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0:29:27

헨리 녹스

초대 미합중국 육군 선임장교
헨리 녹스
Henry Kn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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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750년 7월 25일
매사추세츠 만 직할 식민지 보스턴
사망 1806년 10월 25일 (향년 56세)
미국 매사추세츠주 메인구역 토머스빌[1]
복무 영국군
대륙군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대륙군 소장
복무 기간 1745~1769(영국군)
1775~1783(대륙군)
학력 보스턴 라틴 스쿨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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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보스턴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조선업이 파산하자 신트외스트티위스섬으로 도주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보스턴 라틴 스쿨을 졸업하고 12세부터 어머니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사무 보조원으로 일했다. 한편 보스턴 거리의 갱들과 관계를 맺고, 주변에서 가장 거친 싸움꾼이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서점을 차리고 군사학, 특히 포술을 독학으로 배웠다. 이후 1749년 영국군에 입대해 1769년까지 복무했다.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인해 식민지와 본토와의 갈등이 첨예화 되자 자유의 아들들을 지지했고 1772년 대륙군에 입대해 1775년 아르테마스 워드의 지휘아래 매사추세츠 찰스타운인근에서 벌여진 벙커힐 전투에 정찰병으로 참가해 공을 세웠다. 이 당시 조지 워싱턴과 사적으로 친해지게 된다.

1776년 3월 뉴욕의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점령하고 보스턴을 포위할때 요새에서 획득한 화포를 보스턴으로 옮길것을 제안했고 이에 워싱턴은 녹스를 대령으로 파격승진해주고 허드슨 강을 거쳐 올버니, 우스터를 거쳐 59문의 화포를 56일만에 옮겼고 보스턴을 점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재공격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트렌턴 전투당시 델라웨어강을 한밤중에 도하해 트렌턴을 점령했다. 이 공으로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후에도 독립전쟁의 주요 전투에 참가했으며 대륙군이 쓰는 화포를 개량하고 탄환을 보급하기 위해 스프링필드 조병창을 설립했으며 포병을 양성했다. 요크타운 전투후 소장으로 진급했다.

1783년 신시내티 협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또한 영국군이 철수한 뉴욕에서 대륙군을 이끌었다. 사령관 워싱턴의 퇴역 후 대륙군 선임장교로 임명되었다.

이후 워싱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미합중국 육군의 선임장교로 임명되었다. 해군 상비군 창설을 추진하여 총괄하고 미국 원주민 정책, 국내의 군 계획, 그리고 대서양 연안의 요새 시설 강화를 관리했다. 녹스는 또한 주요 군수 시설의 하나인 스프링필드 무기 제조창을 포괄적으로 감독했다. 1791년에는 녹스의 상세한 제안에 따라 미국 의회가 미국 군단을 창설했다.

1794년 12월 31일, 녹스는 가족을 돌보는데 전념하기 위해 육군 장관을 사임했다. 은퇴 후 메인구역에서 낙농과 조선에 종사했다. 녹스는 국무장관을 물러났지만, 매사추세츠 의회 하원 의원을 지냈다. 1806년 친구의 집을 방문해 닭을 먹다가 잘못 삼킨 닭뼈가 장에 박혀 복막염을 일으켜 사망했다.

3. 여담

  • 여러 건국 영웅들이 그렇듯이 미국의 지역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대표적인 이름이 테네시주에 있는 녹스빌이 있으며 켄터키주에 있는 미 육군 기지 포트 녹스도 그의 이름에서 땄다.
  • 상당한 비만이였다. 절친이자 상관인 워싱턴도 이 부분으로 녹스를 놀린 적이 있다.


[1] 현재는 메인주에 속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