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비슷한 전 HKT48 멤버에 대한 내용은 타나카 미쿠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cc72a2><colcolor=#fff> 타나카 쿠미 [ruby(田中, ruby=たなか)] [ruby(久美, ruby=くみ )] | Kumi Tan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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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7년 11월 19일 ([age(1967-11-19)]세) |
후쿠오카현 치쿠조군 시이다마치[1]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57cm, 47kg, O형[2] |
학력 |
후쿠오카현립 치쿠조니시 고등학교 (전학) 호리코시 고등학교 (졸업) |
직업 | 前 가수 |
활동 기간 | 1983년 ~ 1986년 |
소속사 | 호리프로[3] |
레이블 | 폴리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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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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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 Eyeteen きらめきEyeteen ― 데뷔 당시
캐치프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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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활동
1983년(쇼와 58년) 1차 서류 심사가 통과된 후 2차로 규슈 지역 예선 통과, 추후 여름방학 시즌인 8월 도쿄에서 열린 제8회 호리프로 탤런트 스카우트 캐러밴[4]에서 당시 역사상 최고로 많은 응모자를 기록 105,358명 중 그랑프리 우승을 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의 데뷔를 꿈꾸었다. 1차 예선에는 나카모리 아키나의 トワイライト를 불렀으며 당시 결승전에서 부른 노래는 이와사키 히로미의 素敵な気持ち(멋진 마음)을 불렀다.치쿠조니시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그랑프리 우승 후 2주 만에 시다이마치에서 연예계 활동하기 위해 상경하여 호리프로 기숙사에 입소하여, 1학년 2학기부터 호리코시 고등학교로 편입하였다. 우승 상금으로 100만 엔이 지급되었지만, 편입을 위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한다. 동급생으로는 미나미노 요코, 혼다 미나코, 오카다 유키코, 오기노메 요코, 쿠와타 야스코 등이 있었다. 거의 동급생 대부분이 84년 데뷔조 동기들이었다.
방송 방영 당시, 예명을 정하려고 하였으나 바로 꽂히는 마음에 든다고 생각 드는 것이 없어, 본명으로 데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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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곡 スリリング 무대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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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リッと夏 무대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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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女の中の悪魔(デビル) 무대 영상 |
6월 3일에는 두 번째 싱글인 『カリッと夏』를 발매하고 약 2개월 뒤 8월 8일에는 세 번째 싱글은 『少女の中の悪魔(デビル)』를 발매하였다. 이 곡으로 긴자음악제에서 은상을 수상을 하였고, 세 번째 싱글부터는 아이돌 컨셉에서 나카모리 아키나의 비슷한 츳파리 이미지 변신에 시도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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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の接吻 무대 영상 |
1985년 1월 네 번째 싱글 『火の接吻』을 발매하였고, 추후 가수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1986년 3월 호리코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리프로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4월에 본가인 후쿠오카로 돌아감과 동시에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의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여담으로 본가에 돌아가기 직전인 3월 31일에 절친이자 동기 아이돌인 오카다 유키코와 통화를 나눴던게 마지막이였다고 한다.
2.1. 은퇴 이후
이후 자신의 본가로 돌아가 기타큐슈시에 있는 이즈츠야 백화점 1층 악세서리 매장에서 취직하여 일하다가 19세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자녀로는 아들 한 명과 딸 두 명을 두었으나. 32세에 남편과 이혼하였다.자신의 곡을 아꼈는 지는 의문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도 간간히 자신의 곡을 부르러 이곳저곳 다니는 모양이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한창 은퇴한 뒤지만, 본인이 부르는 영상을 종종 볼 수 있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함없이 가창력이 좋다고 하거나 또는 향상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볼 수 있다.
2011년 44세에 피아노 강사와 재혼을 하였다. 다음 해인 2012년에는 ‘우에다 내과 클리닉’에서 일을 하며 기타큐슈시 중심으로 라이브 활동을 중심으로 이어나다가 호리코시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친구인 오카무라 유키코의 영향으로 후쿠오카현 치쿠조군 지역 로컬 라디오 방송 DJ 활동을 했다. 라디오 방송 진행 당시 절친이었던 오카다 유키코의 노래를 꼭 송출해 주었다고 한다.
3. 여담
- 활동 당시 존경하는 사람은 부모님과 같은 소속사의 선배인 야마구치 모모에였다.
- 좋아하는 음식은 우메보시, 고기, 초콜릿을 좋아했다.
-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 호리코시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우관계는 두루두루 친했지만 유독 친했던 건 오카다 유키코였으며 둘이 찍은 투샷이 정말 많았으며, 그녀가 생을 마감하였을 때 눈물의 인터뷰를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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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유키코와 타나카 쿠미 |
- 한 뉴스 기사에서 밝히길 1985년 마지막 싱글을 발표할 때 정통파 아이돌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오냥코클럽과 같은 아마추어 아이돌이 인기를 얻게 되어 호리프로에서는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출연하는 버라돌 노선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나카 쿠미는 히트곡이 없었으며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는 곤란한 선택지었다고 밝혔다. #
- 1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슬하로 딸 두 명, 아들 한 명을 낳았었고 장녀 또한 결혼하여 자식을 두었기에 일본 80년대 아이돌 가수 중에서는 흔치 않는 손자를 가지고 있는 케이스인데다가 상당히 빠른 축에 속한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