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22:55:21

케언곰 고원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Cairngorm Plateau Disaster

1971년 11월 22일 스코틀랜드 케언곰 산에서 일어난 사고.

2. 사고 내용

케언곰스 국립공원(Cairngorms National Park)은 영국에서도 영국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인 케언곰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슴이나 물수리 같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 캠핑 동호회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카약, 산악자전거, 스키 등 산에서 즐길수 있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겐 핫스팟이다. 하지만 몇몇 지역엔 날씨가 불안정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거나 하기도 해서 공원측에서 안전을 위해 대피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1971년 11월 19일, 에든버러의 에인슬리 파크 학교(Ainslie Park)에서 교사 2명, 23세의 벤 비티(Ben Beattie)와 20살 캐서린 데이빗슨(Catherine Davidson), 그리고 학생 14명이 케언곰스 국립공원으로 등산을 떠났다. 첫째날은 국립공원의 숙소에서 묵었고, 둘째 날 부터 리프트 형태의 케이블카를 먼저 타고 올라간 뒤 케언곰에서 영국에서 두번 째로 높은 산인 벤 막두이(Ben Macdui)까지 가는 17km 가량의 여정을 떠났다. 이들은 중간에 야영도 하면서 산을 즐길 예정이었다. 기상예보도 챙겨보고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입고 출발했다. 도중 상황이 나빠지면 코스 인근에 있는 커랜 대피소(Curran)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첫날 묵었던 숙소의 봉사자 쉬라 선더랜드(Sheelagh Sunderland)도 등산 보조를 위해 합류했다. 이들은 벤이 이끄는 그룹과 캐서린이 이끄는 그룹 해서 2 그룹으로 나눈 채 여정을 시작했다. 벤 측이 먼저 떠났고, 캐서린 측이 뒤를 따랐다.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가, 눈이 오기 시작해 두 그룹은 대피소로 향했다. 벤 그룹은 커랜 대피소로 피했다. 벤 그룹은 상황이 조금은 나았다. 대피소 문이 눈에 막혀 열기 힘들었으나 나갈순 있었고, 등산을 마치고 내려갔다.

캐서린도 같은 곳으로 향했으나 도중 눈이 너무 많이 와 화이트아웃까지 벌어지는 바람에 다른 대피소로 향했다. 날씨는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나빠졌고, 움직이기 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자 캐서린 측은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날씨가 폭주하는 상황에서 대피소를 찾는 것도 힘드니 침낭속에 들어가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은 눈이 내리는 한복판에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서도 날씨가 그대로고, 눈이 너무 쌓여 움직이기도 힘들자 또 다시 침낭속에 들어가 야영을 했다.

벤 그룹이 인근의 애비모어(Aviemore)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 캐서린 측 그룹이 도착하지 않은 걸 알게됐고, 구조대에 신고해 수색이 시작됐다. 영국 공군까지 동원되어 구조 작전이 시작됐고, 플레어를 들고 돌아다니며 케서린 그룹을 찾아나섰다. 허나 눈보라가 너무 쎄서 서로의 목소리 조차 안들리는 상황이라 캐서린의 도움 요청은 바람 소리에 묻혔고, 플레어도 눈에 파묻혀 분실하는 바람에 구조대원들은 캐서린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헬리콥터가 쓰러져있던 캐서린을 발견하고 캐서린 그룹을 전원 구조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윌리엄 커(William Kerr.15), 수잔 번(Susan Byrne.15), 로레인 마가렛(Lorraine Magaret.15), 다이앤 더진(Diane Dudgeon.15), 캐롤 버트램(Carol Bertram.16), 쉬라 라 선더랜드(18)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캐서린 그룹 중 유이한 생존자는 캐서린 데이빗슨 본인과 레이먼드 레슬리(Raymond Leslie)였다.

사고는 영국 역사상 등산 도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고로 남았다.

3. 사고 이후

벤 비티는 등산 경험이 많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캐서린은 등산 경험이 부족했고, 때문에 험악한 날씨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를 못해 피해가 커졌다. 거기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에게 등산 체험학습이 있단것을 알릴때, 그걸 겨울에 한다고는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학교에서 등산을 갈때는 반드시 숙련된 전문가가 같이 가기로 법이 제정됐다.

위치가 위험하다 판단 된 몇몇 대피소는 폐쇄 후 철거됐다.

벤 비티는 이후에도 등산을 계속했고, 1978년 히말라야에 도전하다 사고로 숨졌다.

레이먼드 레슬리는 사고에서 살아남았으나 오늘날 까지도 사고와 관련된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