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num Francorum 프랑크인의 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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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 프랑크인의 왕 Chlothar III | 클로타르 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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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클로타르 3세 |
프랑스어 | Chlothar III | |
생몰 년도 | 652년 ~ 673년 | |
재위 기간 |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 | |
657년 ~ 673년 | ||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 ||
66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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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로베우스 왕조 프랑크 왕국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군트의 왕. 킬데베르 3세 폐위 후 킬데리크 2세 집권 전까지 잠시 동안 프랑크 왕국의 단독 군주를 맡았다.2. 행적
652년 클로비스 2세와 색슨족 출신의 노예 바틸다의 장남이다. 657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5살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바틸다가 섭정을 맡았다. 그녀는 에르치노알트 궁재가 사망하자 에브로인을 새 궁재로 삼았다. 에브로인은 집권 직후 614년 클로타르 2세가 반포한 칙령을 폐지했다. 클로타르 2세의 칙령은 귀족들이 판사와 백작 자리를 독점하고 세습하는 걸 허용했고, 왕은 귀족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브룬힐트를 몰아내는 데 도움을 준 귀족들에게 보답하고, 그들이 또다시 다른 인물을 왕으로 내세워서 내전을 벌이는 걸 막기 위한 포섭책이었다. 에브로인은 이제는 귀족들이 이 칙령에 의지하여 직위를 세습하는 걸 막았고, 중앙 정부에서 파견한 관료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지시했다.이 정책에 반감을 품은 네우스트리아 귀족들은 에브로인을 축출할 임모를 꾸몄고, 파리의 새 주교 시게브란트도 여기에 가담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발각되었고, 주교는 처형되었다. 에브로인은 말을 듣지 않는 귀족들을 가차없이 숙청하는 한편, 귀족들이 왕궁에 접근하는 것마저 차단했다. 그러나 오툰의 레오데가리우스 주교가 이끄는 부르군트는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고 관례대로 자치를 누렸다.
662년, 에브로인은 6년 전에 시게베르 3세가 사망한 뒤 그의 양자이자 자신의 아들인 킬데베르 3세를 왕위에 올린 아우스트라시아 왕국의 궁재 그리모알드를 처단하기로 했다. 그는 그리모알드와 킬데베르 3세를 네우스트리아로 유인해 처형했다. 이후 수 개월간 차기 아우스트라시아 왕이 될 적임자를 물색한 끝에 시게베르 3세의 조카인 킬데리크 2세를 시게베르 3세의 딸 빌리킬다와 결혼시키고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위에 오르게 했다.
클로타르 3세가 13살에 접어든 665년, 에브로인은 바틸다를 셀라에 있는 수녀원으로 은퇴하도록 강요했다. 이는 그녀가 에브로인을 축출할 음모에 가담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에브로인은 이후에도 권세를 누렸고, 클로타르 3세는 별다른 정치 참여를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내다 열병에 걸려 재위 16년째인 673년 3월 10일에서 5월 15일 사이에 사망했다. 사후 동생 테우데리크 3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