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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김재한(金載漢)·김의환(金毅煥) |
출생 | 1900년 1월 8일 |
한성부 서서 인달방 사직동계 무덕동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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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4년 10월 9일 |
북한 | |
묘소 | 재북인사릉 |
본관 | 신 안동 김씨[1] |
가족 |
아버지
김가진, 어머니
부안 임씨 배우자 정정화 아들 김자동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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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정정화는 그의 부인이다.
2. 생애
2.1. 일제강점기
1900년 1월 8일 한성부 서서 인달방 사직동계 무덕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가진과 어머니 부안 임씨(扶安 林氏)[2] 사이의 5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3]1919년 조선 내에서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동지 전협이 대동단의 본부를 상하이로 이전할 계획으로 그해 10월 10일 대동단 총재인 김가진을 먼저 중화민국 상하이시로 망명하도록 권했다. 이때 아버지와 함께 조선을 떠나 상하이로 망명했다.
그 뒤 1928년 6월 상하이에 있던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의 상하이지부 조직에 참가하여 재정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5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로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절강성 항주시(杭州市)로 이전할 때, 김구 등과 함께 강소성 가흥현(嘉興縣)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임시정부 활동에 참가하였고, 선전위원회의 선전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34년 1월에는 김구· 안공근· 이동녕 등과 한인애국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낙양군관학교 분교 내의 한인반과 의열단 계열의 군관학교에도 관여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39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서처(秘書處) 비서 및 선전위원회 선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로 충칭방송국을 통하여 국내에 있는 한인들에게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5월 조선혁명당·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의 세 개 당이 통합하여 신당인 한국독립당을 창립할 때, 감찰위원회 위원[4]과 상무위원 겸 조직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같은 해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이 충칭으로 이전한 후 중화민국 국민정부로부터 한국광복군 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동의를 얻게 되자 광복군 총사령부 주계(主計)에 지달수· 나태섭· 민영구· 전태산과 함께 선임되었으며, 1943년 8월에는 한국광복군 조직훈련과장에 취임했고, 1945년 6월에는 정훈처(政訓處) 선전과장으로 광복군 활동에 참가하였다.
1941년 12월 2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부원에 선임되어 활동하는 한편, 외교연구위원회 위원[5]에도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1942년 2월 25일 송병조가 별세하자 개최된 긴급국무회의에서 송병조의 치상위원(治喪委員) 중 한 명으로 선임되었다.
2.2. 광복 후
8.15 광복 후에는 귀국하여 1946년 4월 한국독립당이 국민당, 신한민족당과 함께 3당 통합을 할 때 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그해 8월 중앙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다가 이듬해인 1947년 6월 미소공동위원회 참가여부 문제로 한국독립당이 다시 세 당으로 분리될 때, 한국독립당에 잔류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했다. 같은 해 12월 UN위원단 입국 뒤에 실시된 남북 전국총선거 참가에 관한 문제로 인해 한국독립당 대표로 존 리드 하지 중장에게 파견되어 현 사태에 대한 성명을 요청했다.1948년 3월 한국독립당에서 남북요인회담 추진위원회를 설치할 때, 조소앙·조완구· 엄항섭· 조경한·백홍균(白泓均)과 함께 추진위원에 선임되었고, 그해 4월 김구·조소앙·엄항섭·조완구· 조일문(趙一文)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석했다. 1949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 독립운동사료 조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납북되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되었을 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1964년 10월 9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사후 재북인사릉에 안장되었으며 조국통일상을 수상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