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동성사회성( 同 性 社 會 性, 영:homosocial)이란, 여성학에서, 남성들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유지된다고 상정되는 동성 간의 연대적 관계를 말한다. 음차하여 호모소셜이라고 하거나, 페니스 카르텔(Penis cartel)이라 부르기도 한다.구체적으로 그 용어가 제안된 것은 서구의 페미니스트 이브 세지윅(E.K.Sedgwick)의 《Between Men》 에 의해서이며, 이것이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유명 페미니스트 논객 우에노 치즈코의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저작을 통해 한일 양국에 수입되었다.
2. 설명
2.1. 남성 경제와 여성거래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 외에도 남성이 남성을 대하는 태도에도 주목해 왔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남성들은 동료 남성들에게서 종종 "같은 남자끼리인데 뭐 어떠냐?", "남자 대 남자로서 서로 그러면 안 된다", "당신도 남자(군필)인 이상 알지 않느냐" 등의 포섭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2) 남성 비밀결사는 종종 "brotherhood" 를 구호로 삼는다. 3) 이들은 여성을 공공의 적으로 손쉽게 설정함으로써 남성들의 이해관계가 공유되게 하면서도, "OO한 남성들은 ××한 남성의 적" 이라는 식의 구도는 상정하길 회피한다. 종합하여,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연대적 관계 속에서 여성들이 배제되고 거부당해 왔다고 인식해 왔다.우선적으로 언급할 만한 것은 이를 "남성 간의 거래적 관계" 로서 인식하는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명 남성 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페미니즘 이론가로 유명한 뤼스 이리가레(L.Irigaray)는 《여자들의 시장》 및 《 하나이지 않은 성》 에서 남성경제의 존재를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 간 관계가 본질적으로는 동성애적 욕망의 관계에 입각한 것으로서, 남성들은 서로 간에 여성을 거래하는 관계를 유지시킨다고 보았다. 여기서 교환물로서의 여성의 가치는 남성들의 욕망이 그 여성에게 얼마나 투영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BDSM에 대한 통찰을 통해 퀴어학에도 큰 기여를 한 바 있는 게일 루빈(G.Rubin)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받아, 《여성 거래》 및 《일탈》 에서 원시사회 남성 집단들 간의 호혜적 협동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물을 교환하는 것 중에는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지적하고, 이것이 현대에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정착되었다고 설명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는 이유는 여성의 가치가 거래의 용도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2.2. 동성사회성과 여성혐오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남성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 남자를 남성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남자들이며 남자가 남성이 되었음을 승인하는 것도 다른 남자들이다. 여자는 기껏해야 남자가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 혹은 남성됨의 증명으로 부여되거나 쫓아오는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은 남자이며 여성됨을 증명하는 것도 남자들이다.
- 우에노 치즈코,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p.288
- 우에노 치즈코,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p.288
페미니스트 이브 세지윅은 자신의 저서 《Between Men》 을 통하여 상기된 이리가레의 주장에 반대했다. 그에 따르면, 남성들이 동성 간의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은 동성애적인 경향과는 확연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세지윅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여, 남성들은 서로간에 성적인 욕망을 투사하는 동성애적(homosexual)인 관계 이외에도 서로를 닮고 싶어하는 동성사회적(homosocial)인 관계 역시 형성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남성들은 함께 모여 있는 동안 전자의 욕망을 억압하고, 후자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상기된 것과 같은 여성거래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남성들은 음담패설과 같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남성성을 확인하고자 하며, 자신이야말로 진짜 남자다운 남자임을 승인하고 인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그저 얘깃거리, 관심거리, 욕망의 대상, 타자화된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세지윅은 남성들이 동성사회성을 유지시키는 수단으로서 여성을 멸시하는 경향을 여성혐오(misogyny)라고 불렀다.
세지윅의 이론을 일본 사회 분석을 위하여 들여온 우에노 치즈코는 자신의 저서 《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에서, 이상의 여성혐오의 양상이 일본 사회 속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고 고발했다. 즉 일본 즉 남성들은 자신이 남자다운 남자임을 동료 남성들에게 확인받기 위하여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우에노는 이론을 조금 더 명료화하기 위해, 세지윅이 가능성을 열어 두었던 "여성 간의 동성사회성" 에 대해서 그것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에이드리언 리치(A.Rich)의 관점을 따라서, 세지윅은 여성의 동성사회성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동성애와 동성사회성이 섞인 "레즈비언 연속체"(lesbian continuum)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었지만, 우에노는 여성에게 젠더 권력이 희박한 현실을 고려하면 여성들의 동성사회성은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했다. 우에노에 따르면, 오히려 여성들은 동료 여성의 평가와 인정에 신경쓰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남성들의 평가와 인정에 더 크게 경도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주류 여성계 인사인 서울시립대학교 이현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 에서 다시금 우에노의 관점을 비판했다. 우에노는 동성사회성이 형성하는 여성혐오의 사회적 압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것을 전복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적 기획이 나타날 수 있음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즉, 이현재(2016)는 비체(아브젝트; abject)-되기의 실천을 통해서 여성들이 남성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자신들의 타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우에노의 동성사회성에 대한 설명은 여성혐오가 전복될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동성사회성에 대한 논의는 성적 주체가 되기 위한 개인은 반드시 타인을 성적 객체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인 양 전제하는데, 이 역시 비체-되기와 같은 방법을 생각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3. 남성 이권 카르텔이 아니다
"촉망받는 남성이라면 성범죄자가 되더라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인류가 힘써준다. 태어남과 동시에 무료 자동가입된
남성연대에서 온 힘을 다해 도와주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 해도 걱정 없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면 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주문과도 같은 말을 중얼거리기만 하면 눈앞에 어느새 남성연대가 나타나 있을 것이다."
- 은하선, 한겨레 기고문 中 #
- 은하선, 한겨레 기고문 中 #
상단의 은하선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동성사회성을 남성들이 특권적으로 누릴 수 있는 상부상조형 공동체로서 이해한다. 이 덕분에 남성들이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에는 여성들보다 더 많은 사적 조력을 받게 되고, 남성들이 경제적 혹은 사회적으로 추락할 때에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추락하지 않도록 하는 유리바닥(glass floor)과 같은 안전망의 도움을 누린다는 것이다. 위에 인용된 어록에서 보여주듯이, 이 페미니스트들은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단지 남성이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온 힘을 다해' 돕는 경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우선 살펴볼 문헌의 저자로서, 미국의 레즈비언 노라 빈센트(N.Vincent)는 어릴 때부터 줄곧 남성성이 강한 여자아이였으며,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아 남성 권력을 늘 비판하고 여성이 남성들에게 억압 받고 있다고 주장해 왔던 저널리스트였다. 그녀는 남성들의 "자유롭고", "당당하고", "무한한 특권을 누리며", "온갖 혜택을 받는" 삶을 간접적으로 만끽하기 위해서 남장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이름도 네드 빈센트라는 가명을 쓰고,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과 헬스, 심지어 사타구니에 인공 페니스까지 착용해 가면서 완벽한 남성으로 548일의 시간을 보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나온 책이 바로 《 548일 남장 체험》. 그러나 실제로 빈센트가 목격한 남성들의 세상은 딴판이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남성 기득권이랄 게 없었던 것이다. 남성들은 자기들끼리만 자원을 독차지하고, 서로가 서로를 눈물겹게(?) 지켜주고 무조건 편들어 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어디에도 없었던 것. 남성들의 세계에서 남성들은 수많은 상처를 입고 살아가고 있었으며 냉혹한 경쟁에 시달렸고,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어떤 보상도 자원도 약속 받지 못하는 처지였다. 여성들이 '동성사회성' 을 생각할 때 흔히 짐작하는 ' 카르텔' 적인 우애적 유대의 공동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회심리학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F.Baumeister)는 자신의 저서 《 소모되는 남자》 에서 노라 빈센트를 인용하며, 그녀가 겪었던 혼란에 대해 설명을 시도했다. 진화적으로 볼 때, 남성들은 주체성(agency)이라고 불리는 성격적인 특성들을 바탕으로 대규모의 수직적인 협동적 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성들은 공동성(communion)이라고 불리는 성격적인 특성들을 바탕으로 소규모의 친밀하고 수평적이며 상호간에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원과 유대감을 나누는 소집단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바우마이스터는 여성들이 이해하는 사회생활과 남성들이 이해하는 사회생활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남성중심적 기업문화 등에 여성들이 진출할 때 큰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철저한 실력주의가 작동하는 남성 사회에서는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때 남성들 사이에 배타적인 '카르텔' 이 작동하고 있다고 잘못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이후 국내의 사회평론가 박가분 씨는 《 포비아 페미니즘》 에서 이 점을 들어서, 남성들이 호모소셜한 연대를 통해서 체계적으로 여성들의 진출을 저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 음모론적인 사고방식" 이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이상의 두 흐름을 되새겨 볼 때,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가해자 vs. 여성 피해자" 구도를 확립하기 위해서 남성 이권을 위한 가상의 카르텔을 상정하고 있었던 것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리얼뉴스 보도기사 바우마이스터 역시 《Professing Feminism》 이라는 도서를 인용하면서, 페미니즘 학술계가 학문적인 탐구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운동가들만을 양성하기 위하여 편협하고 이념에 함몰된 기관이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실제로 일각에서 의심하곤 하는 '남성 이권을 무조건적으로 챙겨 주는 남성들 간의 눈물겨운(?) 연대' 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우에노 치즈코가 상정하는 동성사회성은 이미 그 논리 내부에 남성들 간의 경쟁과 적자생존의 현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노는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 남성들이 스스로의 남성성을 과시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여성들이 타자화되는 처지에 놓인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집단강간을 하는 남성들은 서로의 성욕을 무조건적으로 챙겨 주는 돌봄의 공동체(?)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발기하지 않으면 동료들로부터 남자도 아닌 놈이라고 모욕을 듣고 구박 받게 될 것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강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동성사회성이라고 불릴 만한 무언가가 남성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지만, 흔한 래디컬 페미니즘 세력이 남성층 전반을 규탄(…)하기 위해 별 고민 없이 동원하는 '전쟁터' 의 수사는 적합한 비유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 대해서는 빈센트의 경험이나 바우마이스터의 지적이 온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에노가 지적했던 "남성을 남성으로서 인정하기 위한 남성들 사이의 경쟁적 관계" 를 동성사회성으로 본다면, 그리고 그 남성성을 인정 받기 위해 남성들이 실제로 여성을 타자화하고 상품화하는 전략을 취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이현재(2016)의 작업에서 보듯이 남성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서 그것의 기능과 의미를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을 인정해 줄 경쟁자는 오직 남성뿐이다" 라는 우에노의 시각은, 남성 간에는 무조건적 지지보다는 냉정한 경쟁이 빈번하다는 심리학의 발견을 포괄할 수 있으며, 여성은 남성을 인정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인정 받은 남성에게 주어지는 포상과도 같다는 남성거래 이론의 탐구까지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성사회성이 흔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게으르게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 미묘한 문제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이 동성사회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가, 어떻게 변동 가능하고 언제 흔들리는가에 대한 건설적 방향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사회과학의 이론들이 통합되고 발전해 가는 방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