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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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숭덕제의 후궁 강혜숙비 | 康惠淑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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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colbgcolor=#fff,#1f2023>강혜숙비(康惠淑妃) | |
통칭 | 연경궁 숙비 (衍慶宮 淑妃) | |
지위 | 동연경궁복진⇒동연경궁측복진(동연경국 숙비) | |
이름 | 보르지기트 파특마조(博爾濟吉特 巴特瑪璪) | |
가계 | 부친 아패해탑포닝 박저새초호이(阿霸垓部塔布囊 博第塞楚祜爾) | |
부군 |
前 찰합이부
링단 칸(察哈爾部 林丹汗) 現 숭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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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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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의 후궁. 몽골 커얼친(과이심)부 출신으로 성은 박이제길특이고, 이름은 파특마조이다.원래 링단 칸의 아내이였지만, 링단 칸이 죽은 후, 후금으로 귀화하여 홍타이지의 복진으로 재혼했다.
2. 생애
파특마조는 몽골 차하르부 링단 칸의 넷째 부인으로 딸을 낳았다.천총 8년(1634년) 링단 칸이 청해 대초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호송되어 후금으로 귀순했다. 다이샨 등은 귀순한 몽골 대신들을 환영하는 잔치를 열었고, 패륵들은 홍타이지를 설득하여 그녀를 복진으로 삼으라고 청했다.처음에 홍타이지는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이샨 등 여러 패륵들은 그녀가 "하늘의 운을 다하여 타지에서 돌아오니, 그 뜻은 하늘의 뜻인데 받들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칸께서 덕을 닦고, 의를 행하시여 하늘의 뜻을 내려 칸을 특별히 보살펴주시나 봅니다."라고 다시 설득하자, 홍타이지는 그녀를 맞아들였다. 이는 홍타이지가 링단 칸의 부인인 그녀를 맞이하게 된 이유가 정치적 의미가 컸다고 볼 수 있다.
홍타아지는 그녀를 아내로 맞은 지 1년도 안되어 천총9년(1635년)에 보르지기트 나목종이 1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귀순했다.
숭덕 원년(1636년) 홍타이지가 자신을 황제로 칭하고, 국호인'대금'(사칭 후금)을'대청'으로 바꿨다. 동쪽 연경궁(衍慶宮) 복진에서 동연경궁측복진(동연경국숙비)에 봉해져 숭덕오궁후비(崇德五宮後妃)의 네번째에 올랐다.
숭덕 8년(1643년), 순치제가 즉위하여 태비에 봉해졌다.순치 9년(1652년)에 강혜(康惠)라는 호를 붙여 강혜숙비(康惠淑妃)라고 불렀다.
강희 6년(1667년) 5월 강혜숙비가 사망하자 그해 8월 성경을 옮겨 청 소릉귀비(淸昭陵貴妃)에 장사지냈다.
3. 자녀들
링단 칸의 딸은 홍타이지의 배려로 홍타이지에게 입양되어 궁에서 자랐다. 숭덕 5년(1640년)에 홍타이지는 예친왕 도르곤에게 그녀를 복진으로 맞이하라고 명했다.4.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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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옥아전기 배우 풍벽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