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3월 6일 ~ 1980년 5월 23일[1] (향년 75세)
1. 개요
대한민국의 미술사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토홍계)[2], 호는 연재(然齋).병자호란 때 삼학사 중 한 명인 홍익한(洪翼漢, 1586. 11. 22 ~ 1637. 3. 5)[3]의 11대손이며, 독립유공자 홍사구는 그의 8촌 삼종형(三從兄)이다.[4]
2. 생애
1905년 3월 6일 한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홍난유(洪蘭裕, 1856. 1. 29 ~ 1912. 12. 16)와 어머니 한산 이씨(1870. 4. 7 ~ 1946. 12. 24)[5]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6] 아버지 홍난유는 1901년 1월 24일 혜릉(惠陵) 참봉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1901년 3월 6일 수릉(綏陵) 참봉, 1901년 7월 22일 시강원 시종관(侍講院侍從官), 1903년 12월 20일 당진군수에 임명되었다. 이후 1905년 10월 19일 광주군수에 임명된 뒤 1910년 2월 27일 공립 광주보통학교장을 겸임하다가 1912년 12월 16일 별세했다.1912년 12월 16일 아버지 홍난유가 별세하자, 곧 외가가 있던 충청남도 서천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이후 다시 상경해 1927년 중동학교를 졸업하고 양현여학교(養賢女學校)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32년 양현여학교가 재정난으로 폐교된 뒤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중 마침 부여군청의 고적 보존업무를 맡게 되었고, 이곳에서 8.15 광복까지 근무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13일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의 초대 관장에 임명되었고, 부여군에 본적을 두었다. 이듬해인 1946년 봄에는 분관 정문을 이전하고 분관 구내에 있던 석조 유물을 정비했으며, 기와를 교체하고 나무를 심는 등 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단장하는 작업을 진행해 1만여 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또한 재직 중이던 1948년 부여군 부여면(現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도로변에서 부여 사택지적비를 발견했고, 1959년에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의 존재를 확인했다.
1961년부터 1963년까지는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의 제4대 관장을 역임했고, 이 기간 첨성대와 성덕대왕신종을 실측했다. 1963년 다시 국립박물관 부여분관장으로 복귀했으며, 부여군 청년들을 모아 '다운회'[7]를 결성하고 백제 관련 연구를 지속해 나가고자 했다. 1966년 3월 6일 정년퇴임 했고, 이때 권오병 당시 문교부 장관으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후에는 문화재관리위원회 전문위원에 위촉되었고, 1968년 2월 17일 미술사학회[8]가 발족되자 김원용· 최순우 등과 함께 운영위원에 선임되었다. 1968년 말 한국일보사에서 주관한 신라삼산조사단에 이기백 등과 함께 단원으로 참여해 영천 청제비를 발견했고, 1970년에는 전라북도 익산군에 있는 왕궁리 유적을 발견해 경내에 있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조사했다.
1980년 5월 23일 새벽 3시 30분에 충청남도 대전시(現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차남 홍재선(洪再善, 1946. 12. 20 ~ )은 부여고등학교 등지에서 중등교사로 근무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백제 문화 연구에 종사했으며, 1981년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 百濟 泗비城 硏究 : 遺物, 遺蹟을 中心으로(백제 사비성 연구 : 유물, 유적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
음력 4월 10일.
[2]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26세 사(思) 항렬.
[3]
초명 홍습(洪霫).
[4]
두 사람은 족보상으로는 26촌 지간이나, 홍사준의 증조부 홍재순(洪載順, 초명 홍완(洪玩) 또는 홍훈(洪坃), 1815. 1. 25 ~ 1895. 1. 14)과 홍사구의 증조부 홍재면(洪載勉, 초명 홍채(洪埰), 1818. 3. 26 ~ 1886. 6. 25)은 본래 친형제지간이었다.
[5]
이승덕(李承悳)의 딸이다.
[6]
1978년 10월 15일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홍사준을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7]
백제사적연구회의 전신
[8]
전형필,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考古美術)》이란 동인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의 전신으로 고고미술동인회는 한국 최초의 미술사학회이다. 한국미술사학회 홈페이지 주소: https://korea-art.or.kr/main/ko/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