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 Muhammad Fuad Stephens
1920년 9월 14일 ~ 1976년 6월 6일
사바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사바의 초대 및 제5대 총리와 제3대 총독을 지냈다.
1. 생애
1920년 9월 14일, 영국령 북 보르네오, 지금의 사바 북부의 쿠닷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도널드 알로이셔스 마마듀크 스티븐스(Donald Aloysius Marmaduke Stephens)로 본래 가톨릭 신자였다. 흔히 카다잔두순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한때는 카다잔두순족의 우두머리로 추앙받았으나, 실제로 카다잔두순 피는 고작 25%이다. 아버지는 카다잔-영국 혼혈이었고 어머니는 영국-일본 혼혈이었는데 따라서 정확히는 영국인이라 봐야 한다. 뭐, 당시 사바는 영국령이었고 쿠닷 쪽은 북부라 카다잔두순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필리핀의 술루 등과 더 가깝다. 이름부터가 스티븐스(Stephens)인데.1961년 8월 통일카다잔국민조직(UNKO)을 창당하고 무스타파 하룬이 이끌던 통일사바국민조직(USNO)과 연대하였다. 사바인이라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 애국자로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었는데, 문제는 영국이 쉽게 독립시켜줄 리가 없었는데다가 한편 영국에서 갓 독립한 서부의 말라야 연방은 너무 작은 영토에다 힘이 없어 영토 확장을 꿈꾸고 있었다. 처음에는 브루나이를 주도로 해서 통일 보르네오 국가를 설립하려 했으나 난항을 겪은 끝에 무산되었고, "일단은 저쪽 동네에 잠깐 몸 좀 맡겨두자"는 생각에 신설 말레이시아로의 편입을 결정한다. 그리하여 1963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9월 16일 새로운 말레이시아의 일원이 된다.
스티븐스는 새로 탄생한 사바의 첫 총리로 취임하였고 1년동안 그 직을 지냈다. 그 뒤에는 그냥 평범한 정치인으로 지내다가 1971년 돌연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영국식이던 이름 도널드 스티븐스를 이슬람식으로 무하마드 푸아드 스티븐스로 개명했다. 그의 가족 모두 그를 따라 개종 및 개명했다.[1] 1973년 제3대 총독으로 취임하여 2년동안 재임했다. 이때 연방정부의 최고 작위인 툰(Tun) 칭호를 수여받아 툰 푸아드 스티븐스가 되었다. 1976년 사바의 제5대 총리로 다시 취임했다.
그런데...
2. 죽음
1976년 6월 6일 라부안을 출발해서 코타키나발루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 있었는데 공항 바로 앞에서 일어난 의문의 폭파사고로 사망했다. 비행기 안에는 아들 조하리(존 베네딕트 스티븐스)도 있었고 사바의 시정장관인 피터 모준틴 등이 있었다.
당시 문제의 비행기가 호주에서 제작한 기종이었기 때문에, 호주 정부에서는 바로 사람들을 보내 비행기에 대해 조사를 하도록 했다. 처음에 조사단은 비행기의 오작동이라고 판단했으나,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사실상 의문사.
그런데 그보다 더 유력한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3.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일종의 토사구팽이었다.그의 죽음은 연방정부가 계획한 일이라고도 이야기된다. 물론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행보가 나중에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다.
사실 사바가 말레이시아에 가입하게 했던 장본인은 다름아닌 싱가포르의 총리 리콴유였다. 당시 싱가포르는 정글투성이에 허허벌판이었고 자력강생이 불가능한 관계로 말레이시아로의 가입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스티븐스는 리콴유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결국 리콴유의 의견에 끌려 가입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의 총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리콴유는 이를 스티븐스와 몰래 계획했는데 스티븐스는 부총리가 되고, 리콴유 자신의 임기가 다하면 스티븐스가 총리직을 승계한다는, 어쩌면 매우 치밀히 계획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주동자인 리콴유가 다스리던 싱가포르가 2년 후인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사실상 축출되어 독립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왜냐하면 사바가 말레이시아에 가입한 것은 다시 말하되 싱가포르 때문인데, 정작 주동자가 먼저 나갔으니 본인들도 같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 때문이었다. 역사나 지리 상으로 동말레이시아가 서말레이시아(말라야 연방)와 연관이 없었던 것이 크다.
일단은 말레이시아에 몸 좀 맡겨두기로 했던 스티븐스와는 달리 말레이시아에 대해 그야말로 안티였던 세도몬 군사나드가 있었다. 스티븐스는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독립에 어려움을 느낀 스티븐스는 일단은 연방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군사나드 세력은 그 일로 사실상 와해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명목상일 뿐, 실제로는 독립을 시도했다.
스티븐스는 본토의 중앙정부를 강력하게 반대하던 사람이었고, 사바의 발전을 기원했던 사람이었다. 사바에는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본인들이 큰 돈을 벌고 말레이시아의 두바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중앙정부가 이들 자원에 대해 '사바 주의 로열티는 5%'라고 못을 박아버리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스티븐스는 20%를 원했고 또 그렇게 해야 사바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데, 5%로는 택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두고 중앙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고, 이 과정에서 당시 연방총리 압둘 라작과 후임인 후세인 온이 그를 정적으로 간주하고 죽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죽음으로 사바의 독립은 갈 길을 잃었고, 중앙정부의 주도로 독재하는 총리가 들어와 말레이화를 위한 국가폭력(이슬람으로 강제 개종, 강간, 학살 등)이 대대적으로 시행되면서 커다란 흑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아예 1982년부터는 사라왁과 함께 상징들조차 바뀌었으나 주민들의 반발로 1988년 예전 것과 유사한 것으로 되돌렸다. 이미 본토의 정당들이 사바에 들어오면서 이미 독립은 물 건너갔음이 확실해졌고, 1990년대 초반 사바 독립파 정치인들이 대규모로 투옥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앞날은 깜깜해졌다. 지금은 도리스 존스와 같은 사람이, 그것도 영국에서 망명중인 상태로 독립을 추진하고 있으나, 티베트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바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1]
연방정부측에서는 이왕 하는 김에 영국 냄새나는 스티븐스라는 성도 바꾸길 원했지만 스티븐스 본인이 이것만큼은 거부했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압박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