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22:38:45

고사


1.

1. 자세히 생각하고 조사하는 것.
2.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평가하는 시험.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대표적이다.

2.

나무 따위가 말라 죽음. 가뭄 등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제초제 등에 의해 죽을 수도 있다.

3.

액운은 없어지고 풍요와 행운이 오도록 집안을 지키는 에게 돼지머리, 시루떡, 북어, 음식등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 대부분 시월 상달[1] 에 지낸다.

보통 가게를 열때 돼지머리를 두고 고사를 지내는게 많고, 개업할 땐 돼지머리에 돈을 물리는 식으로 축하금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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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스피릿을 축복하는 테크-프리스트들.

충무로에서는 영화 제작에 들어갈 때 무사 촬영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고사를 지내며, 그 외에 신형 차량, 선박, 항공기에 대해서도 개발성공 또는 무사고 운영을 기원하며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특히 자동차가 그다지 많지 않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중후반에는 새 차를 뽑는 경우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2] 이 풍습은 1990년대 후반쯤에 사라졌지만 아직도 화물차주 등 일부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지내기도 한다. 또한 컴퓨터가 비싸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무렵까지만 해도 각종 공공기관등에서 업무 처리를 위해 컴퓨터를 들여놓게 되면 제발 고장나지 말고 무사히 잘 작동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즉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어떤 큰 일을 치를 때 그것이 탈 없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행사로써 고사를 지내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기독교인들 중에는 교리에 따라 고사를 꺼리기도 한다. 종교적 또는 비종교적 신념에 따라 조상'신'을 부정하더라도 '조상을 기리는 가족행사'로서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 제사보다도 더 엄격하게 가려진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은 뒤에서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는 편이며, 가톨릭 신자의 경우 고사에는 참가하되 절하는 대신 묵상기도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즉 일종의 기도제로 해석하는 것.

사실 많은 외국인들이 오해하고 일부 한국인들도 깨닫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고사는 돼지머리를 대상으로 절하는 게 아니다. 고삿상에 돼지머리를 포함해서 간단한 음식과 과일을 천지신명(혹은 상제나 산신령 등 초월적인 존재)에게 "바치고" 축원하는 것이다. 명절날 차례를 지내는 것도 과일과 떡에 절하는 게 아니라 조상신에게 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즉 축원울 비는 대상은 돼지머리가 아니라 그 뒤에 앉아있을, 인간 눈에 안 보이는 신령스러운 그 무엇인 존재이다. 사실 이는 고사나 제사의 특수성이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제의가 가지는 보편적 성격이기에 굳이 말하기조차 새삼스럽고 한심한 것이다. 이를 체계화된 지식으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고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만약 "지금 당신은 돼지머리에 절하고 있는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십중팔구 "좀 있다 먹을 머릿고기에 왜 절하냐?" 며 "신령님한테 절하는거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 일부 아브라함 계통 종교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이 점을 모르고 고사를 '돼지머리 우상숭배'라 부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몹시 무지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거나, 아니면 타인의 문화종교적 관습을 비하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기도 하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이런 식으로 비하하려고 덤벼들면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아브라함계 종교인 기독교 역시 나무막대기, 그것도 고문처형용 도구를 숭배하는 괴상한 컬트로 취급할 수 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 위예서 예수가 스스로를 희생했음을 기억하기 위한 상징인 것이지 그 물건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아니지만,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만 보고 트집잡으면 똑같은 모양새를 만들 수 있는 것. (돼지머리는 먹는 것이라 아니꼽다면, 기독교에도 성만찬이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한국에서 교세가 큰 개신교는 기독교의 종파중에서는 성만찬을 가장 덜 중시하는 종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만찬이 영향을 받은 기념행사(성찬식)정도는 가끔 한번씩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계 종교로 기독교와 쌍벽을 이루는 이슬람은 (주요 종교중에서는 가장 후발주자인 만큼)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을 종교의식에 개입시키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교리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하여 가드를 잔뜩 올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조차도 트집잡자고 하면 못 잡을 것은 전혀 없다. 무슬림들 역시 코린과 그 구절은 신성시하므로 '책과 글자, 문장을 숭배하는 특이한 컬트'라고 왜곡할 수 있는 것.

요컨데 중요한 것은, '상징이든 제물이든 종교 의식의 매개가 되는 것'과 '그 의식에서 숭배, 또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매개'를 '신앙의 대상'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부터 타 종교를 비하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던 수법이지만 이런 수법을 사용하는 자들 치고 그 수법이 그대로 자신의 종교를 비하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좀 비꼬아 말하자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 수법을 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이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앙이 없기 때문에 부메랑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 종교인, 특히 무신론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고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고사에 적대적인 반응을 심하게 보이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우상숭배'로 보고 공격하는 타 종교(다른 조직화된 종교)인들이었던 것.

봉준호 감독이 해외에서 설국열차 촬영에 들어갈 때 한국에서 하듯 스태프들과 고사를 지냈는데, 사실 봉 감독은 외국 현지 사정상 돼지머리 구하기도 힘들고, 돼지머리에 절하는 게 미신처럼 보일까봐 고사를 지낼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배우 중 가장 경력도 길고 최연장자인 존 허트가 고사 풍습에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이것은 아름다운 전통"이라며 봉준호에게 고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전통은 지켜야 아름다운 것이라며[3] 촬영장 크랭크인 때 고사를 지내자고 했다고 한다. # 다만 돼지머리는 아역들과 외국인 스태프, 외국인 배우들도 있고 시각적으로 꺼려지기도 하니[4] 아이패드에 사진을 띄워 대체했는데, 이 에피소드가 알려진 이후로 국내 촬영장이러든가 젊은 새대(뮤지션의 음반 취입이나 공연 개시 등)에서는 약식으로 아이패드에 돼지마리 사진을 띄우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후문.

사실 서양에서도 무사 운영이나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일부 기독교(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에서 축복식이라는 것을 하며, 차량이나 선박, 항공기 등에도 이런 축복을 행하기도 한다. 축복받을 대상에 성호경을 긋거나 성수를 뿌리는 의식. # 개신교에서는 개업축복, 상량, 이사, 성물봉헌 등에서 성서구절을 나누고 안수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외 다른 나라에서도 각국의 전통이나 종교에 따라 고사와 유사한 의식들이 있다. # 특히 선박의 경우 진수식 때는 거의 한국의 고사에 못지않은 전통적인 격식을 따라 샴페인 병을 깨어 축원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항목 상단의 두 번째 사진도 서양의 전통적 진수식에 대응하는 의미의 고사를 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5] 요컨데 종교의 기능중에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것'도 있으니 큰 일이나 위험한 일을 앞두고 무사와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 전통 역시 세계 각지의 많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고사라는 전통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반응 역시 시대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상기된 바와 같이 20세기 말, 대략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문화의 영향력이 꽤 많이 남아있어서 뭔가 큰 일이 있을 때 하기 전에 고사 한번 지내지 않으면 섭섭하다, 또는 아쉽거나 불안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6] 하지만 당시에는 고사를 지내는 것을 '빨리 버려야할 인습' 취급하는 목소리 역시 높았는데, 이는 일단 당시의 한국 사회가 '외국인의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거의 컴플렉스에 가깝게 의식하면서도 동시에 '그 외국인들이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접할 기회는 거의 없는 상태였던 것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당시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상상하던 '외국인'이란 고사와 같은 '이교적이고 이상한 관습'을 미개한 미신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외국인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그러한 인습은 어서 빨리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앗던 것이다. 또 여기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당시 한국 사회에서 외국(서구)문화가 유입되는 주요한 통로 역할을 하던 기독교, 특히 원리주의 개신교였다. 이 당시는 또 개신교의 교세가 한참 활발하여 기독교를 한국의 주도종교로 자리잡게 하여 기독교국가화 하는 것까지 가능할수도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차있던 시기였기에[7] 자신들의 기준에서 '우상숭배'로 여겨지는 고사와 같은 전통을 공격하여 몰아내려고 하는 시도 역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10년대 이후가 되면서, 한국인들 자신이 자신의 문화적 역량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현실에 존재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경험도 상당히 쌓임으로써 그러한 컴플렉스를 상당부분 극복하게 되었다. 게다가 고사에 대한 반대 여론을 주도하던 원리주의 개신교의 기세도 상당히 꺾이게 되면서 고사는 그저 하나의 문화적 전통일 뿐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통문화의 영향력이 약해져서 큰 일이 있기 전에는 고사 한번 치러줘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정작 그 '외국인'들이 고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이야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정말 '이상하고 기분나쁜 미신'이라 여기고 불쾌하게 여겼을수도 있지만 다른 이는 '내게 절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이상 상관없다'고 여긴다거나, '흥미로운 전통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이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며, 존중하는 김에 자신도 참여한다거나, 참여하기는 하는데 절 하는 모양새가 어째 한국식 절이 아니라 (고국에서 접한 다른 자료에서 본대로 따라한 것인지) 손바닥을 위로 올리는 티베트 불교식 절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모양새가 된다거나, 자신이 책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이러한 종교적 제의에 내놓은 음식들은 참여자들이 나눠먹는 경우가 많다던데 저 돼지머리는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 것인지 궁금해하는 등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는 것. 애초에 '외국인 반응'을 한마디로 싸잡아 이해하려던 것 자체가 아직 한국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일천하던 시기의 무모한 시도였던 것이다.

4.

제의나 권유 따위를 굳이 사양함.

5.

공중에 높이 쏨. 고사포의 고사가 이것이다.

6.

오래된 옛 이야기라는 뜻으로 주로 유명하거나 후세 사람들에게 전할 교훈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들에서 유래한 관용어들을 고사성어라고 한다.

한국어에서 고사는 아주 옛날 이야기를 뜻하지만 중국어에서 고사는 이야기를 뜻한다.

7.

타이완의 다른 이름이다.

8. 한국 호러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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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사하다의 어근으로 ~는 고사하고의 뜻으로 쓰인다.
~가 문제가 아니다. 둘째치고와 비슷하게 쓰인다.

[1] 상달은 음력 10월의 다른 이름으로, 가장 귀한 달이라고 여겨서 상달이라고 부르는 것 [2] 사실 이것은 현실적 이유도 있었는데, 1980년대 대한민국 교통사고율은 세계 1위를 기록하던 때였는지라 사람들이 무사고 운전을 기원하려는 심리적 이유도 있었다. 그 시절 택시 백미러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인 기도하는 소녀가 그려진 팬던트를 흔히.볼 수 있던 것도 같은 이유다. [3] 참고로 존 허트는 영국인이다. 영국인들의 특성 중 하나가 전통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인데 문화상대주의 입장에서 한국의 전통을 존중한 듯하다. [4] 봉준호 감독은 본인부터가 돼지머리 잘라놓은 것의 뒷면(단면)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고 제작 비하인드에서 밝힌 바 있다. [5] 그런데 이 경우 고사 지내는 것과 별도로 진수식은 진수식대로 한다. 뱃사람들이 항상 풍랑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속설에도 민감하거니와(특히 샴페인 병이 제대로 깨어져야 한다), 진수식은 배의 명명식을 겸하기 때문. [6] 고사가 꼭 영험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 믿지는 않아도 안 지내면 섭섭하다고 여기는 이들의 정서는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등장하는 일제시대 목수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말로는 "무당판수도 다 괜한 소리인 것 같지만 고사 지내는 것도 헛일은 아닌 것 같다"는데 그 이유인즉 "고사라도 안 지내면 떡맛을 평생 언제 보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건물 짓는 목수이고 큰 건물 공사도 여러번 참여했다고 하니 그때마다 건축주가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고사가 꼭 효력이 있을 것이라 믿지는 않더라도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을 나눠먹는 맛이라도 있으니 고사를 안 지내게 되면 몹시 섭섭한 것. [7] 사실 2000년대 이후 일부 기독교(특히 개신교)인들이 일으키는 사회적 물의와 트러블도 상당부분 이 시대의 기억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뻔뻔한 논리지만 교회라는 작은 사회 내부에서는 그 논리가 오히려 정론이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한 시대에는 바깥 사회에서도 그 논리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는데, 문제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과거의 기억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 그러니까 바깥 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을 해당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별것도 아닌 것으로 괜히 시비를 건다', '배후에 반기독교 세력이 숨어있는 것 같다'와 같이 적반하장으로 보이는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