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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한의사이자 방송인 장영란의 배우자에 대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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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동음이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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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사업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 제조 이력 기준. (해체가 아닌 철수의 경우 가능한 당시 로고로 기입) |
<colbgcolor=#0275d8><colcolor=#ffffff> 한창 韓昌 HANCHANG |
|
정식명 | 주식회사 한창 |
한문명 | 株式會社 韓昌 |
영문명 | Hanchang Co., Ltd.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대표 | 최승환 |
설립일 |
1962년
5월 2일최초 법인 1967년 7월 10일후설 법인 |
본사 |
부산광역시
연제구 중앙대로 1043번길 50, 4층 (연산동) |
사원 수 | 26명[1] |
유형 | 중견기업 |
업종 |
통신 방송장비 및 부품 도매업 CDMA 단말기 생산업[2] |
계열사 |
(주)한창이피엠 (주)한창해운 (주)한창마린 (주)한창바이오텍 (주)한창이엠에스 (주)한창엔지니어링 (주)에이치제이에프앤아이 (주)에이치씨알 (주)지유온 (주)한연개발 (주)한주케미칼 |
홈페이지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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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lbgcolor=#0275d8><colcolor=#ffffff> |
한창에서 1995년 출시한 휴대폰인 워킹폰 |
대한민국의 옛 통신장비 및 전자기기, 휴대폰 제조업체.
2. 시작과 전성기
1962년 5월 창립되어 각종 통신장비 및 전자기기를 생산해왔으며 1980년대부터 휴대폰 생산을 시작했다.한창은 과거 "한창 탑폰"과 "HDT-110"등의 휴대전화로 잘나가며 거래소까지 상장되었던 기업이었으나, 지속적인 시티폰 사업의 실패로 인해 1998년 워크아웃에 돌입하였다. 이후 2004년 5월 한국기술투자가 지분 및 전환사채를 인수하여 겨우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곧 한창은 한주케미컬컨소시엄이 한국기술투자의 지분 49.7%를 인수하며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하였고 같은해 11월 9일에 최승환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하였다.
최승환 한창 사장은 2006년 당시의 인터뷰에서 일주일간 중국의 광저우, 후이저우, 선전 등을 다녀온 후 "이미 단순 제조는 중국업체들이 한국을 거의 따라왔다. 단순 임가공만으로는 한국 업체들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앞으로는 원자재를 공급받아 휴대폰을 제조하는 전자제조서비스(EMS)에서 벗어나겠다"라고 언급하며 국내 최대의 휴대폰 OEM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선포했다. 링크
이때 팬택&큐리텔과 대만의 바콤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연간 400만대 가량의 휴대전화를 생산하였는데, 2006년 11월 28일부로 갑자기 팬택계열과의 모든 거래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인해 매출 감소폭이 커졌는데, 정작 한창은 "팬택계열과의 거래 중단으로 한창의 매출 감소폭이 크겠지만, 수익성은 개선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3. 세원텔레콤 인수협상
2005년 12월 23일, 한창은 LCF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당시 법정관리중이던 휴대전화 제조사 세원텔레콤을 212억 5천만원에 인수하기로 하였다. 본래 450억원에 매각될 예정이었으나, 매각작업이 계속해서 지연되는 바람에 가치가 212억원으로 떨어진 것이다.세원텔레콤은 닝보버드와 LG텔레콤에 휴대전화를 주로 납품하던 기업으로, 국내에서는 세원 SWC-2001W 등의 보급형 제품과 더불어 카이 코코, 카이 코스모, 카이 홀맨폰 등의 카이 브랜드 시리즈 휴대폰 제조사로도 매우 유명했다.
세원텔레콤이 국내 최초의 통신기기 전문업체인 휴대폰 제조기업 맥슨전자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창 - 세원텔레콤 - 맥슨전자의 지배구조가 형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끝내 인수협상이 결렬되어 한창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