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00:29:28

케언곰 고원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고 내용3. 갑작스런 폭설
3.1. 1그룹의 대피
3.1.1. 1그룹의 탈출 과정
3.2. 2그룹의 상황
3.2.1. 악화되어가던 2그룹의 상황
3.3. 캐서린을 발견한 구조대
3.3.1. 거처 수색
4. 사고 원인 및 사고 이후

총원 학생: 14명[1]
강사: 3명[2]
사망자 학생: 5명[3]
강사: 1명[4]
생존자 학생: 9명[5]
강사: 2명[6]

1. 개요

Cairngorm Plateau Disaster

1971년 11월 22일 스코틀랜드 케언곰 산에서 일어난 사고.

2. 사고 내용

케언곰스 국립공원(Cairngorms National Park)은 영국에서도 영국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케언곰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슴이나 물수리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해 캠핑 동호회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카약, 산악자전거, 스키 등 산에서 즐길수 있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겐 핫스팟이다. 하지만 몇몇 지역은 날씨가 불안정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거나 하기도 해서 공원측에서 안전을 위해 대피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1971년 11월 19일, 에든버러의 에인슬리 파크 학교(Ainslie Park)에서 벤 비티(Ben Beattie 23세)와 캐서린 데이빗슨(Catherine Davidson 20세) 등 교사 2명과 학생 14명이 케언곰스 국립공원으로 등산을 떠났다. 첫째 날은 국립공원의 숙소에서 묵었고, 둘째 날 부터 리프트 형태인 케이블카를 먼저 타고 올라간 뒤 케언곰에서 영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벤 막두이(Ben Macdui)까지 가는 17km 남짓한 여행길을 떠났다. 이들은 중간에 야영도 하면서 산을 즐길 예정이었다. 일기예보도 챙겨보고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입고 출발했다. 도중 상황이 나빠지면 코스 인근에 있는 커랜 대피소(Curran)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첫날 묵었던 숙소의 봉사자 쉬라 선더랜드(Sheelagh Sunderland)도 등산 보조를 위해 합류했다. 이들은 벤이 이끄는 1그룹, 그리고 캐서린, 쉬라 선더랜드가 이끄는 2그룹으로 나누어 여정을 시작했다.[7] 벤이 이끄는 1그룹이 먼저 떠나고 캐서린 등이 이끄는 2그룹이 뒤를 따랐다.

3. 갑작스런 폭설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 가 눈이 오기 시작해, 두 그룹은 대피소로 향했다.

3.1. 1그룹의 대피

1그룹은 커랜 대피소로 피했다. 1그룹 학생들은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벤 그룹은 대피소 문이 눈에 막혀 열기 힘들었지만 대피소에서 나갈 수 있었고, 날씨는 여전했지만 바닥나고 있던 식량들이 걱정되었던 벤은 더 이상 머무르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고 생각했고, 벤은 학생들과 악천후를 뚫고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3.1.1. 1그룹의 탈출 과정

가장 먼저 벤은 길부터 찾았다. 빠른 하산을 위해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방법보단 가파른 내리막길 쪽에 밧줄을 설치하고 차례대로 내려가는 방법을 결정했다. 이런 위험한 하산을 해본 적이 없던 학생들은 위태위태하게 내려갔다. 중간에 학생 한 명이 발을 헛디뎌 산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지만 벤이 그 학생을 구조하는데 성공했고, 그 뒤로도 찬 눈보라를 맞으며 하산을 하며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로티무르쿠스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대피소에 있는 라디오로 구조 요청을 했다. [8]

3.2. 2그룹의 상황

2그룹도 같은 곳, 즉 커렌 대피소로 갈려했으나, 등산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이 다칠 것을 우려해 좀 더 완만한 길로 돌아서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피소로 향하던 도중 눈이 너무 많이 와 화이트아웃까지 벌어지는 바람에 대피소를 300m 남겨두고 대피소 찾기를 포기했다. 날씨는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나빠졌고, 움직이기 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자 2그룹의 리더 캐서린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날씨가 폭주하는 상황에서 대피소를 찾는 것도 힘드니 텐트 없이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9] 그렇게 그들은 눈이 내리는 한복판에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도 날씨가 그대로고, 눈이 너무 쌓여 움직이기도 힘들자 또 다시 어제처럼 텐트 없이 침낭만 의지해서 잠을 잤다.

벤 그룹이 구조 요청을 한 지 1시간 후, 벤 그룹이 인근의 애비모어(Aviemore)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 캐서린 측 그룹이 도착하지 않은 걸 알게 됐고, 구조대에 신고해 수색이 시작됐다. 영국 공군까지 동원되어 구조 작전이 시작됐고, 조명탄을 들고 돌아다니며 케서린 그룹을 찾아나섰다.

3.2.1. 악화되어가던 2그룹의 상황

같은 시각 사고 지점, 캐서린과 2그룹 학생이었던 윌리엄을 제외한 모두의 체력은 바닥나 있었고, 결국 캐서린과 윌리엄이 구조 요청을 하려고 산을 좀 더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30m도 채 안 갔을 때 눈이 허리까지 차는 바람에 다시 거처로 돌아와서 구조를 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행 대부분이 의식이 흐릿하거나 의식이 없던 상황, 이제는 정말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감한 캐서린과 윌리엄은 다시 어제처럼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하산하기로 했으나 윌리엄은 출발하기도 전에 제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이를 본 캐서린은 체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혼자서 열심히 기어갔다.

3.3. 캐서린을 발견한 구조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대는 캐서린을 발견하고 무사히 구조했다. [10] 그리고 캐서린은 구조대에게 2그룹의 거처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구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으로 덮인 커다란 봉우리를 발견하고 이를 파내자 쓰러져 있던 6명의 학생과 1명의 강사를 발견했다.

3.3.1. 거처 수색

거처를 파내자 나온 것은 생존자 1명과 시체 6구였다.
생존자는 눈 속에서 매우 오랜 시간 버티며 발견 당시 숨을 쉬고 있었던 레이몬드 레슬리(Raymond Leslie.15)로, 치료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윌리엄 커(William Kerr.15)[11], 수잔 번(Susan Byrne.15), 로레인 마가렛(Lorraine Magaret.15), 다이앤 더진(Diane Dudgeon.15), 캐롤 버트램(Carol Bertram.16), 쉬라 선더랜드(Sheelagh Sunderland.18)가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사고는 영국 역사상 등산 도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고로 남았다.

4. 사고 원인 및 사고 이후

당시 모든 학생들이 산에서 이런 사고를 처음 겪다보니 그들을 이끌던 강사들을 100% 신뢰해야만 했다. 1그룹 강사 벤 비티는 이전에도 학생들과 함께 등산을 한 경험이 다수했고, 결국 숙련된 리더로서 1그룹 학생들이 전원 생존하는데 한 건을 했다. 캐서린 역시 산악 고급 자격증이 있을 정도의 숙련된 산악인이었지만, 학생들을 데리고 등산을 한 건 처음이였기에 화이트아웃이 온 순간 패닉이 강하게 와서 제대로 된 대처를 못해 2그룹의 피해가 커졌다.

또한, 이 등산 코스에 대해 검토 후 승인한 라간리아 경영진 또한 욕을 먹기도 했고, 실제로 최종 승인한 라간리아 센터장의 존 페이슬리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라간리아]

또한,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등산 체험학습이 있단 것을 알릴 때, 그걸 겨울에 한다고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심지어 등산 코스가 확정되었을 때 학부모들에게 의견을 묻긴 커녕 코스 관련 그 어떠한 부분도 학부모들에게 안내가 가지 않았다.

결국, 사고 이후 학교에서 등산을 갈 때는 반드시 숙련된 전문가가 같이 가도록 법이 제정됐다.

위치가 위험하다 판단된 몇몇 대피소는 폐쇄 후 철거됐다.

벤 비티는 이후에도 등산을 계속했고, 1978년 히말라야에 도전하다 사고로 숨졌다.

레이먼드 레슬리는 2그룹 학생 중 유일한 생존자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사고와 관련된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라간리아 센터는 현재 매년 40개의 학교에서 4500명 이상의 학생이 방문 중이며 케언곰 역시 매년 천 명 이상이 방문하는 영국 핫 플레이스 중 하나가 되었다.
[1] 1그룹 8명, 2그룹 6명 [2] 1그룹 1명, 2그룹 2명 [3] 2그룹 5명 [4] 2그룹 1명 [5] 1그룹 8명, 2그룹 1명 [6] 1그룹 1명,2그룹 1명 [7] 원래는 한 그룹으로 다 같이 가서 정상에서 캠핑을 할 예정이었으나 등산 전에 있었던 안전교육에서 6명이 나머지 학생 8명보다 등산 경험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벤과 캐서린이 상의하여 등산 경험이 부족한 6명을 2그룹에, 나머지 8명을 1그룹에 배정했다. [8] 결국 1그룹은 전원 생존하였다 [9] 춥고 폭설이 내리고 그 어떤 나무도 바위도 없는 곳에서 텐트 없이 침낭만 의지하고 잔다는 것 자체가 눈에 파묻히거나 저체온증으로 죽기 너무 쉬운 환경이었다. [10] 당시 캐서린은 다리가 얼어있어 걷지 못했다. [11] 상술했던 학생이다. [라간리아] 센터는 케언곰에서의 등산, 스키, 보드와 같은 활동을 신청하면 안전성을 검토하여 승인을 해주던 센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