에서 2-1로 패배하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수비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비디치의 시즌 아웃은 맨유에게 있어서 큰 타격이였었다. 퍼디난드는 이미 노쇠화가 진행중이고 남은 것은 젊은 3인방인 조니 에반스 크리스 스몰링, 필 존스이다. 에반스는 지난 시즌부터 정줄 놓은 빈도수가 높아졌고 스몰링과 존스 역시 경험 부족이 큰 약점이다. 게다가 골키퍼도 베테랑 반 데 사르는 은퇴해서 아네르스 리네고르와 유망주 다비드 데 헤아였다. 부상이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서 축구를 그만두게될 정도로 심하다고 한다는 건 흥분해 날뛰던 언론들이 만들어낸 루머였고 비디치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다행히 5~6개월 정도 아웃될 것이라고 한다.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재활과 훈련을 잘 마치고 다음 시즌을 비디치와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맨유팬들은 기대했다.

그나마 비디치 부상 이후에 에반스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중앙 미드필더인 마이클 캐릭이 센터백으로 내려가 공백을 메우기도 하면서 선전했으나 FA컵과 유로파리그는 조기에 탈락했고 프리미어리그 마저도 결국 맨시티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하면서 무관에 그쳤다.

2011-12 시즌: 10경기(선발 10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6 6 0 0 0
챔피언스 리그 2 2 0 0 0
칼링컵 1 1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10 10 0 0 0

10. 2012-13 시즌

파일:Vidic_1213.jpg

일단 부상에서 회복하여 프리시즌부터 경기에 참여하고 있고 리그 개막 후 몇몇 경기에서도 출전하였으나 다시 부상을 당하여 제대로 경기에 복귀하여 출전하기 시작한 건 12/13 시즌 전반기 막판쯤. 그 전에는 필 존스, 크리스 스몰링, 조니 에반스가 퍼디난드 파트너로 나왔다.[11] 시즌 초반에 정줄놓은 수비로 속썩었던 맨유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구세주였다. 그리고 복귀한 후로 파트너가 누구건 잘 이끌어나가며 부상의 여파를 많이 떨쳐낸듯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퍼디난드와의 호흡이 제일 좋다.

예전의 경기력의 약 80%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특유의 공중 장악력은 여전히 위협적이면서 강팀과의 승부에서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12] 다만 이제 나이가 있는지라 노쇠화가 올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여진다.

12-13 시즌에는 여러 강팀들[13]이 스스로 자멸하면서 여유롭게 리그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이미 다른 대회는 광탈해서(...)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리그 우승은 확정적으로 보여진다.

결국 퍼거슨 감독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즌이었던 만큼 시즌이 끝날때까지 열심히 뛰어다녔으며, 퍼거슨의 마지막 홈경기였던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스완지시티전 종료 후 펼쳐진 우승 세레머니때 알렉스 퍼거슨 감독한테 먼저 트로피를 양보했고 퍼거슨이 번쩍 들어올렸다.
파일:Vidic-EPL-getty.jpg

2012-13 시즌: 23경기(선발 22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9 18 1 1 0
챔피언스 리그 2 2 0 0 0
FA컵 2 2 0 0 0
합계 23 22 1 1 0

11.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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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 시즌에는 노쇠화로 인해 폼이 상당히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맨체스터 더비 원정에서는 상대 공격진에 탈탈 털리며 4대1 대패의 원흉이 되었다. 패스미스도 잦아서 걷어내는 볼마다 본의 아니게 어시스트가 된다.

샤흐타르와의 챔스 경기와 선더랜드전에서 걷어낸 볼이 상대 공격수에게 가서 실점의 원인이 되었다. 25라운드 풀럼과의 홈경기에서도 공중볼을 걷어내려한게 상대팀 선수에게 갖다주는 안이한 헤더 패스가 되면서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 헌납의 빌미가 됐다. 이 경기는 맨유에게 있어서 반드시 잡아야하는 최하위팀과의 홈경기였기에 충격이 크다.

한편 13/14 시즌을 끝으로 맨유를 떠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이적팀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EPL이 아닌 타리그로 떠난다고 했으며, 인테르와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3월 5일 인테르행이 공식 발표되었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후반전 코너킥 상황에서 귀중한 선제 헤더 골을 성공시켰으나 슈바인슈타이거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대1 무승부를 거뒀고 2차전에서도 1대3으로 패배하며 합산점수 4대2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현지시각으로 5월 7일, 라이언 긱스와 함께 시즌 마지막 올드 트래포드 홈경기였던 헐 시티 전에서 고별전을 가졌다. 맨유 팬들과의 작별을 고했고, 맨유 팬들도 비디치의 응원가를 부르며 비디치와의 추억을 간직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3-14 시즌: 34경기(선발 32경기) 2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5 23 2 0 0
챔피언스 리그 6 6 0 1 0
캐피탈 원 컵 2 2 0 1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34 32 2 2 0


[1] 해당 시즌에는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400만 파운드에 박지성을, 200만 파운드에 에드윈 반 데 사르를 영입했다. 박지성, 반 데 사르, 비디치, 에브라 4명의 이적료를 모두 합해도 겨우 330억이다! 이 4건의 영입은 지금까지도 구단 역사상 최고의 영입을 한 시즌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현지 미디어가 뽑은 맨유 역사상 최고의 염가 영입 10선에도 들었다. [2] 이는 같은 시기에 영입된 에브라도 마찬가지였다. [3] 당시 퍼디의 파트너는 미카엘 실베스트르였는데 실베스트르는 영국은 물론 해외팬들에게도 최악의 구멍이라며 신나게 까였고, 그렇게 까일만한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 비디치가 맨유 입단을 확정지은 후 인터뷰에서 "맨유 경기를 보니 맨유의 약점은 수비진이었다. 내가 그 약점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 [4] 챔스 4강전에서 퍼디난드는 부상으로 1,2차전 모두 결장했으며, 비디치 역시 부상으로 1차전은 결장, 2차전에만 출장했다. 1차전에서 포백라인을 존 오셔, 브라운, 에인세, 에브라로 구성했으나 카카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렸고, 이로 인해 비디치가 2차전에서는 부상복귀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출전했지만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상황이다. 참고로 당시 카카는 최전성기의 상태였고, 그 해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메시조차도 달리기로 따라잡지 못하고 놓쳤다. 아무리 카카가 교체투입하였고 메시는 선발 출장이였다 해도 치달을 하는 쪽은 카카였고 따라붙는 쪽이 메시였는데 드리블 하는 카카를 못따라잡은 것이. [5] 경기 연장 후반 막판에 양측의 신경전이 발생했는데, 드록바가 주심이 보는 앞에서 비디치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은 비디치는 쓰러져 헐리우드 액션을 하긴 커녕 당장이라도 드록바를 몇 대 칠 기세로 달려들려고 했다. [6]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다섯 번째 키커로 드록바가 나올 계획이었으나, 퇴장당하면서 첼시 입장에서는 차질이 생긴 것. 그렇게 첼시의 다섯 번째 키커로 나온 선수가 주장 존 테리였고, 실축하면서 경기의 향방마저 맨유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7] 박지성이 결승 헤더 골을 넣었던 그 경기 맞다. [8] 여담으로 네빌 이전 주장이었던 로이 킨이 팀을 떠날 당시 부주장은 네빌이 아닌 긱스였으나 퍼거슨은 팀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도 면에서 네빌이 대단하다면서 네빌에게 완장을 넘겼었다. [9] 입단 시기만 본다면 비디치보다 오래되었다. [10] 그리하여 루니는 비디치가 팀을 떠난 후에 그 다음으로 주장직을 이어받는다. [11] 주로 많이 출전기회를 받은 선수는 에반스. [12] 특히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제공권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끊임없이 위협하기도 했다. [13] 맨시티, 첼시, 아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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