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胎産集要. 조선시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의학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된 언해태산집요와는 다른 책으로, 현재 개인소장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조선 초기 산과(産科) 전문 의학 교과서로, 조선왕조실록과 경국대전의 내용에 따르면 성종 3년인 1472년보다 이전에 간행되었으며, 이 당시 의과(醫科) 과목의 하나로 채택돼 이후 쭉 의관 교재로 쓰였다. 그러나 훗날 허준이 1608년에 펴낸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의 발문에서는 오랜 세월로 망실(亡失)된 의서로 기록되어 있어 그 사이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그러다 2016년 11월에 학계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다. 400여년만에 책이 다시 발견된 후 확인해본 결과 조선의 7대왕인 세조가 1455년에 만든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찍었으며, 편제와 전체적인 내용이 세조 때 만들어진 의학서 의방유취 권228~229의 산난(産難)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방유취란 과거 조선 세종이 우리나라의 자주적 의학 발전을 위하여 편찬코자 했던 책으로, 세종이 직접 신하들에게 명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의학서를 모으게 했으나 그 양이 너무 방대하고 정리가 불가능해 탈고를 하지 못하여 내버려두고 있던 것을 훗날 아들 세조가 12년에 걸쳐 분류 및 편집을 다시 하여 완성토록 한 동양 최대의 의학서적이다.
이 책을 발견한 박훈평 교수는 일본에 소장된 경국대전주해를 통해 이 태산집요의 저자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유의(儒醫)로 태산집요 외에도 창진집(瘡疹集)과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을 간행했던 임원준인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세조가 의방유취를 처음 탈고하게 한 후 16세기 전반 사이에 중앙정부 주도로 제작한 을해자본 의학서가 확실해졌다.
태산집요 같은 조선 전기 금속활자본 의학서는 워낙 적게 만들어진 데다 전란을 겪으면서 대부분이 소실돼 매우 희귀한 편이다.
이 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의방유취는 임진왜란 당시 전량 일본으로 유출되어 한국에서는 그 학맥이 끊긴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번에 발견된 이 책으로 인해 조선 세조~성종 시기 발전했던 한국의 의술이 파편적으로나마 미약하게 우리나라에서 그 맥을 이어왔음이 증명되었으므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 외부 링크
- KBS : “조선시대 산과 의학서 ‘태산집요’ 400년 만에 발견”
- 연합뉴스 : 400년만에 찾은 조선시대 산과 의학서 '태산집요'
- 울산매일 : 400여 년 만에 찾은 '태산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