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5 11:23:21

크리스 맥캔들리스

<colbgcolor=#000><colcolor=#fff> 크리스 맥캔들리스
Chris McCandless
본명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
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이명 알렉산더 슈퍼트램프
Alexander Supertramp
출생 1968년 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잉글우드
사망 1992년 8월 18일?[2] (향년 24세)
미국 알래스카 주 스탬피드 트레일
시신 발견 1992년 9월 6일
학력 윌버트 터커 우드슨 고등학교
에모리 대학교 (졸업)

1. 개요2. 생애
2.1. 가슴 아픈 청춘을 둔 채 모험을 떠나다2.2. 자유로운 추억이 많았던 여행 일지2.3. 자연의 동경이 불러온 고난2.4. 오랜 고독 끝에 맞이한 죽음
3.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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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아마추어 탐험가이자 화제인물.

미국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외적으로는' 유복하게 자라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명문대학 에모리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인물 항목이 개설된 이유는 이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우등생이 가출을 선택한 뒤 극한 야생에서의 삶을 살다 결국 자연의 냉혹함에 안타깝고 고독한 최후를 맞은 사건 때문으로, 당시 미국의 모든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2. 생애

2.1. 가슴 아픈 청춘을 둔 채 모험을 떠나다

크리스는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상류층 집안의 화목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학창 시절 내내 우등생 & 모범생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애틀랜타의 명문대학 에모리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그의 창창한 미래를 모두가 기대했지만,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홀로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도시와 속세의 삶에 회의를 느껴 왔고 표면적으로는 화목하다 알려졌던 가정의 실상은 양친[3]의 매일같이 살벌한 부부싸움으로 고성이 끊이지 않는 나날이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매번 여자들을 바꿔가며 대놓고 불륜을 저질러서[4] 크리스는 깊은 자괴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겉으로는 촉망받는 모범생이었지만 이미 크리스는 도시에서의 미래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에서의 자유로운 삶에 대해 큰 동경을 품게 되었고 관련 서적을 읽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가며 졸업반 1년 동안 나름대로 집을 떠나 모험을 떠나며 영원히 자연 속에서 살 준비를 한다.

1990년 5월 12일, 대학교 졸업식을 마친 크리스는 부모님에게 이번 여름에는 자신의 자동차로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이후 같은 해 6월, 대학 최종 성적표와 짧은 편지를 부모님의 집에 부친 뒤, 신분증을 파기해버린 크리스는 자신의 차를 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후로 연락이 끊기자 크리스의 가족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서로 애증 섞인 앙숙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최고의 사립 탐정까지 고용해서 미친듯이 아들을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다.

2.2. 자유로운 추억이 많았던 여행 일지

그렇게 차를 몰아 무작정 여행을 떠난 그는 1990년 7월 6일, 미국 네바다 주에 위치한 국립공원 레이크 미드 국립휴양지에 다다라 그 곳에서 야영을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해 인근의 강이 불어나 홍수가 일어나고, 차가 침수되어 고장이 나버린다. 크리스는 차를 버리고 배낭을 챙긴 뒤, 도보와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하게 된다.[5]

1990년 7월 중순 즈음에 히치하이킹으로 캘리포니아 주의 타호 호수 주립공원에 도착한 그는 호수를 구경하고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등산하고는 1990년 8월경 호수를 떠난다.

이후로 약 2개월 동안 히치하이킹이나 걷기 등으로 이동을 하던 그는 1990년 10월 28일, 애리조나 주의 토폭이라는 소도시의 상점과 총포상에서 소형 카누 한 척과 권총 한 정을 구매하고 1990년 12월 초까지 약 2개월 동안 콜로라도 강에서 카누를 타고 노를 저으며 이동을 하다 도중에 야영을 하기를 반복하며 여러 국립공원과 강들을 지난다. 그 와중에 강을 마주보고 있는 어느 소도시를 지나게 됐는데, 크리스는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자신의 친구가 떠올라 그에게 안부 편지를 써 우체국에 부친다.

1990년 12월 2일에는 카누를 타고 정처없이 이동을 하다가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에 도착을 하게 된다.

이후로 12월 한달 동안은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리를 사냥하던 포수의 차를 얻어 타고 이동하거나 다시 강에서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이동하다 폭풍우를 피해 동굴 속에서 며칠 동안 머물기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냈으며 그렇게 한 해가 지나 1991년이 된다.

1991년 1월 11일에는 강에서 카누를 타고 이동하다 폭풍우와 강한 물살 때문에 익사할 뻔 하기도 한다. 5일 뒤인 1월 16일, 멕시코의 국경을 건넌 그는 소노라 주의 어느 해안가에 다다른 뒤 여지껏 타고 온 카누를 그 곳에 버리고 다시 도보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총기를 소지한 채 국경을 넘다가 미국 이민국의 직원들에게 적발되어 인근 경찰서의 유치장에 하루 동안 갇히고 총도 압류당하는 해프닝을 경험한다.

이후 풀려난 그는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달인 1991년 1월부터 2월까지 평소에 하던 대로 히치하이킹과 도보를 이용해 미국 텍사스 주의 도시 휴스턴을 경유해 미국 서부 해안 지방으로 이동한다.

1991년 2월 3일, 캘리포니아 주의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그는 그 곳에 정착하기 위해 신분증을 새로 발급하고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인지 며칠만 머물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로스 앤젤레스에 도착한 지 6일이 지난 1991년 2월 9일에는 유명 관광지인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하였고, 한 독일인 관광객 두명과 함께 야영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후로 며칠간 또다시 히치하이킹과 걷기를 병행하다 1991년 2월 27일, 미국 네바다 주의 대도시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5월 10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머물다가 떠난다.

1991년 5월부터 8월까지 약 3개월 간은 그리 무리한 여행을 하지는 않고 서부 지방의 도시에서 머물며 시간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크리스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난 1991년 10월, 크리스는 애리조나 주 모하비 카운티에 위치한 불헤드 시티라는 소도시에 잠깐동안 정착해 머물면서 근처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그 곳에서 새로이 알게 된 중년 남자의 캠핑카에서 하숙하는 경험을 한다.

이후 1991년 12월 한달 동안 걷기, 히치하이킹과 야영장에서의 야영을 반복하며 콜로라도 주, 사우스다코타 주, 캐나다의 국경을 넘어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거쳐 이듬해인 1992년 3월, 마침내 알래스카 주에 도착하게 된다. 알래스카에 도착하기 전 사우스다코타의 어느 농장에서 잠깐동안 일을 하기도 했다.

1992년 4월 18일부터 사흘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라는 소도시에 위치한 알래스카 대학교 페어뱅크스 캠퍼스에 방문하여 식용 식물에 관한 도서를 찾아보며 연구를 하고 총포사에서 또다시 총을 한 정 구매한 뒤, 알래스카의 북단으로 이동하며 본격적으로 알래스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2.3. 자연의 동경이 불러온 고난

알래스카에 다다른 뒤인 1992년 4월 말부터 크리스는 히치하이킹을 잠깐 하고선 어느 오솔길을 따라 숲의 아주 외진 곳으로 걸어서 떠난다. 그러던 도중 깊은 숲속에서 버려진 버스를 자신의 집으로 삼아 생활했다[6]. 채집과 총포상에서 구매한 총으로 사냥을 하여 생활하며 쉬는 때에는 가져온 책들을 읽으며 소일하고 자신의 모험일지를 매일 같이 기록했다.[7] 그리고는 이런 자신을 자연의 왕이라고 칭하며 본명을 버리고 알렉산더 슈퍼트램프(Alexander Supertramp)라고 지칭했다.[8]

그러나 이때부터 이미 그는 파국으로 가는 길을 자초하고 있었다. 고학력 엘리트였지만 정작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젊은이로 근거 없이 자신감만 높았던[9] 그는 야생에서의 삶의 낭만이나 긍정적인 것만 생각하고 갔지만 막상 지내보니 그가 생각한 것처럼 만만한 삶이 절대로 아니었다. 알래스카가 늘 추울 것이니 음식 보관이 쉬울거라 생각했지만 동물을 사냥해서 보관하기만 하면 죄다 부패하기 일쑤였다. 알래스카도 날이 풀리면 생각 외로 기온이 높아[10] 어떻게든 사냥한 말코손바닥사슴의 고기를 보관해보려고 훈제를 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기껏 사냥한 고기 전부가 구더기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그의 일지에 이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빌어먹을! 젠장! X발! 벌써 구더기가... 모르겠다. 훈제도 소용이 없다. 내 인생 최악의 비극."이라고 적혀있었다.

사실 말이 훈제였지 훈제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나무 연기만 쬐어대니 전혀 보관 효과를 못 내는게 당연했다. 훈제는 그냥 밖에서 모닥불 지피고 위에 매달아놓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밀폐된 곳에서 정말 연기를 듬뿍 머금는다 할 정도로 해야 한다. 연기 나는 불 근처에 매달아 두는 거라면 몇 주에서 달 단위로 오래, 불 꺼지는 일 없이 매달아 둬야 한다.[11]

거기다가 관련 지식이 전무한 그가 대형 초식동물인 말코손바닥사슴을 혼자서 해체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물의 도축은 그냥 보이는대로 대충 써는 게 아니라 피뽑기부터 시작해서 효율적으로 부위를 나누고 순서대로 잘라내는 등 그 동물의 신체 구조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초보는 기껏해야 대충 썬 고깃덩어리 몇 개를 떼어내는 게 한계였을 것이다. 괜히 옛날에 백정이라는 전문직이 존재하고 현대에도 마장동 축산물시장의 도축업자들의 기술이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 사슴은 수컷이 370kg ~ 820kg, 암컷이 200kg ~ 490kg까지 나가는 현존하는 사슴과[12] 동물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크고 무거운 녀석이다. 그걸 도축 기술도 없고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한 크리스가 혼자서 해체를 했으니 몸에 엄청나게 무리가 갔을 것이다. 거기에 도축용 칼을 제대로 구비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기껏 엄청난 에너지를 써놓고 사냥한 동물의 고기도 거의 못 먹고[13] 나무 열매와 풀떼기로 연명했으니 몸이 버텨낼 리 만무한 건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야생에서도 잘 살거라고 생각하고 이름까지 바꿨지만 현실은 전혀 아니었던 것.

자기 나름대로 동물 & 식물도감을 챙기면서 대비를 했다지만 자연의 변수는 책 따위로는 설명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로알 아문센 vs 로버트 스콧 남극탐험 대전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준비부족이 야생에서는 죽음으로 직결된다. 더군다나 크리스는 스콧만큼의 준비조차 안 되어 사실상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다. 그를 태워줬던 현지 주민 한 명도 그의 짐을 보고는 단박에 여행 초보자임을 눈치채고 더 철저히 준비해서 가라고 신신당부할 정도였다. 즉 이론만 생각한 책상물림.

실제 그가 남긴 야생생활에서의 사진들을 보면 동물들의 사냥 사진이 꽤 있었던 걸로 보아 사냥 자체는 나름대로 잘 했다. 하지만 식량 보존 관련 지식이 없으니 상당수를 못 먹고 버려서 낭비하는 바람에 못 잡은 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병원은 커녕 의약품의 도움조차 받지 못해서 영양실조와 영양 불균형이 겹치면서 하루가 다르게 면역력이 떨어지고 아픈 곳과 병치례가 늘어났을 것이고,[14]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만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 디스커버리 채널의 리얼리티 야생 프로에서 베어 그릴스를 비롯한 전문 야생 탐험가들의 모습을 보면 혼자서도 사냥하고 보존식 만들고 다 잘하니 탐험 덕후들은 이게 멋있고 낭만적이라는 환상을 가지기 쉽지만, 이런 프로를 찍는 전문가들도 제작진이 철저히 준비해서 혹시나 모를 돌발 상황이나 질병들에 대비해 물자들이나 의약품 그리고 큰 부상을 입었을 때를 대비해 후송대책까지 다 마련하고나서 찍는 것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방송이 아니더라도 실제 야생상황에서의 생존을 몇 번이나 시도하며 경험을 쌓았고 어디까지나 '방송'이니 이런저런 대비를 해놓았을 뿐 진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은 오랜 경험과 훈련으로 갖춰놓은 것이다.[15] 크리스처럼 낭만주의만 생각하고 어설프게 준비하면 베어 그릴스라 해도 장기 생존하기 힘들다.

2.4. 오랜 고독 끝에 맞이한 죽음

크리스는 매일같이 자신의 야생일지를 기록하고 뭘 사냥했는지 뭘 채집했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100일이 넘은 시점에서 그는 일단 버스까지는 걸어서 가는데에는 성공했었으나 봄이 지나서 여름이 되자 얼어있던 강이 녹아 수위가 높아져버리는 바람에 버스가 있는 곳에서 완전히 고립된 신세가 되어버렸다. 도움을 청할래도 청할 길이 아예 막혀버렸기에 그는 다시 자신의 본명으로 이름을 기록하고 자신이 야생생활 도중 사냥과 채집을 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일지에 기록하고 쪽지를 빈 병에 담아 강에다 흘려 보냈다. 하지만 그의 구조신호가 전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점의 크리스는 정확한 날짜를 적지 않았는데 오랜 은둔생활로 인해 날짜감각을 잃어버려서였을 것이다. 즉 그날이 며칠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리스의 S.O.S 손편지 [ 펼치기 · 접기 ]
>Attention Possible Visitors.
S.O.S.
I need your help.
I am injured, near death,
and too weak to hike out.
I am all alone, this is no joke.
In the name of God, please remain to save me.
I am out collecting berries close by and shall return this evening.
Thank you, Chris McCandless. August ?
관광객 여러분들께
S.O.S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 부상을 당했고, 거의 죽을 뻔 했으며,
너무 약해져서 등산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혼자고, 농담이 아닙니다.
신의 이름으로, 제발 저를 구하러 남아주세요.
저는 근처에서 열매를 모으고 있어 오늘 저녁에 돌아올 겁니다.
고맙습니다.
크리스 맥캔들리스, 8월 ?일

크리스의 100일째 일지 [ 펼치기 · 접기 ]
>DAY 100!
MADE IT!
But in weakest condition of life,
Death looms at serious threat.
Too weak to walk out, have litterally become trapped in the wild. No game
100일!
해냈다!
하지만 살면서 가장 허약한 순간에 죽음이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다.
말 그대로 야생에 갇혀버렸다.

그의 일지는 마지막 날 아름답고 신선한 블루베리를 채집했다는 일지를 끝으로 어느 기록도 쓰여지지 않았다. 이 시점 이후가 그의 사망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블루베리와 잎과 열매가 모양이 유사한 벨라돈나를 채집해 먹었다가 사망한 것이라고 추정한다.[16] 이 사건은 미국의 모든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가 죽은 지 2주가 지나서야 사슴 사냥꾼들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몸무게는 고작 30kg 정도였다고 한다.[17]

크리스의 남겨진 유서 [ 펼치기 · 접기 ]
>I HAVE HAD A HAPPY LIFE
AND THANK THE LORD.
GOODBYE AND MAY GOD BLESS ALL!

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전 진짜 행복한 삶을 살았고 신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신의 축복이 있기를!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

1992년 9월 19일, 그의 여동생인 캐린 맥캔들리스가 크리스의 화장된 유골이 담긴 통을 배낭에다 넣은 뒤, 함께 비행기를 타고 미국 동부 해안으로 떠났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강을 건널 수 있는 도르래가 크리스의 거처에서 500m도 안 되는 곳에 있었으며 근처에도 야생생활 체험 관광객을 위한 산장이 꽤 있었기에 크리스가 이걸 발견만 했더라면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도 더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죽는 순간까지 이걸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에 그가 자만하지 않고 지도라도 가져갔으면 도르래와 산장을 바로 찾았을 것이다. 남극점 탐사 당시 로버트 스콧도 전초기지를 800m 남기고 동사했는데 그의 실책 때문이라는 점이 비슷하다.

그가 머물렀던 버스는 그 후 관광명소가 되었으나 접근하기가 너무 위험한 곳인데다 가다가 사고로 사상자가 생기는 사태가 잇따르자 미국 연방정부에서 해당 버스의 철거를 결정해서 2020년 6월 19일, 버스를 군용 헬기로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치워버렸다. 이 버스는 현재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이 사건이 반면교사가 되어 탐험이나 모험에 있어서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훌륭한 교보재 노릇을 한다.

인투 더 와일드 문서에도 나와있다시피, 그에 대한 알래스카 주민들의 생각은 '알래스카 대자연의 무서움을 모르고 제대로 준비도 하지도 않고 와서 죽은 인간' 정도로 냉소적인 반응이 대다수다. 외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크리스의 삶과 죽음이 드라마틱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대자연과 매일 맞닥뜨리면서 살아온 사람들한테는 그의 행적이 무모한 바보 같은 짓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듯하다.

3. 매체



[1]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생전 마지막 사진으로 사망하기 1일~3일 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게 맞다면 그는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과 식물을 잘못 먹어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텐데도 그걸 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뜻이 된다. [2] 크리스가 죽기 전 시간감각을 상실해버려 그가 보낸 구조 신호에도 8월 경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상세한 날짜를 몰라 ?로만 적어두었다. 다만 발견된 유해의 상태와 더불어 8월 18일경 즈음에 사망했을 것이라 보는게 정설이다. [3] 부친이 NASA 수석 연구원이었다. [4] 심지어 두집 살림까지 하고 혼외자식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엘리트에 사회적으로 명망있다고 인성이 제대로 박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예시. [5] 여담으로 크리스의 차는 번호판이 말소된 차량이었는데, 그걸 그대로 몰고 가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차가 고장나자 말소된 번호판을 들켜서 범죄자가 될까 겁이 나서 그걸 뜯어서 가져가버렸다고 한다. [6] 이 버스는 원래 페어뱅크스 시에서 1946년에 도입해 노선 버스로 쓰다가 퇴역한 것으로, 유탄 건설 회사(Yutan Construction Company)에서 이 지역의 도로 수리 및 유지보수 작업을 할 때 노동자들이 쉴 곳을 마련하기 위해 갖다 놓은 세 대의 버스 중 하나였다. 안에는 침대 몇 개와 화목난로가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에 이 도로를 이용하던 스탬퍼드 광산(Stampede Mine)이 문을 닫자 도로 유지보수도 필요없어져서 버스는 철거되었는데, 버스 한 대의 뒷바퀴 축이 파손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 자리에 방치했다. 이후 사냥꾼들이 지나가다 잠시 기거하는 장소로 쓰이다가 크리스가 온 것이다. [7] 정말 비극적인 것은, 그가 모범생 출신답게 그가 야생생활을 하며 남긴 일지의 필기체나, 어투를 보면 고급스런 어휘에 귀엽고 센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알래스카 야생에서 자신이 꿈꾸던 자연과의 삶을 기대했겠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하였다. [8] 알렉산더는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 3세를 뜻하며, 슈퍼트램프에서 트램프는 떠돌이라는 뜻이 있으니 대충 자신의 이름을 '위대한 방랑자 알렉산더'라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9] 사실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속한 그 시대 미국 백인 부머세대가 비판받는 점 중 하나가 자신이 대학을 나온 엘리트라는 자부심만 믿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크리스 맥캔들리스 역시 거기에 속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크리스는 알래스카로 오기 전 여러 곳을 도는 과정에서 패스트푸드점, 농장 등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그와 함께 지냈던 주변 사람들과 동료들이 모두 그를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이런 걸 보면 능력 면에서도 성격 면에서도 나름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게 확실하다. 어디까지나 문명을 완전히 벗어난 원시생활을 하는 일은 그저 독립적인 생활을 잘해내는 것과는 아예 영역이 달랐다는 점이 문제였다. [10] 알래스카, 시베리아 같은 동토 지역은 하절기에는 고위도 지역이라 일조시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한낮에 20-30도는 우습게 올라간다. [11] 이것도 사실 그 지역의 기후에 따라 방법이 다 달라지기 때문에, 적어도 몇 번 정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가 사는 곳에서 가장 알맞은 훈연 보존법을 찾아야 한다. 초보자가 고기를 장기 보관 하려면 가장 좋은 건 염장이다. 근처에 바다나 암염 광산이 있지 않는 한 그 정도 대량의 소금은 미리 준비해올 수 밖에 없어서 그렇지, 가장 효과가 확실하다. 시중에 파는 햄이나 훈제 식품도 염장 후에 훈제하며, 그것도 훈제 과정에서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부분 방부제(아질산나트륨)를 넣고 한다. [12] 사슴과는 소목이다. 말코손바닥사슴은 뿔만 길고 갈라졌지, 생긴 것과 크기는 그냥 큰 소라고 봐도 된다. [13] 안 상했더라도 야생 동물 고기는 대부분 누린내가 심히 나서 먹기가 힘들다. 피를 안 빼면 더욱 그렇다. [14] 야생에서는 탄수화물은 물론이고 지질이나 비타민조차 구하기 힘들다. 탄수화물은 인류 농업화의 산물이다. 지질의 경우 토끼고기처럼 지질 함유가 적은 고기들도 많고, 조리하면서 많은 양이 빠지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으면 큰일날 수 있다. 비타민은 과일이나 채소에 많긴 하지만 이런 걸 전문적으로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괜히 유목민족이 비타민 섭취를 위해 가축의 피를 빼서 마시는 게 아니다. [15] 실제로 제작진이 온갖 의약품 등을 준비해놓고 언제든 구출할 수 있게 대기하고 있었다고 해서 방송을 무조건 다 가짜라고 매도하면 안된다. 그런 준비를 해놓고 안한 척, 실제상황인 척을 했다면 시청자를 기만하는 욕먹어도 싼 짓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방송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끝까지 촬영하기 위해 위급상황에 대비를 해놨을 뿐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엔 실제 생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기술을 익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니 참고용으로 나쁘지 않다. [16]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서는 홍두를 블루베리로 착각하고 먹어 사경을 헤멘 설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의 사인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기에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도 많을 것이다. 혹은 맹독성 식물이 아니더라도 이미 영양불균형과 영양실조에 극심하게 시달린 몸이라 단순 식중독으로 죽었을 수 있다. [17] 죽은지 2주 만에 발견되어 부패와 시신의 수분이 빠진 걸 감안하면 죽기 직전의 몸무게는 40kg대 초중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