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내영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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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93d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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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연 (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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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영 (1990~1998. 7.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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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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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8번}}} | |||||
조규제 (1991~1998. 7.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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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영 (1998. 7. 31.~1999) |
→ | 팀 해체 | |
{{{#ffffff [[SSG 랜더스|SK 와이번스]] 등번호 18번}}} | |||||
팀 창단 | → |
가내영 (2000~2001. 5.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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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제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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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5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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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중 (1997~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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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영 (2001. 5. 31.~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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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스 (2002~2005. 7.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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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47번}}} | |||||
손혁 (2000~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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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영 (2002~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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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민 (200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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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영 賈來暎 | Ga Nae 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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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1년 3월 29일 ([age(1971-03-29)]세) |
경기도 인천시 (現 인천광역시)[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동인천중 - 제물포고 |
신체 | 182cm, 76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0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 태평양) |
소속팀 |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1990~1998) 쌍방울 레이더스 (1998~1999) SK 와이번스 (2000~2001) 해태- KIA 타이거즈 (2001~2003) |
지도자 |
광주 동성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04~2007)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8~2012) 세광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4) 인천연수구유소년야구단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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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제물포고등학교 출신으로 태평양-현대, 쌍방울, SK, 해태-KIA 등의 팀에서 활동하였다. 제구력 위주의 정통파 투수로 포심 패스트볼과 서클체인지업, 포크볼을 주무기로 활약하였다.2. 선수 경력
제물포고를 졸업하고 1990년 고향팀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해 데뷔했다. 참고로 이지영과 박치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선수 중 제일 유명한 선수가 가내영이었다.[2]등번호는 태평양-현대 시절 47번, 쌍방울 시절 18번이었고, 해태-KIA 시절 59번-47번이었다.
1990년대 투수왕국이라고 불렸던 태평양-현대에서 5선발과 계투요원을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했던 투수였는데, 1991년 1군에 올라 1998년 시즌 중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으로 인하여 현대 유니콘스가 자금란으로 인하여 거금 돈으로 산 조규제를 데려올 목적으로 박정현+현금 6억 원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현금 트레이드된다.[3][4]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뛰던 1999년에는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어 팀을 떠난 김현욱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전천후로 등판, 그렇게 입단할때 1군에 활동하지 못했던 옛 은사를 만나 조금씩 관리를 하며 57경기 116이닝 0승 10패라는 특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2000년 1월 쌍방울이 해체된 후에 선수단을 인수해서 재창단한 SK 와이번스 소속이 되며 고향 인천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다가 2001년 5월 이동수와 함께 양현석을 상대로 해태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되며 해태-KIA에서 뛰었으나 지명 후 승계하여 어깨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3년 말 방출되어 은퇴했다.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은퇴한 사례.
통산 기록은 291경기 9완투 1완봉승 34승 43패 15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4.71.
태평양-현대 시절에는 필승조와 롱 릴리프 역할을 많이 했으며 5선발 역할도 잘 수행하였다.
3. 은퇴 후
은퇴 후 광주동성고등학교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 시기 한기주를 지도하기도 했다.2008년부터는 모교인 제물포고등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2009년과 2010년에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감독상을, 2011년과 2012년에는 고교야구 주말리그 권역 감독상을 수상했다.[5]
2014년에는 세광고등학교 감독을 맡았다.
현재는 인천 연수구유소년야구단의 감독을 맡고 있다.[6]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1990 | 태평양 | 1군 기록 없음 | ||||||||||||
1991 | 3 | 4 | 0 | 0 | 0 | 0 | 2.25 | 3 | 1 | 1 | 0 | 3 | 1.00 | |
1992 | 20 | 107 | 7 | 9 | 0 | 0 | 5.47 | 128 | 10 | 47 | 4 | 49 | 1.64 | |
1993 | 25 | 128⅔ | 7 | 6 | 3 | 0 | 3.36 | 111 | 9 | 34 | 3 | 57 | 1.13 | |
1994 | 11 | 34 | 1 | 0 | 0 | 0 | 5.03 | 44 | 3 | 8 | 1 | 15 | 1.53 | |
1995 | 23 | 97 | 4 | 7 | 0 | 0 | 5.01 | 109 | 11 | 23 | 1 | 55 | 1.3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1996 | 현대 | 44 | 133⅓ | 8 | 6 |
6 (10위) |
0 | 3.38 | 111 |
10 (10위) |
31 | 10 | 93 | 1.07 |
1997 | 36 | 65⅓ | 4 | 0 | 0 | 0 | 5.92 | 80 | 11 | 22 | 3 | 38 | 1.56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1998 | 현대 / 쌍방울 | 20 | 40⅓ | 1 | 3 | 1 | 0 | 4.24 | 36 | 4 | 8 | 4 | 18 | 1.09 |
1999 | 쌍방울 |
57 (5위) |
116 | 0 | 10 | 4 | 0 | 5.66 | 130 | 19 | 48 | 14 | 82 | 1.53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00 | SK | 15 | 21⅔ | 0 | 0 | 0 | 0 | 7.48 | 32 | 7 | 4 | 1 | 16 | 1.66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01 | SK / KIA | 20 | 41 | 1 | 2 | 1 | 0 | 5.93 | 46 | 8 | 17 | 3 | 24 | 1.54 |
2002 | KIA | 13 | 25 | 1 | 0 | 0 | 1 | 2.52 | 32 | 2 | 8 | 2 | 18 | 1.60 |
2003 | 4 | 4⅔ | 0 | 0 | 0 | 0 | 7.71 | 7 | 0 | 0 | 1 | 3 | 1.50 | |
KBO 통산 (3시즌) |
291 | 818 | 34 | 43 | 15 | 1 | 4.71 | 869 | 95 | 251 | 47 | 471 | 1.37 |
5. 기타
- KBO 역대 야구선수를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첫 번째로 올라가는 선수이며 두 번째는 가득염, 세 번째는 감병훈이다. 2020 시즌부터는 가뇽이 그의 아성(?)을 깨뜨릴 뻔했으나 2번째로 들어올 듯하다.
- 태평양과 현대 시절 별명이 아가씨였다고 한다. 남자치고는 꽤나 곱상하게 생겨서 그렇다고.
6. 관련 문서
[1]
1981년 7월 승격 이전에는 경기도 인천시였다.
[2]
이 때문에 제물포고가 배출한 최초의 프로 선수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다. 제물포고가 배출한 최초의 프로 선수는 1984년 청룡기 준우승을 이끌었던 투수 허정욱이다.
[3]
1998년 시즌 전만 해도 현대의 5선발 후보였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부상으로 낙마하자 코치진은
김용휘 단장이 강력 추천한 신인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그가 바로 그해 고졸신인으로 입단해 신인왕을 차지하는
김수경이다.
[4]
만약 트레이드 되지 않았다면 현대가 1998년 창단 첫 우승을 한걸 생각해보면 우승맴버가 됐을지도 모른다.
[5]
소속팀 선수의 대학 진학과 관련해 대한야구협회 심판인 심태석에게 뇌물을 주어 입시비리에 연루되어 해임되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러나 그 감독이 가내영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큰데 다른 입시비리 연루 감독들과 달리 1년만에 복귀했기 때문. 참고로 저 심태석 심판의 아들이 바로
심수창. 이 사건의 영향이 있었는지 18연패를 할지언정 꾸준히 로테이션에 기용되던 경쟁력있는 투수였던 심수창은 공교롭게도 2012년 완전히 무너지더니 이듬해인 2013년에는 아예 1군에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6]
태평양 입단 동기인
권준헌, 제물포고 출신이자 과거 KIA 선수였던
유재혁이 코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