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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 알렉스 새먼드, 니콜라 스터전 | |
관련 사건 | 자코바이트, 스코틀랜드 자치운동, 웨스트 로디언 질의, 1979년 자치권 이양 투표, 1997년 자치권 이양 투표,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독립 투표, 여론조사), 영국의 자치권 이양 |
1997 Scottish devolution referendum
1. 개요
토니 블레어 내각이 1997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실시한 두번째 권한 이양 주민 투표. 이전과 달리 조세권한 이양을 묻는 질문이 더해졌다.[3]2. 배경
1979년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에서 총 유권자의 40%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이라는 어이없는 조건으로 자치권 이양이 좌절되는 바람에 보복으로 SNP가 제임스 캘러헌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전원 찬성 투표함으로써 제임스 캘러헌 내각이 실각된다. 이후 들어선 내각은 권한 이양에 반대하는 보수당 내각(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이었다.보수당은 주민투표 이전에 통과했던 1978년 스코틀랜드법 보다 못한 최소한의 권한만 이양해주었고 이에 만족하지 못한 스코틀랜드의 정치인들은 자치권 이양을 요구하는 캠페인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스코틀랜드 입헌 위원회(Scottish Constitutional Convention)가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권리주장이 작성되었다. 같은 해에는 대처 내각이 스코틀랜드에 먼저 인두세를 도입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반감이 극에 달했다.
토니 블레어가 대표로 있었던 노동당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의회(Scottish Parliament)의 신설을 묻는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 실시 공약을 내걸었다. 노동당은 1997년 총선에서 418석을 얻고 토니 블레어 내각이 집권했다.
3. 여론조사
스코틀랜드 의회 신설 | |||||
날짜 | 조사기관 | 찬성 | 반대 | 무응답 | 비고 |
1997년 9월 10일 | ICM/Scotsman | 63% | 25% | 12% | 선거 전날 마지막 여론 조사 |
1997년 9월 8일 | MORI/STV | 67% | 22% | 11% | |
1997년 9월 6일~7일 | System Three/Herald | 61% | 20% | 19% |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
1997년 9월 7일 | NOP/Sunday Times | 63% | 21% | 16% | |
1997년 9월 7일 | ICM/Scotsman | 60% | 25% | 15% | |
1997년 8월 21일~26일 | System Three/Herald | 61% | 23% | 16% | - |
1997년 7월 24일~29일 | System Three/Herald | 65% | 19% | 16% | |
1997년 6월 26일~7월 1일 | System Three/Herald | 68% | 21% | 10% | |
1997년 5월 22일~27일 | System Three/Herald | 64% | 21% | 15% |
조세권 이양 | |||||
날짜 | 조사기관 | 찬성 | 반대 | 무응답 | 비고 |
1997년 9월 10일 | ICM/Scotsman | 48% | 40% | 12% | 선거 전날 마지막 여론 조사 |
1997년 9월 8일 | MORI/STV | 45% | 31% | 24% | |
1997년 9월 6일~7일 | System Three/Herald | 45% | 31% | 24% |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스펜서 사망 |
1997년 9월 7일 | NOP/Sunday Times | 51% | 34% | 15% | |
1997년 9월 7일 | ICM/Scotsman | 45% | 38% | 17% | |
1997년 8월 21일~26일 | System Three/Herald | 47% | 32% | 21% | - |
1997년 7월 24일~29일 | System Three/Herald | 54% | 27% | 18% | |
1997년 6월 26일~7월 1일 | System Three/Herald | 56% | 26% | 18% | |
1997년 5월 22일~27일 | System Three/Herald | 53% | 28% | 19% |
4. 결과
스코틀랜드 의회 신설 | |
찬성 | 반대 |
74.3% | 25.7% |
조세권 이양 | |
찬성 | 반대 |
63.5% | 36.5% |
유권자 투표율 | |
60.4% |
노동당은 이후 꽃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노스이스트 잉글랜드 주민투표가 압도적 반대로 부결되어 향후 주민투표를 통한 잉글랜드 광역 자치의회 설립이 무산되었고 스코틀랜드에서도 미숙한 선거전략으로 인해 좌경화된 SNP가 스코틀랜드의 노동당의 지지층을 대부분 흡수했다. 이 상태에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가 가까스로 부결되고 다음해에 브렉시트 투표가 가결되어 현재 상황에 이른다.
5. 참고 자료
- The path to devolution - Scottish Parliament
- 1997년 총선 - BBC
- 관련 뉴스 페이지 - BBC
- 1997년 스코틀랜드 자치권 이양 주민투표 결과 - BBC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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