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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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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아버지
샤를 보나파르트 · 배우자
조제핀 드 보아르네 ·
마리 루이즈 ·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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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 평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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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9DDB5><colcolor=#000> 카를로 부오나파르테 Carlo Buonapa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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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탈리아어 |
카를로 마리아 부오나파르테 (Carlo Maria Buonaparte) |
프랑스어 |
샤를마리 보나파르트 (Charles-Marie Bonapar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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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46년 3월 27일 | |
제노바 공화국 코르시카 아작시오 | ||
사망 | 1785년 2월 24일 (향년 38세) | |
프랑스 왕국 몽펠리에 | ||
배우자 | 레티치아 라몰리노 (1764년 결혼) | |
자녀 | 호세 1세, 나폴레옹 1세, 뤼시앵, 엘리자, 로데베이크 1세, 폴린, 카롤린, 제롬 | |
아버지 | 주세페 마리아 부오나파르테 | |
어머니 | 마리아 사베리아 파라비치니 | |
형제 | 마리아 게트루드, 세바스티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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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세기 유럽의 제노바 공화국령 코르시카 출신 인물로 유럽을 일시적으로 통일한 나폴레옹 1세의 부친이다.2. 생애
1746년 3월 27일 주세페 마리아 부오나파르테(Giuseppe Maria Buonaparte)와 마리아 사베리아 파라비치니(Maria Saveria Paravicini)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주세페는 코르테 공의회에 참여하는 등 법조계에 종사하던 법조인이으로 샤를 역시 부친의 뒤를 따라 피사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법조인( 변호사)가 되고자 했으나 1763년 부친이 많은 유산을 물려준 채 사망,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가족에게 돌아갔다.1764년 6월 2일 롬바르드족의 후손인 마리아와 혼인하였고 아내 역시 방앗간과 빵집을 통해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있어 풍족한 생활을 누렸다. 이후 샤를은 제노바 공국에 병합된 코르시카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파스콸레 파올리의 개인 비서로 재직하였으며 동년 파올리의 명으로 교황 클레멘스 13세와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다만 그가 귀국했을 당시 제노바 공국이 코르시카를 프랑스에 팔아넘겼고 그에 따라 프랑스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독립운동이 진압당했기에 파올리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도주하였으나 샤를은 프랑스 정부를 받아들인 후 1769년 9월 20일, 아작시오와 인근 지역의 세무원(Assessor)에 임명되었다.
1769년 8월 15일 훗날의 황제로 즉위하는 나폴레옹을 낳았고, 동년 11월 27일 피사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샤를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귀족이 되었고 많은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나 도박에 빠져 그동안 모아온 재산을 탕진하였고 1782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더니 1785년 2월 24일 위암으로 사망하였다.