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0 03:40:19

화시촌


1. 개요2. 상세3. 파산 위기

1. 개요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에 위치한 마을. 부촌으로 유명하며 천하제일촌(天下第一村)이라는 별칭도 있다.

2. 상세

원래 특출한 마을이 아니었지만 우런바오 화시촌 서기(1928~2013)가 화시촌 촌장으로 부임하면서 농사만 지어서는 벌 수 있는 돈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주민들을 설득해 인민공장을 설립하여 돈을 벌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또다른 공장을 설립한 것이 마을의 시초로, 공동으로 야금공장 등 수익사업을 비밀리에 벌였고[1], 암시장에 내다팔며 야금야금 수익을 벌기도 했다. 그러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사업확장 및 선점을 하면서 대박을 쳤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며 큰 수익을 창출했는데, 마을을 공동 경영하는 향진기업인 화시그룹으로 키웠다. 화시그룹은 1999년에 선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으며 주민들도 중국 농민 평균소득의 수십배에 달하는 돈을 배당금으로 받으며 잘 살았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지역주민들은 유럽풍 2~3층짜리 단독주택에서 살았고 회사로부터 고급 외제 승용차를 선물 받아서 집집마다 2대씩은 보유하고 다녔으며, 의료와 교육도 화시그룹에서 모두 책임졌기 때문에 노후 걱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부럽다 다만 자동차와 주택은 명목상으로는 개인의 재산이 아닌 화시촌의 재산으로 등륵되어있기 때문에 화시촌을 떠난다면 다시 되돌려줘야 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융합한 ‘중국식 공동체 마을’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혀 왔다. 장쩌민, 리펑, 후진타오, 시진핑 등 많은 고위급 인사들도 모범사례라면서 화시촌에 시찰을 나갔고 여러 지방 시골에서도 화시촌을 모범으로 삼자며 시찰이나 관광 오는 경우도 많아서 한때는 연 관광객 300만명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다만 화시그룹이 번창하면서 주변지역 발전을 목적으로 근교 마을들을 화시촌에 편입시켜 놓았는데, 이 신 화시촌 주민들은 원주민들에 비해 낮은 배당금 및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배당금 및 복지 관련한 문제로 원주민 및 화시촌 당국과 갈등을 빚는 등 마냥 무릉도원인 동네는 아니었다. 그래도 신주민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는데, 여느 중국의 잘 사는 지역과 마찬가지로 타 지방에서 온 노동자들은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받고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3. 파산 위기

그렇게 잘 나가던 마을이지만 2010년대 들어 철강과 해운업이 위기를 맞으며 공장 상당수를 정리했으며, 그 대안으로 뛰어든 부동산과 금융업도 그리 시원치 않은 데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주력했던 관광업도 중국 주요도시에 마천루가 잇따라 들어서며 시들해졌다. 기초산업이 부실해지면서 결국 부채 증가로 파산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마을이 공동 경영하는 것도 문제로 제시되는데, 개인의 부채도 집체의 부채로 이전돼 경영이 방만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시촌 일부 자녀들은 해외 유학까지도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 공동 재산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부동산 차량 등은 공동 소유하면서 제대로 된 재정관리, 인사관리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2016년 기준 화시그룹의 총 부채는 300억위안(약 5조2000억원)을 넘었다. 뉴욕타임즈 역시 화시그룹의 성장이 지방정부의 저금리 대출에 의존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며, 67%에 달하는 높은 부채비율을 지적하였다.
[1] 마오쩌둥 시절은 광기로 물든 시기였기에 대놓고 공장을 돌리면 자본주의가 우파 반동으로 몰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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