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01년 8월 1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웰랜드 운하에서 도개교가 화물선 MS 윈독(MS Windoc)에 부딪힌 사건. 배가 다리에 부딪힌 사고가 아니라 다리가 배에 부딪힌 사고다.2. 배경
2.1. MS 윈독
재화중량톤수 29,050톤, 약 225m길이의 MS 윈독은 1959년 서독에서 건조된 벌크선이었다. 처음 이름은 Rhine Ore였고 1977년, 호수나 강에서 이용되는 화물선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Steelcliff Hall로 바뀌었다가 2001년에 다시 바뀌었다.2.2. 웰랜드 운하
웰랜드 운하는 오대호 중 온타리오호의 포트콜본과 이리호의 포트 웰러를 잇는 운하로, 길이는 약 43km다. 매년 3천대의 화물선이 4천만톤에 달하는 화물을 옮기는 중요한 장소로, 1824년 첫 삽을 떴고 1829년 11월 30일 완공됐다. 디트로이트, 미시간, 클리블랜드, 오하이오 등의 미국 중공업 지역과 온타리오 지역을 몬트리올 항구와 연결시켜 줘서 지역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화물 운반용으로 제작된 운하다 보니 운하의 다리들은 전부 도개교 형태로, 배가 이동할 때 움직이면서 길을 열어준다. 문제를 일으켰던 앨런버그의 11번 다리는 다리의 아치형 구조 위에 달린 컨트롤룸에서 다리를 움직이는 승개교였는데 버튼을 누르면 양 옆에 달린 엔진이 추를 내리고 다리를 끌어올리거나, 추를 올려 다리를 내리는 식이었다. 다리에는 신호등이 달려 있어서 지나가도 될 때는 초록불, 안될 땐 빨간불이 켜졌다. 컨트롤 룸에 있는 관리자와 배의 선원들이 라디오 통신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지나갈 때 선원이 먼저 연락을 하면 다리 측에서 올리고 이후 내리는 식이었다.
3. 사고의 전개
당시 인근 주민 피터 히슬롭(Peter Hyslop)이 촬영한 영상
당시 MS 윈독은 26톤의 곡물을 실고 운하를 따라 올라가는 중이었으며 선원 21명은 선장 켄 스트롱(Ken Strong)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원래대로면 당연하게도 배가 지나가야 하니 11번 도로의 다리도 위로 올라가 통행을 편하게 해줘야 했다. 문제는 당시 다리 관리자가 점심에 진통제와 와인 4잔을 마셔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던 상황이었고 배가 이미 다 지나갔다고 착각해 올려야 할 다리를 내렸다. 윈독에선 다리가 갑자기 내려오는 걸 보고 기겁해서 닻을 내려 배를 멈춰 보려고 했으나 수만톤에 달하는 배는 쉽게 멈추지 못하고 내려오는 다리와 그대로 충돌했다. 다리는 먼저 조타실을 부수고 이후 배의 굴뚝을 부쉈다. 다행히 당시 조타수는 급히 엎드려서 다리를 간신히 피했다. 다리 관리자가 급히 다리를 올렸으나 이미 늦었다.
다리 건너로 간 배는 이미 부서졌고 굴뚝이 무너지면서 연료라인을 건드렸는데 연료가 새어나오면서 엔진열로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배는 그럼에도 기관실이 다 박살난지라 제어가 불가능해 멈추지 않았고 그대로 800m 가량 나아가다 둑에 부딪히면서 1.5m 깊이의 구덩이를 만든 뒤에야 멈췄다. 배가 운하 한가운데에 멈춘 바람에 다른 배 7척의 발이 묶여 버렸다.
선장은 배가 둑에 부딪히고 멈추자 언제 배가 폭발할지 모르니 모든 승선원에게 하선을 명령했다. 화재로 선원 2명이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배는 살리지 못했다. 재산피해는 약 1,000만 달러였다.
4. 사고 이후
배는 폭발하진 않았으나 피해가 너무 컸다. 충돌의 충격으로 윗부분이 다 박살나버린 배는 어쩔수 없이 윗 부분만 스크랩 처리했고 나머지는 바지선으로 재활용했다다리도 부딪히면서 난간이 무너지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 보수공사를 마친 끝에 다리는 11월 16일 다시 개통됐고 사람 대신 기계가 직접 배를 보고 판단해 올리고 내리는 식으로 바뀌었다.
선장 켄 스트롱은 2002년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