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03:17:29

황부인

1. 개요2. 사서3. 연의4. 기타
4.1. 외모 논란
5. 기타 창작물

1. 개요

黃夫人

(? ~ ?)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여성이자 황승언의 딸로 제갈량의 아내. 어머니는 채모의 누이. 학경의 『속후한서』에 따르면 제갈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1] 이름은 불명인데 민간 전승에서는 월영(月英)이라고 한다.

2. 사서

서주에서 형주로 이주해 온 제갈량의 가족은 형주의 토착민이 아니었음에도 혼인으로 맺어진 강력한 인맥빨을 갖추게 되었다. 우선 제갈량의 큰누나 괴기와 결혼했다.[2] 참고로 괴기의 집안은 괴월, 괴량의 집안으로 양양의 명문가였다. 제갈량의 작은누나는 양양의 명사 방덕공의 아들 방산민과 결혼했다.[3]

한편 채모의 집안은 형주의 유력 호족으로 무척이나 번성했다. 채모의 고모는 태위 장온과 결혼했고 채모의 큰누나는 황승언과 결혼했으며, 채모의 작은누나 채부인 유표와 결혼했다.[4] 황승언의 작은딸은 채모의 의붓조카 유종과 결혼했으니 만약 제갈량이 황승언의 딸과 결혼한다면 명사 황승언의 집안, 형주의 유력 호족 채모의 집안과 동시에 인맥을 걸치게 된다.[5]

황승언의 딸 황부인은 부모님까지 인정한 추녀였지만, 제갈량은 황부인의 외모에 상관하지 않고 그녀의 재능에 반해 결혼했다.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제갈량은 이 결혼을 통해 엄청난 인맥을 얻었다.
황승언은 고상(高爽)하고 개열(開列)하여 면남(沔南)의 명사였다. 제갈공명에게 말했다.
"그대가 부인을 고른다고 들었소. 내게 못난 딸이 있는데, 노란 머리에 얼굴이 검지만 그 재주가 서로 배필이 될 만하오."
공명이 허락하자 곧 그녀를 실어 보냈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웃음거리로 삼고 향리인들이 속어를 지어 말했다.
"공명이 부인 고르는 것은 배우지 마라. 아승(阿承)의 못난 딸을 얻으리라."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주석 양양기

계해우형지(桂海虞衡志)에 따르면 제갈량의 집에 갑자기 손님이 들이닥쳐도 황부인은 초고속으로 요리를 준비해 왔고, 제갈량이 이를 궁금해해서 주방을 들여다봤더니 황부인의 목각 자동인형들이 일하고 있었다. 제갈량이 만든 목우유마는 황부인이 전수한 것이다.[6]
면남 사람이 대대로 전하길: 제갈공(제갈량)이 융중에 살 때, 손님의 도달이 있어 아내 황씨에게 국수를 갖추길 부탁하니 잠깐에 국수가 이르렀다. 무후(제갈량)가 그 속도를 괴이해하여 후에 몰래 그것을 엿보니, 몇 나무인형들이 나는 듯이 보리를 자르고 맷돌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마침내 그 아내에게 절하며 이 재주를 전수하길 청하니, 후에 그 제조를 변경해 목우유마를 만들었다.
沔南人相傳:諸葛公居隆中時,有客至,屬妻黃氏具麵,頃之麵至。侯怪其速,後潛窺之,見數木人斫麥,運磨如飛。遂拜其妻,求傳是術,後變其制爲木牛流馬。
제갈충무후문집 인용 계해우형지

제갈량은 늦도록 아들이 없어서 형 제갈근의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입양했지만 제갈교는 요절했다. 학경 속후한서 제갈첨전에 따르면 황부인이 이후 제갈첨을 낳았다고 한다.[7]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살아있을 때는 전혀 등장하지 않고 백성들이 황부인의 외모를 놀리는 노래에서 언급만 되다가 최후반부에서야 제갈첨이 등장하면서 제갈첨의 어머니로 황부인이 소개된다.

황부인은 못생겼지만 천문, 지리, 병법에 능했고, 제갈량이 남양에 있을 때 황부인의 재능을 듣고 결혼했다. 제갈량의 학문을 도왔고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하자 그 뒤를 따르는 듯이 죽으면서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4. 기타

중국 오장원에 있는 제갈량묘(諸葛亮廟)에는 황부인을 모시는 사당인 월영전(月英殿)도 있다. 출처 사당의 명칭이 월영전(月英殿)인 이유는 중국의 민간 전승에서 황부인의 이름을 월영(月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예문류취(藝文類聚)의 제갈량이 이엄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나는 80만 곡(斛)의 녹을 받았으나, 지금 모아놓은 재산은 남은 것이 없고 첩은 여벌의 옷이 없소.(吾受賜八十萬斛,今蓄財無餘,妾無副服.)'라는 기록이 나온다. '첩(妾)'은 말 그대로 첩실을 말하기도 하지만 본처를 겸손하게 부르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제갈랑이 따로 첩을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단 전승에 따르면 제갈량이 황부인 외의 다른 여자를 두지 않았다고 한다.

4.1. 외모 논란

외모에 관한 논란이 가장 유명하다. 역사 기록에 인물의 외모 묘사가 기록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황부인은 외모가 특이하다고 직접 적혀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머리카락이 누렇고 피부가 검은 인물이라고 했는데 정말 이 묘사가 정확하다면 일반적인 순혈 중국인으로는 보긴 힘들고 인도아리아계 혼혈일 가능성도 있다. 군웅할거의 난세가 벌어지기 100년 전부터 한나라는 서역길을 개척해 실크로드를 통해서 외국과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국적 외모의 혼혈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실제로 뒤이은 오호십육국시대에는 금발에 푸른눈을 가졌다는 이민족 계통의 황제가 나타나기도 하며, 선비족이나 황두 실위 등 이국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기록된 이민족들이 대거 등장한다. 본격적인 침투왕조 시대가 시작되기 전인 한나라 시절부터 교류는 하고 있었으므로, 이민족 혼혈이 중국사에 등장하는 게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황승언의 정실은 채씨가 맞지만 이 채씨가 황부인의 생모라는 기록이나 형주 채씨가 외국계라는 기록은 없다. 그래서 첩실이 낳았거나 입양한 딸이 아니냐는 말도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냥 피부가 어두웠고 머리색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밝고 예쁜 금발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좀 보기에 지저분한 색이었을 것이라는 설이다. 물론 격세 유전 등 여러가지 가능성은 있지만 상식적으로 당시 형주라는 넓은 땅의 최유력 가문인 채씨 일족과 혼맥으로 연결될 정도의 집안에서 과거 이민족과 통혼, 그것도 정실로 받은 재미난 스토리가[8] 중국의 슈퍼스타가 되는 제갈량과 얽혔는데도 구전하는 이야기거리로 전해지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가 않다. 형주가 그렇게 실크로드와 가까운 땅도 아니고. 색 표현을 적백흑청황 오색 안에서 표현하기 좋아하는 중국인들 특성상 그냥 지저분한 갈색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색깔 묘사를 하지 않고 노랗다고 뭉개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황부인은 사서에 분명히 용모가 추하다는 기록은 있는데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달랑 머리가 노랗고 피부가 검다는 말뿐이니 '보편적인 한족 외모와 다를 뿐 현대 기준의 외모는 아름답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여지가 남아서 미인설이 돌기도 한다. 만약 현대적 관점에서도 미인의 기준에 쉽게 들어가지 않는 "피부가 곰보 같다", "살이 지나치게 쩠다", "눈이 사시다" 같은 류의 언급이 있었다면 이러한 상상의 영역도 적었겠지만 현대 기준으로 미적 판별의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노란 머리와 검은 피부색만 언급되어 있다 보니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9]

당시 여성의 미적 기준은 희고 고운 피부 머리가 검고, 발이 작고, 몸매는 마르고 가냘픈 전형적인 황인계 미인상이었다. 따라서 황월영이 정말 금발에 피부가 검었다면 말할 것 없이 추녀로 평가됐을 것이다. 현대의 미의 기준은 당시와는 다르기 때문에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아름다워 보이는 용모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서 삼국지를 주제로 하는 문화 매체에서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이국적으로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 검다'고 묘사되긴 하지만 정말 흑인일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인도계 또는 아랍계 미인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0] 대표적으로 액션 게임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 이쪽을 채택하는데 매 시리즈마다 적갈색 머리+크고 또렷한 회색 눈+이마의 빈디로 서구적인 느낌과 인도계의 느낌을 동시에 내고 있다. 다만 검은 피부에 금발은 아니라 온전히 원전을 따라간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그런 모습은 아예 이국적 정글 컨셉인 남만의 축융이 선점했기 때문인 듯하다.

'황부인이 본래는 전형적인 한족 미인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추녀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구전도 존재한다. 중상모략으로 못생겼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널리 퍼진 것은 아니고, 대체로 황부인 본인 혹은 그 부친 황승언이 의도적으로 추녀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혹은 추해 보이는 모습으로 꾸몄다는 구전이 많다. 대단한 미인이라 보는 사람마다 반해 버려서 일부러 헛소문을 냈는데 제갈량이 이에 개의치 않고 만났다거나, 얼굴에 진흙을 묻히고 다니며 검은 피부를 꾸미고 저녁에 제갈량에게만 본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줬다거나, 혹은 딸이 권력자의 노리개로 끌려갈까 우려한 황승언이[11] 일부러 추해 보이도록 꾸미게 했다거나. 반삼국지가 이쪽을 채택했고 진삼국무쌍 시리즈 동일 제작사 작품인 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오랫동안 '사실은 미인이지만 일부러 못생겼다는 소문을 냈다'는 설정을 밀다가 삼국지 12부터는 전자의 '인도풍/서구적 미인설'에 맞춘 듯한 일러스트도 내놓았다. 공명의 아내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비틀어서 '풍성한 붉은 곱슬머리+얼핏 보면 남자애 같은 작은 체구+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음+학문과 기계를 좋아하는 괴짜스러운 면모+황씨 집안의 권세에 빌붙으려고 혼담을 넣는 남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쓴 괴상한 가면'이 콤보로 시너지 효과를 내어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현대의 미적 기준으로 보아도 말 그대로 추녀일 가능성도 있다. 마등은 아버지가 강족 여인과 결혼했다는 명확한 근거에 이어서 대놓고 흰 피부에 얼굴과 코가 잘생겼다고 말해진다. 즉 일반적인 중국인의 얼굴과 달라도 괜찮은 얼굴이라면 그 시대 사람들도 잘생겼다고 한다는 것이다. 머리칼이 누렇고 피부가 검다는 것은 그냥 머릿결과 피부가 안 좋다는 표현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12] 애초에 대놓고 동네에서 얼굴이 못났다고 말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인도 스타일의 금발미녀였을 가능성은 별로 안 높은 것이다. 황부인의 부모인 황승언이나 채씨가 외국계라는 기록도 없고, 조상 중에 외국계가 있었다는 사료도 없다. 황부인이 미녀일지도 모른다는 설은 진지한 고찰이라기보단 이왕이면 미인으로 묘사하는 게 반응이 좋으니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미인으로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 삼국지 최고의 인기 등장인물인 제갈량의 부인이기도 하기에 더 그렇기도 하다. 즉 미인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 이다. 옛말에 이왕이면 다홍치마 처럼 말이다.

5.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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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학경의 『속후한서』는 천년 뒤 원나라에서 나온 기록이라 신빙성은 불명이다. [2] 출처: 양양기구기. [3] 출처: 양양기구기 방덕공전. [4] 출처: 양양기구기 채모전. [5] 곡량(谷亮), 진청(陳靑) 등의 역사학자들은 제갈량이 이 인맥을 얻기 위해 황부인과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출처 [6] 출처: 제갈충무후문집 인용 계해우형지. [7] 그러나 해당 서적은 원나라 때의 기록이라서 신빙성이 확실하지 않다. [8] 얼자 같은 것이었다면 그 피가 정식 후계자가 못 되니까. [9] 물론 현대의 동아시아에서도 희고 고운 피부를 선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다른 인종과의 혼혈이라면 더 그렇다. 황부인도 머리색 언급 때문에 혼혈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10] 황부인을 다룬 캐릭터는 아니지만 요리왕 비룡에 나오는 뒷요리계의 미라를 생각하면 된다. [11] 채씨 집안과 혼맥을 맺을 정도인데 당시 형주에서 이럴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12] 흑단처럼 까만 머릿결이 중요한 미인의 기준으로 오랫동안 여겨졌고 여자들도 오랜 시간 동안 매우 신경을 썼다는 것은, 역으로 이게 어렵고 이 비율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현대는 머리카락 미용 기술과 염색약 등의 발전으로 남자들이 잘 체감을 못하는데 동양인은 흑히 다들 그냥 예쁜 까만 머리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