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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2대 | 3대 |
켄 샴락 |
스즈키 미노루 |
바스 루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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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 5대 | 6대 | |
후나키 마사카츠 |
콘도 유키 |
후나키 마사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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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 8대 | 9대 | |
가이 메츠거 |
콘도 유키 |
세미 슐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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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 |||
조쉬 바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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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케네스 웨인 섐락 (Kenneth Wayne Shamrock)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지 | 워너 로빈스, 조지아 |
거주지 | 리노, 네바다 |
생년월일 | 1964년 2월 11일 ([age(1964-02-11)]세) |
입식 전적 | 1전 1패 |
종합격투기 전적 | 47전 28승 17패 2무 |
승 | 3KO, 22SUB, 3판정 |
패 | 11KO, 4SUB, 2판정 |
체격 | 183cm / 91kg / 184cm |
링네임 | The World's Most Dangerous Man |
주요 타이틀 | Pancrase 1994 무제한급 킹 오브 판크라스 토너먼트 우승 |
Pancrase 초대 무제한급 챔피언 | |
UFC 초대 슈퍼파이트 챔피언 | |
WMMAA 초대 헤비급 챔피언 | |
기타 | SAPW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
UFC 1 무제한급 토너먼트 3위 | |
UFC 무제한급 토너먼트 3 준우승 | |
Pancrase 무제한급 타이틀 방어 1회 | |
UFC 슈퍼파이트 타이틀 방어 2회 | |
1998 WWF 킹 오브 더 링 우승 | |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1회[1] | |
WWF 태그팀 챔피언 1회 |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 |
2003 UFC 명예의 전당 헌액 | |
임팩트 레슬링 2020년 명예의 전당 헌액 | |
피니쉬 무브 | 앵클 락 |
벨리 투 벨리 수플렉스 | |
유형 | 스트롱 스타일 + 브롤러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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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종합격투기 선수, 킥복서, 프로레슬러. 명문 체육관인 라이온스덴의 수장으로, Pancrase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초창기 UFC에서도 호이스 그레이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등 여러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초창기 종합격투기의 막을 열며 당시에 드물게 타격과 그래플링 둘다 고루 갖춘 컴플릿 파이터 였다.2. 전적
- 주요 승: 야마다 마나부, 이나가키 카츠오미, 후나키 마사카츠(2), 타카하시 요시키, 후케 타카쿠(2), 패트릭 스미스, 야나기사와 류시, 샘 앳킨스, 맷 흄, 바스 루텐(2), 모리스 스미스, 댄 세번, 브라이언 존스턴, 알렉산더 오츠카, 키모 레오폴도, 로스 클리프턴, 조나단 아이비
- 주요 패: 호이스 그레이시(2), 스즈키 미노루(2), 후나키 마사카츠, 댄 세번, 후지타 카즈유키, 돈 프라이, 티토 오티즈(3), 리치 프랭클린, 사쿠라바 카즈시, 페드로 히조, 마이크 브루크, 킴보 슬라이스
3. 커리어
- UFC 슈퍼파이트 초대 챔피언(2차 방어)
- 판크라스 초대 챔피언
3.1. Pancrase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켄 샴락은 손도 대기 힘들 정도의 문제아였다고 한다. 고아원의 골칫덩이였던 켄을 선뜻 입양한 것은 양부인 밥 샴락이었다. 켄은 프랭크 샴락과 함께 밥의 양자로 자라났다. 장성한 켄은 일본의 프로레슬러였던 후나키 마사카츠와 스즈키 미노루에게 격투기를 배웠다.1993년 후나키 마사카츠는 기존의 프로레슬링에서 벗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실전을 지향하는 Pancrase를 설립했고, 켄은 용병격으로 참가했다. 1993년 9월 Pancrase 초대 대회에서 후나키 마사카츠를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꺾으며 자신의 이름을 격투기계에 널리 알렸다. 이후 타카하시 카즈오와 후케 타카쿠 등 이름난 슛파이터들을 모조리 꺾으며 판크라스의 초대 제왕으로 군림했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샴락은 자신의 체육관인 라이온스덴을 설립한다.
1994년에 판크라스 킥복싱에 도전한다. 상대는 킥복서 프랭크 롭먼(Frank Lobman)인데, 주요 승으로 바스 루텐, 안드레 메나트(Andre Mannaart)[2], 주요 패로 피터 아츠에게 3번, 모리스 스미스에게 1번 패배한 전적이 있다. 샴락은 롭먼에게 2라운드 레그킥 TKO로 패배했다. 입식 경험도 있기에 초창기 MMA를 대표하는 타격과 그래플링 둘다 잘 하는 선수였었다.
3.2. UFC
1993년 11월 12일 MMA 역사의 막을 연 UFC 1 토너먼트가 열린 날이였다. 토너먼트에 도전하기 위해 전 세계의 강자들이 모인 자리였고 샴락 역시 슛파이팅의 에이스로 호리온 그레이시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1회전에서 태권도 베이스의 파이터 패트릭 스미스와 대전한다. 스미스를 페인트로 태클을 거는 척하다가 언더 훅으로 테이크 다운시키고 클로즈드 가드 포지션을 취하는 스미스에게서 상체를 세우며 일어나면서 가드패스하고 스미스의 발목을 바로 힐훅으로 연계후 간단히 제압해 2회전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와 격돌한다.[3]호이스가 먼저 태클을 시도했지만 섐락이 잘 막아낸 후 언더훅을 파서 상위를 잡고 하체관절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상위를 호이스에게 빼앗긴다. 곧바로 호이스는 하프에서 백마운트로 갈아탄 후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시도했다. 섐락은 그립이 깊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호이스는 도복의 소매깃으로 그립을 채우며 초크를 완성시켜 샴락의 탭을 받아내 1라운드 57초만에 통한의 패배를 겪고 만다.
Pancrase로 돌아온 섐락은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1994년 1월 스즈키 미노루에게 패했으나 야나기사와 류시, 바스 루텐, 후케 타카쿠를 쓰러뜨리며 여전히 강력한 선수임을 입증했다.
1994년 9월 UFC 3에서 호이스에게 리벤지하기 위해 참가하여 1차전과 2차전에서 승리하며 준결승에 진출한다. 하지만 호이스가 키모 레오폴도와의 경기에서 체력을 소진하여 기권하자 맥이 빠진 샴락도 이탈을 선언해버리고 말았다.
1994년 12월 초대 무차별급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 토너먼트에 참가해 모리스 스미스, 후나키 마사카츠 등 4번의 대결을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초대 무차별급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의 왕좌에 올랐다. Pancrase의 제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 후 샴락은 다시 1995년 4월 UFC 5에서 다시 호이스 그레이시에게 도전한다. 섐락은 호이스를 상대하기 위해 장기전을 들고 나왔고 그다지 격렬하지 않은 공방 속에 36분의 경기시간을 모두 소모하고 말았다. 결과는 무승부. 현재 mma 판정이였다면 켄섐락의 개비기 판정승 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지루한 경기로 인해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고 승리를 위한 전략을 들고나온 샴락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UFC 5를 끝으로 그레이시 가문이 UFC를 이탈하자, 더 이상 섐락의 상대는 없었다. 1995년 7월 UFC 6에서 댄 세번과 초대 슈퍼파이트 타이틀을 두고 맞붙어 1라운드만에 길로틴 초크로 승리하며 UFC의 초대 슈퍼파이트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이후 올렉 탁타로프와 키모 레오폴도가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수성에 성공하며 동시에 Pancrase에서도 연승을 이어가며 종합격투기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1996년 5월 UFC 9에서 다시 만난 세번과의 2차전에서 패하면서 슈퍼파이트 타이틀을 내주게 된다. 하지만 1996년 12월 Ultimate Ultimate에서 브라이언 존스턴에게 승리하며 여전히 강자임을 증명했다.
3.3. WWF
활동 당시 타이탄트론 |
해가 바뀌고 1997년이 되자 UFC의 운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폭력성과 잔인함으로 인해 도덕적인 비난이 거세졌고 공화당과 복싱협회의 십자포화에 의해 방송금지 처분을 받자 경영은 초토화 상태가 되었다. 파이트머니는 점점 깎여나갔고, 많은 선수들이 UFC를 떠나 Pride로 둥지를 옮겼다.
라이온스덴 역시 재정상태가 악화되었고 이에 대한 섐락의 선택은 WWF였다. 그 유명한 레슬매니아 13에서 브렛 하트와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경기에서 특별 심판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곧 경기를 가지기 시작했다. WWF에서도 슛 파이터임을 적극 어필하며 앵클 락,[4] 토 홀드, 니 바 등의 하체 관절기와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 허리케인라나를 주요 기술로 쓰며 활동했다.
이래봬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5][6]라는 비범한 칭호와 함께, 광기서린 표정으로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면서 흉폭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초창기 더 락과 대립하는 등, 인기몰이를 제법 했으며, 유망주들의 등용문인 WWF 킹 오브 더 링(1998)에서 우승까지 하면서 WWF로부터 전폭적인 푸쉬를 받게 된다. 어느 정도였냐면 베이더, 케인, 제프 제럿 등 강자들을 상대로 승을 따내는 것도 모자라 트리플 H까지 클린 핀폴로 잡을 정도로 강력했으며 더 락의 담당일진이란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더 락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을 정도. 수틀리면 아무에게나 벨리 투 벨리와 앵클락을 걸고 놔주지 않는 막나가는 기믹과 이종격투기를 베이스로 한 브롤러 스타일의 훌륭한 경기력으로 인해 인기가 상당했다.[7]
참고로 WWF측에서 야심차게 띄워준 위상과는 달리 승률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인데, 왜냐하면 자신의 성질을 못 이겨서 피니셔인 앵클 락 서브미션을 풀어주지 않다가 승리를 따내고도 판정이 번복되는 일이 잦았던데다가, 서브미션 무브를 풀어주려는 심판들도 마구 폭행해버리는 바람에 이 또한 판정이 뒤집혀서 패배로 기록된 일이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WWF 레슬매니아 14에서의 더 락과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이다.
트레이드 마크인 뜨아~! 1분 30초부터 보자. [8]
WWF에서 활동했을 때는 각본상 여동생인 라이언 샴락이 있었는데 함께 자주 다니는 사이는 아니었고, 대략 더들리 보이즈와 스파이크 더들리 사이의 관계랑 비슷했다. 이 당시 골더스트+ 블루 미니 형제랑 대립을 했는데, 각본상 골더스트는 라이언과 사귀는 사이였고, 켄은 예비 매부인 골더스트를 탐탁지 않게 여겨서 대립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라이언은 둘을 말리는 입장이었다.
데뷔 이후 바로 하이 미드카더 자리에서 여러 선수들과 대립하면서 1년 반 정도는 상당한 푸쉬를 받았으며 이 때는 더 락, 트리플 H등과 함께 경쟁했고 더 락을 꺾고 킹 오브 더 링 우승을 했으며 98년 10월에는 엑스팍을 꺾고 인터컨티넨탈 챔피언까지 올랐지만, 이 때 악역전환하면서 기세가 살짝 꺾이고 다른 동료들은 메인이벤터로 올라간 반면 샘략은 그 위로 더 올라가는 데는 실패했다.
전폭적인 푸쉬에도 불구하고 WWF의 살인적인 스케줄은 종합격투기 선수 시절 이상의 중노동이었고[9], 섐락 본인도 각본에 의한 파이팅에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결국 스티브 블랙맨과의 대립, 그리고 갓 WWF에 데뷔한 크리스 제리코와의 경기를 끝으로 WWF 경력을 마무리하고, PRIDE를 통해 종합격투기 무대로 복귀한다.
3.4. 종합격투기 복귀
2000년 5월 프라이드 fc 그랑프리 2000에서 알렉산더 오츠카를 상대로 타격과 그라운드에서 한수 위 기량을 보이면서 펀치로 KO 승리한다. 4년만의 복귀전 이였다.2000년 8월 PRIDE 10에서 일본 헤비급의 에이스였던 후지타 카즈유키와 경기를 가졌다. 타격전에서 압도하며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며 때리던 중 갑자기 경기를 포기해 카즈유키도 경기 후 의아했을만큼 뜬금없는 결정이였다. [10]
2002년 2월에는 돈 프라이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만다.
2002년 11월에는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던 티토 오티즈에게 도전하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2005년 4월 TUF 1 피날레에서는 리치 프랭클린에게 KO패했고, 2005년 10월에는 사쿠라바 카즈시에게 KO로 졌다. 사쿠라바와의 대결은 레프리의 스톱선언에 논란이 있었으나 섐락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후 티토와 2006년 7월과 10월에 2차례 더 대결하지만 모두 섐락의 초살 완봉패로 끝났고, 결국 2007년 UFC에서 방출당하게 된다. 반면 티토는 라이온스덴과의 대립으로 UFC에서의 입지를 다졌고, 켄에게 거둔 승리로 프랭크 샴락에게 당한 패배도 다소나마 설욕하게 된다.
이렇게 연패를 차곡히 쌓아나가며 실신 KO패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그의 별명을 살짝 비튼 (진짜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저렇게 자꾸 KO패 당하다간 본인이 위험하다고.
2007년 이후에도 UFC에 끊임없이 러브콜을 던졌으나 모두 거부당하고 마이너 단체를 전전하게 된다.
2008년 3월에는 CR에서 경기를 가져 로버트 베리에게 무기력한 경기 끝에 KO패를 당했다. 그리고 그 후 Elite XC 해산의 여파로 CR까지 해산하게 되어 다시 무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009년 2월 Wargod에서 가진 경기에서는 로스 클리프턴을 1분만에 암바로 초살시켰으나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 1년간 경기를 갖지 못하는 흑역사가 있기도 했고, 2010년 7월 Impact FC에서 페드로 히조와 맞붙었으나 타격에서 완벽히 제압당하며 로우킥 난사에 TKO패하고 말았다.
2010년 10월에 USA MMA에서 1승을 추가했으나 얼마 후 마이크 보크와의 경기에서 다리 부상으로 TKO패를 당했다.
2013년 프로레슬링으로 복귀했다.
2015년 6월 19일 51세라는 나이로 Bellator MMA에서 킴보 슬라이스와 붙었다. 킴보의 약한 다리를 공략하여 테이크 다운을 성공시키며 백을 잡아 선방하는 듯 보였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킴보가 힘으로 그립을 풀어냈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안면에 펀치세례를 맞아 그대로 고꾸라지며 1라운드 TKO패.
2016년 2월 19일 아직도 은퇴하지 않고 호이스 그레이시와 Bellator 149에서 경기를 했다. 결과는 1라운드 2분 22초 TKO패를 당했다. 나이는 먹을대로 먹은 중년 아저씨 두명이서 팔다리를 허우적 거리다가 클린치에서 끝나버린 별 볼일 없는 경기였다. 그것도 로블로를 당하고 그곳을 손을 대고 심판을 쳐다봤으나 심판은 개입을 안했고[11]과 호이스는 연속해서 안면 니킥에 이은 테이크 다운, 파운딩을 당해 경기가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전 경기가 51세 였으니 이번엔 52세.
3.5. 프로레슬링 복귀
2019년에 오랜만에 프로레슬링에 복귀했다. 복귀한 레슬링 단체는 임팩트 레슬링 2002년 이후 약 12년만에 복귀하였다.2020년 3월 17일 임팩트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10월 24일 바운드 포 글로리 XVI에서 입회식이 진행 되었다.
4. 파이팅 스타일
강인한 육체와 정교한 테크닉을 겸비한 실력자로 슛파이터들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NHB에서는 그래플러의 정점에 있었으며 특히 서브미션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시절에 수준높은 하체관절기를 선보이며 그래플러들의 전성기에 한 획을 그었다. 초창기 종합시절 현대 처럼 타격과 그래플링을 고루 잘하는 선수를 꼽자면 켄 섐락, 마르코 후아스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호이스 그레이시도 복싱, 무에타이, 레슬링, 주짓수, 유도 등 다 배웠지만 사실상 타격 실력은 그렇게 좋지 않았으므로 타격기에 대한 이해와 상대를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고 펀치나 발차기를 썼기에(도발) 사실상 그래플링 원툴이었다. 사실 그래플링도 현대에 보면 잘하는 건 아닌데, 엄청난 체급 차이인 상대들이 그래플링에 무지해서 먹힌 것이다.선수들은 점점 대형화되면서 그의 피지컬도 경쟁력을 잃었고 타격과 그래플링 능력을 갖춘 컴플릿 파이터들이 대두하면서 그의 입지도 점점 좁아져 갔다. 슛파이팅이라는 종목 자체가 현대 MMA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그의 부진과도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MMA 상향평준화의 기폭제가 된 것이 그의 동생이자 같은 슛파이팅 베이스인 프랭크 샴락이라는 것이다. 프랭크 샴락은 컴플릿 파이터 시대를 열었으나 이는 얼마 후 슛파이팅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캐치 레스링, 서브미션 레슬링에 타격을 장착한 스타일이라 보면 된다.
5. 기타
동생인 프랭크 샴락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이지만 생긴게 비슷해서 진짜 형제인 줄 아는 사람도 많았다.자신의 양부인 밥 섐락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켄 섐락과 프랭크 섐락이라는 불세출의 형제 파이터를 키워낸 밥 섐락은 2010년 1월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립한 라이온스덴은 종합격투기의 명문 체육관으로 프랭크 샴락, 가이 메츠거 등 수많은 파이터들의 양성기관이 되었다. 본인도 선수 겸 트레이너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프랭크 샴락과는 Pancrase 시절 프랭크가 라이온스덴을 나서면서 틀어져 버렸다.
2000년대 이후에는 부진한 전적을 보이고 있으나 몸값만은 여전히 비싸다. 최소 30만 달러 이상인데,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10년에도 현역으로 경기를 뛰는 것을 보면 라이온스덴의 재정상태가 안좋다는 얘기는 사실인 듯 하다.
2004년 UFC 45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와 함께 헌액되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켄 샴락은 NWA 산하 TNA의 초대 월드 헤비급 챔피언이다. 2002년 5월 TNA가 NWA-TNA로 개양했을 때 제프 제럿의 권유로 TNA와 계약해 초창기 메인이벤터로 활동했었다. 사실 2002년 당시 WWE의 짐 로스와 리턴에 대한 협상을 했었으나 풀타임 레슬러에 대한 부담감과 연봉 금액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된 계약을 파기하고 TNA로 향한 것이었다. 이후 TNA에서 사부와 챔피언 자리를 두고 대립하였다.
아들인 라이언 샴락[12]도 격투기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2023년 들어서는 바로 다음 해인 2024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6. 둘러보기
역대 리벨리온 메인이벤트[★] | ||||
2020.4.21 리벨리온 - DAY 1 |
언센션드 매치 켄 샴락 vs 새미 캘러핸 |
2020년 임팩트 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
PWI 선정 올해 기량이 가장 발전한 선수 | ||||
아메드 존슨 (1996) |
→ |
켄 샴락 (1997) |
→ |
부커 T (1998) |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대립 | ||||
사쿠라바 카즈시 vs
반달레이 실바 (2001) |
→ |
티토 오티즈 vs 켄 샴락 (2002) |
→ |
커트 앵글 vs
브록 레스너 (2003) |
바티스타 vs
트리플 H (2005) |
→ |
티토 오티즈 vs 켄 샴락 (2006) |
→ |
바티스타 vs
언더테이커 (2007) |
|
|||||
TNA/임팩트 레슬링 건틀렛 오브 더 골드 배틀로얄 우승자[☆] | |||||
창설 | → |
켄 샴락 (2002) |
→ |
제프 제럿 (2004) |
역대 킹 오브 더 링 우승자 | ||||
트리플 H (1997) |
→ |
켄 샴락 (1998) |
→ |
빌리 건 (1999) |
[1]
로얄럼블 1998과
레슬매니아 14에서 대립 중이던 챔피언 더 락과의 경기에서 핀폴승과 서브미션승을 따내 챔피언을 최소 2회 이상 달성했을 테지만 전자는 더 락이 섐락의 경기복에 숨긴 너클을 심판이 반칙을 쓴 것으로 오해하며 실격패, 후자는 경기가 끝나고도 앵클락을 풀어주지 않아 이를 말리러 온 심판들마저 박살내며 실격패 처리당했다.
[2]
주요승: 피터 아츠, 주요패: 레이 세포, 모리스 스미스, 피터 아츠, 어네스트 후스트
[3]
정작 다음 경기에서도 비슷한 전략으로 호이스에게 마운트후 가드패스하고 힐훅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호이스에게 상위를 빼앗겨서 결국 초크로 패했다. 스미스도 상대방이 힐훅 시도할 때 자신의 무릎을 고정하는 섐락의 다리를 풀려고 시도할게 아니라 바로 상위 포지션으로 갔어야했다.
[4]
훗날
커트 앵글이
피니쉬 무브로 쓰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기술이지만, 사실 원조는 이 쪽이다.
[5]
WWE에서 자체적으로 '가장 위험한
서브미션 기술'을 선정했는데, 그 중 앵클 락이 1위를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6]
그리고 나중에 '가장 위험한 사나이'도 따로 선정했는데,
브록 레스너가 1위에 랭크되었다.
[7]
마크 헨리나 베이더같은 거구에게도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를 깔끔히 구사할 만큼 힘이 좋았다.
[8]
이때 활동 덕에 WWF 올드팬들에게는 뜨아맨이라는 별명으로 익숙하다.
[9]
이때 "프로레슬링이 종합격투기보다 훨씬 힘들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10]
경기 도중 심장에 무리가 왔다고 한다.
[11]
심판이 개입을 하지않아 본인이 경기 이후에도 이 부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등 내용도 결말도 정말 찝찝한 경기가 되어버렸다.
[12]
공교롭게도 켄이 WWF에서 활동하던 시기 그의 여동생으로 출연했던 사람의 링네임도 라이언 샴락이었다. 본명은 앨리샤 웹으로 실제 샴락 가문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
월드 챔피언십 우승자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